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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09. 2023

커피 한잔하듯 글을 쓴다

당분간의 이야기 by 이음

나는 역시 이번에도 돈이 안 되는 일을 시작한다. 글을 쓰는 일이다. 만약 누군가가 “왜 글을 써?”라고 묻는다면, “그냥 쓰고 싶으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따금 입안에 도토리를 잔뜩 물고 조금씩 꺼내 먹는 다람쥐처럼, 읽고 싶은 책을 양 볼에 가득 넣고 조금씩 음미하는 다람쥐가 되는 상상을 한다. 다람쥐는 별 아래에서 오늘 먹은 도토리에 대해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 종일 도토리를 찾아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다람쥐에 가깝다.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아파트 대출금과 각종 할부금과 씨름하는 독박육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다. 반복되는 책임의 굴레에서,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거창하고 정교한 계획은 없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을 쓰는 것이다. 어쩌면 고독한 낙서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마음(글)을 쓰기로 결심한 동기를 찾는다면, 인생을 대충 살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내는 것에 급급해서 나를 돌아보지 못했고 솔직히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머릿속에는 늘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무한히 쌓여가고 있는데, 그것들이 정리되지 않고 쌓여가니 더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마치 산더미처럼 쌓인 분류되지 않은 세탁물들 같았다. 양말 한 켤레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리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했고 글쓰기라는 청소기를 선택했다. 실제로 글을 쓰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단조로워지고 정리되며 불필요한 것들은 비워졌다.      




사실 글을 쓴다고 해서 외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전히 일과 육아가 뒤엉킨 하루가 반복된다. 그런데 내적인 부분은 달라졌다. 먼저 내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면 깊숙한 곳의 비밀스러운 문을 열고, 의식 저 편 깊숙이 새겨져 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그렇게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감정과 경험을 끊임없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과 한다.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좋은 글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글은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 외에 나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밀어 넣은 것은 글쓰기다. 아직은 낙서와 같은 글이지만,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가꾸어가다 보면, 영혼을 울리는 따뜻하고 친절하며 선함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겠지. 그렇게 글쓰기는 내 삶의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또한 생각의 가지치기를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 쓰려면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동안 돈 쓰는 재미만 알았다면 이제는 글 쓰는 재미를 알고 싶다. 돈 쓰는 재미가 향긋한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순간의 기쁨과 같다면, 글 쓰는 재미는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 생각의 씨앗을 심고 정성으로 가꾸면서, 아름다운 글로 꽃 피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얻는다. 비록 훌륭한 문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다양한 글들이 모여 어떠한 형태의 정원을 이룰지 기대하고 궁금해하며 글을 쓴다.      



돈은 없어서 쓰는 재미를 못 느낀 적이 많지만, 글 쓰는 재미를 막는 것은 없다. 물론 내 표현력과 상상력의 한계는 예외다.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노트북이 있다. 내 약점과 결핍을 직면하는 용기와 어설픈 글을 드러내는 용기, 다시 글을 쓰는 용기만 있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해방감과 통쾌함을 느끼며,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거나 쓴다.      



글을 쓰면서 무엇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와 커피 한잔하듯이 글을 쓰기로 했다. 별다른 일이 없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 사진출처: Pix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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