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파티야(Opatija) - 곧 무도회가 열릴 것만 같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바다를 아드리아 해라고 한다. 그 바다 가장 깊숙한 곳에 도도하게 자리한 베네치아는 한때 ‘아드리아 해의 여왕’이라 불리며 지중해를 호령했다. 베네치아가 좁은 바다를 빠져나와 지중해 한복판으로 나올 때 크로아티아 해안 마을은 절호의 기항지였다. 특히나 바다를 향해 화살촉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불쑥 튀어나온 이스트라 반도는 최고의 기항지이자 전략적 요충이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는 500년 가까이 계속되었기에 이스트라 반도 곳곳에 여전히 베네치아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 거기에 크로아티아 해안 마을 특유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진 작은 마을을 여행하는 일은 언제라도 특별한 경험이다.
자그레브(Zagreb)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을 달리면 크로아티아 제 2의 항구 도시 리예카(Rijeka)에 닿는다. 리예카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또 다시 30여 분을 달리면 나타나는 오파티야는 작지만 기품이 넘치는, 마치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 속 마르가리타 공주와 같은 마을이다.
화창한 6월의 어느 주말, 버스 속 승객은 거의 대부분 동네주민인양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삼삼오오 모여 있다. 버스 속 유일한 동양인에게 관심을 가질 법도 하건만 그럴 겨를 없이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안내 방송은 따로 없지만 모두가 내리는 곳에 끼어 우르르 함께 내린다. 전형적인 항구인 리예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에 눈이 부실 지경. 길가의 건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크로아티아의 해안 마을의 건물은 대체로 회색 혹은 베이지색 돌벽에 주홍색 지붕이 대부분인데 오파티야의 것들은 노랑, 분홍, 민트색 등등 화사하기만 하다. 거기다가 장식은 어쩜 이리도 섬세한지! 과연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왕족, 귀족의 휴양지였던 도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시내버스는 바닷가에 면한 안죨리나 공원 앞에 멈춘다. 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나타나는 분홍색 건물, 빌라 안죨리나(Villa Angiolina). 지금은 한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여행 박물관이지만 한때는 매일 밤 파티에 불 꺼질 날 없던 귀족의 저택이었다. 내륙 국가인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이 처음으로 차지했던 바다. 그 바다가 아드리아 해라니! 왕족, 귀족들이 앞 다투어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택을 지나 내려오니 바다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걷는다. 맑은 여름날의 지중해는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어린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까지 길 위에 있는 사람 모두 행복해 보인다. 산책로의 중간쯤엔 오파티야의 상징인 ‘갈매기와 함께 있는 소녀’(Djevojka s galebom)의 청동상이 있고 길의 끝은 해수욕장이다. 파스텔 톤의 색에 익숙해졌던 눈이 깜짝 놀랄 정도의 원색의 파라솔들이 새파란 바다와 잘 어울린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그 길은 유럽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길이다. 같은 나라인 풀라보다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가 더 가깝다.
“여기까지 왔으니 넌 이제 어디라도 갈 수 있어!”
라며 떠남을 부추기는 것만 같다. 소심한 여행자인 나는 그 곳에서 한 발 내딛지 못하고 다시 오파티야 시내로 발걸음을 돌려 리예카로 돌아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파티야의 고급 호텔에서 하루쯤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혼자서 즐기기에는 너무도 사치스러운 풍경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다시 오고 말리라. 문득 빌라 안죨리나의 입장권에 쓰여 있던 문구가 생각났다.
“BECAUSE WE ARE ALL TRAVELERS."
언제까지나.
리예카에서 32번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된다. 자그레브와 풀라에서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오파티야의 시내버스 정류장은 빌라 안죨리나 부근에 있고, 버스터미널은 호텔 벨르뷰(Bellevue) 바로 옆에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빌라 안죨리나까지는 티토 거리를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되고 2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