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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석 Oct 24. 2015

첫 번째 숙소.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눈이 부시다. 6월의 유럽이 이토록이나 청량했던가. 아마도 이틀 만에 실외로 나와서 일 것이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30분을 날아와 저녁 7시쯤 독일 땅에 내려앉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국내선은 다음날 오전 7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에스반(S-bahn,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근교를 오고가는 독일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20여 분 거리지만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공항으로 돌아오려면 늦어도 4시에는 숙소를 나서야 할 판. 초행인 도시에서는 어두울 때 이동하지 않는다. 나만의 여행 철칙 중의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이 나이에 공항 노숙이라니!’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이 나이’는 (진부한 표현이지만)내 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 아닌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노숙이 되길 바라며, 좀 추웠지만 생각보다 고되지 않은 하룻밤을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바라본 일출.


 체크인을 하고 속속 게이트 앞에 모이는 탑승객들, 공항의 통유리로 해가 들이쳐서 서서히 따뜻해진 것도 있지만 역시나 사람의 온기가 제일이다. 불과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오들오들 떨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다. 평일 오전 비행편이어서일까.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옷차림을 한 채 침까지 흘려가며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톡톡, 옆 좌석의 독일 아저씨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내려야 한다고. 함부르크에 도착했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스윽 얼굴로 손을 올려 턱에까지 내려온 침을 닦았다.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진짜 창피해지니까. 이미 프랑크푸르트에서 입국 심사를 했기에 별다른 절차 없이 짐만 찾아 나왔다. 벌써 4년째 내 여행을 함께 해주고 있는 45리터 배낭에 붙어있던 수하물 태그를 떼어버렸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75일 후 인천 공항에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함부르크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열차의 티켓을 사야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독일에서의 첫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을 아무리 많이 다녔어도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려움 반, 설렘 반. 과연 독일은 얼마 만에 나에게 곁을 내어줄까.

 사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다지 힘들지 않다. 공항은 한 나라의 관문이자 그 도시의 얼굴이기 때문에 아무리 교통이 불편한 나라에서라도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 마련되어 있기 마련이다. 영어 표기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곳도 공항 주변이다. 함께 공항을 빠져나온 샐러리맨들을 졸졸 따라가 독일 철도청 도이치 반(Deutsche Bahn)의 티켓 머신을 이용해 열차표를 샀다. 편도 3.1유로, 우리 집에서 인천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 비용보다 저렴했다. 물론 공항과 중앙역 사이를 오고가기 위해서만 운행하는 열차는 아니다.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역에 정차하며 시내로 나가는 독일인들을 함께 태운 열차는 30여분 만에 중앙역에 도착했다.      

 현지인이고 여행자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중앙역에서 내렸다. 그 틈에 섞여 우르르 열차에서 내렸다. 너무 복잡해 순간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우선 빨리 나가고 싶었다.

 딱 이틀 만에 만나는 태양, 눈이 부시다.




첫 번째 숙소,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FRA)


 1. 공항이든 기차역이든 진짜 길바닥이든 가능하면 노숙은 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서른이 넘었다면 더욱더... 공항과 시내 왕복 교통비, 하룻밤 숙박비가 아까워 노숙을 선택했지만 다음에는 애당초 일정을 짤 때 노숙은 절대 넣지 않을 작정입니다.

 2. 불행 중 다행이도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노숙하기 좋은 공항에 속하는 편입니다. ‘공항에서 노숙하기’(http://www.sleepinginairports.net/)라는 사이트의 30위권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노숙하기 좋은 공항 4위로 뽑힌 뮌헨 국제공항(MUC)과 시설 면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3.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저녁에 도착해 다음 날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중앙역 근처에서 숙박하는 것보다는 공항 근처에 숙박하는 것을 권합니다. 나중에 프랑크푸르트의 호스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하게 되겠지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부근은 독일 모든 도시 뿐만 아니라 유럽 모든 도시를 포함해도 치안이 안 좋습니다. ‘약’을 하고 눈이 풀린 인간들을 부지기수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4.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잘 돈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한다!면 환승 구역 바깥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환승 구역은 비행기 표를 소지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지만 체크인 카운터가 있는 구역은 그야말로 ‘아무나’ 들고 날 수 있습니다. 추위를 피해 혹은 불순한 의도를 갖고 밤에 공항을 찾는 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환승 구역 밖으로 나갔다가 집시 비스무리한 사람들이 계속 쫓아다니는 바람에 한숨도 못자고 밤을 꼴딱 샜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면세점도 잘 되어 있고 환승 구역 내에 서점, 식당 등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에 굳이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5. 복장은 편하게, 따뜻하게! 편하게 입어야 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이고 중요한 것은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푹푹 찌는 여름일수록 공항은 더 춥습니다. 특히나 사람이 다 빠져나간 새벽 시간엔 여름이라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쌀쌀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경우 24시간 냉방기를 돌립니다. 전 알프스에 갈 때 입으려고 했던 누빔 자켓을 입고 얇은 담요까지 덮었음에도 쌀쌀해서 잠을 이루기 쉽지 않았습니다. 뭐 결국엔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습니다만...

 6. 위탁 수하물은 절대 찾지 않습니다. 노숙도 하룻밤 묵는 것이라고 불안한 마음에 위탁 수하물을 최종 목적지까지 보내지 않고 노숙할 공항에서 찾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한 마음에 편하게 잠들 수 없습니다. 위탁 수하물은 최종 목적지까지 보내고 꼭 필요한 것만 챙겨 가벼운 몸으로 노숙합시다. 기본적으로 지갑, 휴대폰, 카메라, 태블릿, 노트북 등은 기내에 휴대하게 되고 노숙할 시에도 갖고 잠을 자게 되는데 가방 안에 잘 정돈해서 베개 대용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7. 무료 와이파이 사용 가능합니다.

 8. 제 1터미널 A게이트 구역에 루프트한자에서 제공하는 무료 음료(커피와 차) 있습니다.

 8. 제 1터미널 B게이트 루프트한자 라운지 근처에 샤워 시설 있습니다. 운영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용해보지 않았기에 확실치는 않지만 기본적인 세면 도구와 수건은 팔거나 혹은 돈을 받고 빌려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만약 샤워실을 이용할 예정이라면 간단하게 준비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9. 간단한 주전부리는 인천 공항에서 준비할 것을 추천합니다. 어느 나라나 공항내의 식당이나 매점은 가격이 비싸기 마련인데 인천 공항 면세 구역에서 파는 생수와 과자는 비교적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예산 신경 안 쓰고 여행해도 된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다 사먹어도 되지만... 참고로 공항에서 가장 싼 에비앙 1리터가 3.8유로, 시내에서 1.5리터 생수가 0.19유로입니다.

 9. 제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노숙하던 날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사람이 제 1터미널 A게이트 부근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여자는 저 혼자였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11시쯤 되자 구석 자리를 찾아 하나 둘 흩어졌고 저 역시 사각지대를 찾아 길게 붙어 있는 의자에서 편하게 잤습니다.

 10. 그래도 결론은, 노숙은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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