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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05. 2024

역사 탐방과 함께하는 프레셔스깅

재미있고 유익한 프레셔스깅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이 적응될 즈음, 부모님께 지갑을 선물받았다.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부모님의 특단의 조치였지만, 당시 핑크색 3단 지갑을 열면 바삭바삭하게 마른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만 가득했다. 돈은 그저 구겨진 채, 언제 흘려도 모를 주머니에 쑤셔 들어가 있었다. 

“이음아, 지갑에 나뭇잎을 왜 넣어 다녀? 돈은 어디 갔어?”

“나뭇잎이 돈보다 더 예뻐서...”

단순한 이유였지만, 그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피카츄 돈가스를 사 먹을 수 있는 돈보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는 빨강, 주황, 금색의 단풍잎들이 더 특별했다. 하교 후, 운동장 벤치에 앉아 귀하게 모셔둔 단풍잎이 잘 있는지, 혹여 부서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고는 다시 애지중지 지갑 안에 넣어두었다. 단풍잎의 다양한 패턴과 풍부한 색감에 감탄하여 말을 걸기도 했다.




삼십 년이 넘도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은 채 살아왔지만, 환경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릴 적 자연에 느꼈던 감탄이 다시 깨어났다. 매달 진행되는 프레셔스깅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프레셔스깅이란 생태 관찰과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을 뜻한다. 자연환경을 관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을 느끼며 길을 걷는 동안 발견하는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OO님, 프레셔스깅하면서 재능기부 좀 하는거 어때요?”

“프레셔스깅하면서 지역 역사도 함께 배우면 재미도 있고,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구성원 중에 마을 역사 선생님이 있어서, 지역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기로 했다. 역사 수업과 자연 산책을 통합한 활동이다. 재미있고 유익해서, 지역아동센터나 청년연합회 등의 다양한 기관들의 참여도가 높다. 



2월에는 OO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했다. 

“여러분 눈앞에 있는 이것이 바로 고인돌이에요.”

“우와! 내 눈으로 직접 고인돌을 볼줄이야!” 

“우리 지역에서 현재까지 71개의 남방식 고인돌이 발견되었어요.”

“대에~박!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밟았던 땅을 제가 밟고 있다고요?”

아이들은 오며 가며 그저 큰 돌인 줄로만 알았던 존재가 역사책에서만 보던 고인돌임을 알고는 눈이 네모네졌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71개나 발견되었다니, 갑자기 8000년 전의 청동기 시대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 같다. 

“반달 돌칼이나 비파형 동검은 안 나왔어요?”

‘후훗~ 녀석들. 다음 프레셔스깅에도 오겠구먼.’ 뿌듯함과 기대감에 발걸음이 경쾌하다.




코끝에는 청량한 풀잎 향기가 맴돌고, 긴 머리카락은 유쾌한 바람과 함께 살랑거린다. 폭신한 흙을 밟으니 굳어있던 마음도 폭신해지고, 촉촉한 공기에 메말랐던 마음도 촉촉해진다. 지저귀는 새들의 멜로디를 따라 함께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덧 자연에 스며들게 된다. 숨결은 바람이 되고, 마음은 구름이 되어 푸른 하늘을 떠다닌다. 자연의 한 부분이 되면, 본능적으로 눈앞의 쓰레기들에 손을 뻗는다. 갈 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쓰레기가 오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은 환희에 넘치고,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20분 정도 낮은 산을 오르니 커다란 돌담이 보인다.

“여러분 여기는 조선시대 때부터 있던 봉수대라는 곳이에요.”

“아~ 전쟁 났을 때, 산꼭대기에 불 피우던 거요?”

“맞아요. 봉수대에서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정보를 전달했어요. 1개는 평상시, 2개는 적군이 출현, 3개는 적군이 국경에 접근, 4개는 적군이 침입, 5개는 적군과 교전 중이라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 지역에는 총 7개의 봉수대가 있어요.”

“밤에 집에 와서 자는 동안 적군이 쳐들어 오면 어떻게 해요?”

“봉수대는 24시간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봉수꾼은 아마 이 근처에서 농사를 지어 끼니를 해결했을 거예요.”

“헐... 고기반찬도 못 먹고 매일 풀만 먹었겠네요.”

“당시에는 아버지가 봉수꾼이면 자녀도 무조건 봉수꾼이 되어야 했어요. 자식들에게 고된 삶을 물려주기 싫어서 도망갔다가 잡혀서 죽은 봉수꾼들도 많았어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나 때문에 아빠가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연기가 퍼져 올라가는 것을 막고, 더 진하고 밝은 불빛을 만들기 위해서, 소나 말의 똥을 넣어서 불을 피웠대요.”

“으악! 더러워!”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메뚜기처럼 뛰어오른다. 땅에 붙은 엉덩이를 떼내고는 킁킁거리며 서로의 똥구멍 냄새를 맡는다.     



『에스키모와 인디언 문화』라는 책에서는 ‘대지의 어머니’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인디언들은 아기가 태어난 지 사흘 후면 언덕으로 데려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인사시키고, 대지의 어머니에게 발을 닿게 하고 해와 물, 불, 보름달과 별에게 소개를 한다. 짐승을 사냥을 할 때도 “내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이제 너를 죽이려 한다.”, “고맙다. 내가 죽인 사슴 형제. 그대는 진정으로 날쌔고 강인하며 민첩하였다. 형제여.”라며 자연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자연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다. 자연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모든 생명체와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태도이다.      



자연으로부터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분별하게 훼손했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자연이 제공해 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가치를 무시했던 이기적인 순간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나친 소비와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생태계는 점차 그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가족으로 여기고 함께 공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일이라 믿고 싶다.



“얘들아, 오늘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두 끼(무한리필 즉석떡볶이 뷔페) 가기로 한 거요!”

역시 고인돌과 봉수대는 ‘두 끼’를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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