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Jun 05. 2024

수레를 버려야 찾을 수 있는 행복

멈추어야 보이는 내적 여유로움

끊임없는 호기심과 학습 열정은 내 삶의 엔진 같은 존재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서 삶의 활기를 얻기 때문에 주말이든 평일이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배우는 시간을 언제나 만들어낸다. 빵을 좋아해서 제과제빵을 배웠고, 커피를 좋아해서 바리스타 과정에 등록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커피 대신 차를 즐기게 되면서, 최근에는 딸아이와 함께 블렌딩 Tea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늘 이런 식으로 배우고 싶은 것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이음아, 이번 주말에 같이 점심 먹는 거 어때? 혹시 시간 안되면 평일 저녁도 괜찮고.”

“누나, 이번 주말에 같이 애들 데리고 캠핑 가는 거 어때?”

“언니랑 커피 한잔하기 너무 힘드네. 지금 내가 커피 사 갈 테니까 잠시 놀이터로 나올래?”

화, 목, 금요일에는 퇴근 후에도 일정이 있고, 주말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배우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늘면서, 어느새 일정이 그렇게 쌓이게 되었다. 딸아이가 배우는 것도 있고, 내가 공부하는 것도 있고, 함께 배우는 시간도 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도 어딘가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곰과 수레』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곰과 수레』의 첫 장면에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곰이 등장한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표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수레를 주운 후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곰은 하루 종일 수레에 무엇인가를 담는 생각만 했다. 예전처럼 하늘을 볼 시간도,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땅만 보며 등을 구부린 채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레는 물건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수레 안에 있던 물건들은 흘러내리고 쏟아졌지만, 곰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레에 무엇인가 더 담을 것을 찾느라 온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곰은 수레에 물건들을 채우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바람 소리도 폭풍 소리도 듣지 못했고, 심지어 커다란 나무가 자신 쪽으로 부러져 내리는 것도 몰랐다. 다행히 종달새가 소리쳐 알려준 덕분에 곰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야 곰은 종달새를 보며 잊고 있던 하늘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수레를 버려두고 떠난다. 곰은 다시 행복해졌다. 


첫 장면에서 곰은 분명 자유롭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은 곰에게 정서적 만족과 안정감을 주었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곰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곰은 수레를 주운 후, 내적 여유로움을 잃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고, 바람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그는 수레에 무엇인가를 담고 채우는 데 몰두하며 살아갔다. 수레를 끌고 다니느라 지쳐가는 곰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지 점점 잊어버렸다. 이는 곰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내적 여유로움을 잃은 삶은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내적 여유로움을 잃고 살아간다. 빽빽한 도시, 바쁜 일상,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연구에 따르면, 충분한 휴식과 여유로운 시간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개선하며,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적 여유로움이 우리의 정신적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단순한 산책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곰의 모습에서 나를 만났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학습 열정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곰이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꼈던 행복을 다시 찾고 싶다. 바쁜 일정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그들과의 소중한 연결과 교류가 주는 삶의 의미를 잊지 않고, 서로의 삶이 얽히고설키며 흐르는 아름다운 연대를 느끼며 살아야겠다. 




“엄마, 시계, 새장, 울타리, 바퀴, 종... 이런 게 곰한테 왜 필요했을까?”

숲에서 보기 힘든 물건이기도 하고, 어떤 일관성도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줍는 모습에, 딸아이는 의문을 품었다. 곰은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수레를 채우기에 바쁘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건을 수레에 담는 행위가 곰에게 성취감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취감은 점차적으로 수레에 물건을 담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변해갔다. 수레는 곰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고, 곰은 무엇을 왜,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단순히 수레를 채우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된다. 작가는 시계를 통해 곰이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음을, 새장을 통해 자유와 새로운 기회를 포기하고 있음을, 울타리를 통해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음을, 바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잊고 있음을, 종을 통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도 외부적인 성공을 위한 욕구에 사로잡혀 내면의 소망이나 가치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않고 무턱대고 노력한다면, 그 열심은 헛된 낭비가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멈추어 생각하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띵, 빙빙, 칭칭칭, 통통통통, 땡땡땡땡땡”

분명 수레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여러 번 났지만, 곰은 수레의 파손과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레에 물건을 채우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외부의 변화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곰의 시야는 수레에 대한 집착으로 점점 더 좁아졌고,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신의 관심사나 욕구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주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 때와 비슷하다.      


곰이 수레에 집착하여 자연과의 연결을 잃고, 주변의 위험에도 무감각해진 것처럼, 우리도 성취나 목표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삶의 균형을 잃을 수 있다. 건강이나 소중한 관계를 깨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과도한 열심은 오히려 우리의 삶이 좁아지고 불안해지게 만들며, 다른 가능성을 놓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되돌아보고, 삶을 더 다양하고 균형 잡힌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충분히 자고 쉬어도 계속 피곤함을 느끼거나, 주의력이 떨어지고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며, 면역력이 저하되는 증상이 나에게는 마치 수레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가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을 때,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조심해! 나무가 쓰러져!”

다행히 종달새의 경고로 곰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도 변화와 위험을 경고해 주는 종달새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 같은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고, 피곤함, 스트레스, 우울감 등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들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이 종달새 역할을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끼지 못할 때 삶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아침 햇살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을 때, 창문 너머 새소리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을 때, 봄의 새싹과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나뭇잎이 계절의 노래를 흔들 때의 감동을 놓칠 때, 바람이 주는 위로에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을 때, 자연의 환희가 더 이상 나를 감싸지 못할 때, 내면에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음을 느낀다. 각자의 종달새를 알아차린다면, 삶의 균형을 되찾고, 각자에게 필요한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곰이 수레를 버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처럼, 우리도 외부적인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때,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욕구와 필요성을 이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 일과 여가, 혼자만의 시간과 타인과의 교류 등 삶의 여러 측면을 균형 있게 조화시켜야만 내면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때로는 멈추어 생각하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며 삶의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마음이 원하는 일들이 여전히 많지만, 우선순위를 정하고, 몇 가지 일정을 줄이기로 했다. 나와 다른 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내어주고 싶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느끼며 현재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단순하지만 진솔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개의 노, 주체적 삶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