남자의 등.

함부르크 미술관(Hamburger Kunsthalle).

by 양미석

0 등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 1817


우리는 사람의 등을 보는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등을 돌리다’란 관용구가 ‘외면하다, 관계를 끊고 배척하다.’란 의미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등을 보이는 행위, 등을 바라보는 행위는 이래저래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어떤 일에도 예외는 있는 법.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는 일은 조금은 에로틱하다. 성적 취향을 고려해봤을 때, 내가 누군가를 ‘백허그’한다면 그것은 남자의 등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 등은 바위처럼 단단하면 좋겠다. 듬직하고 기대고 싶은 그런 등이었음 한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소지섭이나 추성훈일 수는 없다. 폭풍 속 한 그루 나무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상처 입었지만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등이 내 주위에는 훨씬 많다. 그런 등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엄청나서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와 같다. 바위는 아닐지언정 단단하다.

위태롭게 서 있는 한 남자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그만 내게 말을 걸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으나 벌써 십 수 명의 사람이 나와 그의 등 사이를 지나쳐갔다. 내게 등을 보인 채 이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나 그나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등이 아닌 그의 발을 보고 결론을 내린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 왼발. 분명 이 남자는 저 안개 속, 산맥 너머 세상을 탐험하러 떠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의 첫 도시에 도착한 나에게 주는 일종의 자기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왔는데 앞으로 뭐 더 큰 일 있겠어? 더 이상 불안해 해봤자 다시 비행기 타고 돌아갈 거 아니잖아?’

검은색 코트에 배낭을 짊어진 내 뒷모습을 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너 지금 당장 세계 정복이라도 하러 갈 기세야!”


1 풍경화 vs 인물화


프리드리히의 '달빛 아래 해변(Seashore in moonlight, 1835/36) 앞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독일 학생들.


공항에서 나와 낯선 도시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은 언제나 가장 설레지만 가장 두렵기도 하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함부르크 미술관(Hamburger Kunsthalle)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미술관의 돔 지붕을 찾아 중앙역 주위를 30분을 넘게 헤맸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물어물어 겨우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 건물은 돔 지붕까지 꼼꼼하게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거기서 또 다시 입구를 찾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몇 번의 장기 여행으로 지도 읽기에는 도가 터서 지도가 틀리지 않는 이상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는데 첫 도시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게 처음 방문하는 독일의 미술관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익숙하지 않기에 더 천천히 꼼꼼히 둘러보던 중, 그의 뒷모습과 마주친 것이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 이하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 (Wanderer über dem Nebelmeer/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7)라는 그림이었다. 제목 그대로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웅장한 대자연을 내려다보는 한 남자가 화폭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그림에서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볼 터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맥을 찾아 떠나는 인간의 호기심과 용기를 볼 것이다. 함부르크 미술관에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몇 점 더 있었다. 달빛 아래 교교하게 빛나는 바다, 너른 보헤미아의 들판과 산, 난파선과 날카로운 빙하까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풍경화보다는 인물화를 더 좋아한다. 직접 다녀와 본 곳이 아닌 이상 내게 풍경화는 아무 의미 없었다.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를 접하기 전까지는.


2 프리드리히와 김영갑


제주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전시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김영갑의 사진을 떠올렸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보헤미아의 산풍경(Mountain landscape in Bohemia), 1830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서 본 듯한 풍경, 낯설지 않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커녕 그의 이름조차 처음 접해보는 것이 확실한데 이 기시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림을 바라보며 기억을 되돌리는데 2014년 11월 제주도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멈췄다. 그 곳에서 봤던 사진들이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참 닮아 있었다. 김영갑(1957 ~ 2005)은 우연히 들른 제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뭍에서의 모든 인연을 정리한 후 제주에 정착해 제주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던 사진작가이다. 제주에 그가 찍지 않은 풍경은 없다고 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비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특히나 그의 오름 사진들은 계속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조국과 고향의 모습을 부지런히 화폭에 담아냈다. 안개에 살짝 덮인 듯 몽롱한 풍경, 세상의 색이 바뀌는 일출과 일몰의 모습, 표정이 풍부한 구름 등이 사진과 회화라는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은 두 사람 작품의 공통점들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 때 자살시도까지 했었던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에는 너무 뾰족해 마음에 상처를 낼 것만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제주에서 20여 년을 원 없이 사진 작업을 했던 김영갑의 작품은 한없이 둥글고 다사롭다. 말년에 그가 고독한 병마와 싸우다 갔다 하더라도...

풍경화에는 별 취미가 없었던 내게 독일에서 방문한 첫 번째 미술관에서 만난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오랜 친구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함부르크 미술관

개관 시간 : 화 ~ 일 10:00 ~ 18:00(목 ~21: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 상설전 8유로, 특별전 포함 12유로

비고 : 현재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중으로 주요 작품들은 현대 미술관으로 옮겨 ‘SPOT ON’이라는 주제로 전시 중. 공사 종료에 대한 공지는 따로 없으나 ‘SPOT ON’ 전시가 2016년 1월 17일까지 계속되므로 그 이후일 것으로 예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