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미술관(Hamburger Kunsthalle).
우리는 사람의 등을 보는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등을 돌리다’란 관용구가 ‘외면하다, 관계를 끊고 배척하다.’란 의미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등을 보이는 행위, 등을 바라보는 행위는 이래저래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어떤 일에도 예외는 있는 법.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는 일은 조금은 에로틱하다. 성적 취향을 고려해봤을 때, 내가 누군가를 ‘백허그’한다면 그것은 남자의 등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 등은 바위처럼 단단하면 좋겠다. 듬직하고 기대고 싶은 그런 등이었음 한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소지섭이나 추성훈일 수는 없다. 폭풍 속 한 그루 나무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상처 입었지만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등이 내 주위에는 훨씬 많다. 그런 등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엄청나서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와 같다. 바위는 아닐지언정 단단하다.
위태롭게 서 있는 한 남자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그만 내게 말을 걸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으나 벌써 십 수 명의 사람이 나와 그의 등 사이를 지나쳐갔다. 내게 등을 보인 채 이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나 그나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등이 아닌 그의 발을 보고 결론을 내린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 왼발. 분명 이 남자는 저 안개 속, 산맥 너머 세상을 탐험하러 떠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의 첫 도시에 도착한 나에게 주는 일종의 자기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왔는데 앞으로 뭐 더 큰 일 있겠어? 더 이상 불안해 해봤자 다시 비행기 타고 돌아갈 거 아니잖아?’
검은색 코트에 배낭을 짊어진 내 뒷모습을 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너 지금 당장 세계 정복이라도 하러 갈 기세야!”
공항에서 나와 낯선 도시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은 언제나 가장 설레지만 가장 두렵기도 하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함부르크 미술관(Hamburger Kunsthalle)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미술관의 돔 지붕을 찾아 중앙역 주위를 30분을 넘게 헤맸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물어물어 겨우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 건물은 돔 지붕까지 꼼꼼하게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거기서 또 다시 입구를 찾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몇 번의 장기 여행으로 지도 읽기에는 도가 터서 지도가 틀리지 않는 이상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는데 첫 도시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게 처음 방문하는 독일의 미술관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익숙하지 않기에 더 천천히 꼼꼼히 둘러보던 중, 그의 뒷모습과 마주친 것이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 이하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 (Wanderer über dem Nebelmeer/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7)라는 그림이었다. 제목 그대로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웅장한 대자연을 내려다보는 한 남자가 화폭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그림에서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볼 터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맥을 찾아 떠나는 인간의 호기심과 용기를 볼 것이다. 함부르크 미술관에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몇 점 더 있었다. 달빛 아래 교교하게 빛나는 바다, 너른 보헤미아의 들판과 산, 난파선과 날카로운 빙하까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풍경화보다는 인물화를 더 좋아한다. 직접 다녀와 본 곳이 아닌 이상 내게 풍경화는 아무 의미 없었다.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를 접하기 전까지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서 본 듯한 풍경, 낯설지 않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커녕 그의 이름조차 처음 접해보는 것이 확실한데 이 기시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림을 바라보며 기억을 되돌리는데 2014년 11월 제주도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멈췄다. 그 곳에서 봤던 사진들이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참 닮아 있었다. 김영갑(1957 ~ 2005)은 우연히 들른 제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뭍에서의 모든 인연을 정리한 후 제주에 정착해 제주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던 사진작가이다. 제주에 그가 찍지 않은 풍경은 없다고 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비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특히나 그의 오름 사진들은 계속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조국과 고향의 모습을 부지런히 화폭에 담아냈다. 안개에 살짝 덮인 듯 몽롱한 풍경, 세상의 색이 바뀌는 일출과 일몰의 모습, 표정이 풍부한 구름 등이 사진과 회화라는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은 두 사람 작품의 공통점들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 때 자살시도까지 했었던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에는 너무 뾰족해 마음에 상처를 낼 것만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제주에서 20여 년을 원 없이 사진 작업을 했던 김영갑의 작품은 한없이 둥글고 다사롭다. 말년에 그가 고독한 병마와 싸우다 갔다 하더라도...
풍경화에는 별 취미가 없었던 내게 독일에서 방문한 첫 번째 미술관에서 만난 프리드리히의 그림들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오랜 친구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함부르크 미술관
개관 시간 : 화 ~ 일 10:00 ~ 18:00(목 ~21: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 상설전 8유로, 특별전 포함 12유로
비고 : 현재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중으로 주요 작품들은 현대 미술관으로 옮겨 ‘SPOT ON’이라는 주제로 전시 중. 공사 종료에 대한 공지는 따로 없으나 ‘SPOT ON’ 전시가 2016년 1월 17일까지 계속되므로 그 이후일 것으로 예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