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Nov 28. 2023

영원한 인연

당분간의 이야기 by 이음

새벽 4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떠진다는 것은 매일 겪어도 놀랍고 감사한 선물이다. 조용히 거실에 나와 성경을 읽고 속삭이듯 기도한 뒤, 전날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다. 새벽 시간의 소박한 일상은 앞으로 있을 하루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다. 그러나 요즘 새벽 시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눈은 떴지만, 의식은 정처 없이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아 놓으려 하지만, 성경의 행간과 기도 사이의 호흡, 책 페이지들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몸과 의식이 단절된 듯하다. 기계적으로 먹고 일하고 걷지만, 마음은 현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 일상을 이토록 산만하게 흩트려 놓는 것은 ‘거처를 수도권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뜬금없고 황당한 질문이다. 익숙하게 걷고 있던 길이 보이지 않는 숲을 휘감는 낯선 길로 변했다. 길을 안내하던 표지판들이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왜 수도권인가. 직업적 기회를 얻는 것도 아니고, 딸아이의 교육적 매력에 대한 이끌림 때문도 아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고층 건물들 속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 입은 아이의 두려움과 욕망에 맞닿아 있다.      


한때 내 전부였던 엄마는 마흔세 살의 여린 나이에 돌아가셨고, 그녀의 짧은 삶은 인생의 덧없음의 아픈 그림자를 드리웠다. 삶이란 그렇게 깨지기 쉽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십 년, 이십 년 다가오지 않은 먼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노라 다짐했다. 거창한 계획 없이, 적당한 절제와 성실과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음미하듯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목표 따위는 없었다.  

    



이러한 내 개똥철학에도 이변이 생겼으니, 딸아이가 세상에 나와 첫 호흡을 시작한 순간이다. 딸아이를 안고 기도했다. 

“하나님, 오래 살고 싶습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 아이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그녀의 삶에 필연적으로 펼쳐질 외롭고 고단한 모든 순간에 그저 딸아이 곁에 있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남들보다 조금 더 겪어야 했던 외로움과 고독을, 딸아이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목표는 딸이 성인이 되어 수도권에 정착할 확률이 높다는 확률론적 계산으로 이어졌고, ENFP인 나는 큰 망설임 없이 이사를 고민했다.      

  

수도권의 집값은 지금 사는 집보다 몇 배나 비쌌지만, 맞벌이를 한다면 다행히 월세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 안정적인 직장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더 놀라운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딸아이에게 수도권으로의 이사를 넌지시 이야기했다. 

“사랑아, 우리 서울로 이사하는 거 어때?”

“왜요? 난 여기가 좋아요. 엄마가 가고 싶다면 생각해 볼께요.”

단순하고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지난 열흘간 쌓아온 계획의 탑이 무너졌다. 허무하고 허탈했다.    

 

동시에 그녀의 돌직구는 내 안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를 발견하게 했다. 어릴 적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의 상처가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오게 했다. 딸아이는 수도권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적도 없고,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수도권에서의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나 혼자 미래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면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에 대한 계획을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마흔 살에 선택의 원동력이 개인적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외부나 타인의 영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도 이상하다.      



사실 어머니의 존재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유형적인 것을 넘어선다. 2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늘 나를 일으키는 부드러운 손길로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의 영향력은 아직도 내 존재의 본질에 스며 있으며 내 삶의 일부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풍요로움의 진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삶에 집착하는 일상과 마음의 조급함에 의해 무뎌졌던 것 같다. 이번에도 딸아이로부터 명료하고 진정한 답을 찾았다.     


불확실한 내일의 그림자를 쫓는 대신, 딸아이와 함께하는 오늘을 반짝이게 보내기로 다짐했다.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서울로 이사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있지 않고, 함께 나누는 포옹의 따뜻함과 마주 보고 웃는 단순한 기쁨에 있다. 주고받는 눈빛과 포옹의 따뜻함이 딸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새겨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딸아이 곁에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이 와도, 딸에게 여전히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영원한 인연이 계속되기를.  




< 사진출처: pixabay >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한잔하듯 글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