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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04. 2023

아이와 함께 그림책 만들기

당분간의 이야기 by 이음

누가 그랬는가. 엄마가 책을 읽으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다고. 손에 책을 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하는 딸아이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사랑아~ 이거 너무 재미있다.”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와 인자한 미소로 딸아이를 부르며 그림책을 편다. 돌이 지나지 않은 딸아이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최선을 다해 기어 온다. 그러나 펼쳐진 책을 보자, 멈칫하며 배신감에 찬 눈빛으로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녀는 보란 듯이 책을 탁! 덮고는 다시 놀던 장난감이 있는 곳으로 기어간다. 끝까지 책에 관심을 끌고자 하는 엄마는 기어코 기어가는 딸아이를 따라가며 책을 읽어주고, 둘은 네발로 기어가기 경주를 한다. 이때부터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딸아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있을까? 

     

“사랑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그림책을 만들어 보는 게 어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림책이 될 거야.”

“정말? 그럼, 난 곰돌이를 그릴 거야.”

내가 타고난 협상가였던가. 딸아이는 놀랍도록 쉽게 넘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딸아이 그림 원본과 포토샵 후 >


처음부터 그림책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은 7살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그녀가 읽은 그림책은 총 5권도 되지 않는다. 고민 끝에 곰돌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어로 된 그림책을 몇 권 보여주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게 했다. 딸아이는 『I want my hat back –존 클라센-』의 책을 골랐다. ABC 조차 모르는 딸아이는 온전히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곰과 모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는 삽화와 함께 펼쳐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녀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포스트잇에 적어 그림 옆에 붙여 놓았다.   

   

이후 딸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할 때마다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I want my hat back』의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것도, 약간 변경하는 것도, 완전히 창작하는 것도 모두 그녀의 자유이다. 그림책을 빨리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딸아이가 창작의 열망을 느끼는 것에 있었기에, 내 안의 모든 인내심을 끌어냈다. 그녀의 속도로 즐거움을 느끼며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약 6개월이 걸렸다. 책에 대한 딸아이의 관심이 조금씩 커져가는 것을 목격한 시간이었다.   

 

< 실로 묶어서 표지에 붙이기 >


아이의 그림이 완성되어 갈 즈음, 유튜브로 포토샵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타고난 기계치에 컴퓨터 알레르기가 있는 터라, 한 가지 기능을 익히는데 남들보다 5배는 더 오래 걸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하는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을 두고, 왜 굳이 이런 미련한 노력을 할까. 아마도 딸아이의 손길이 묻은 창작물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엄마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포토샵으로 그림의 전체적인 조화를 맞추고, 색의 선명도를 높이고, 글자 폰트를 조정한다. 다음번에는 배경까지 입혀볼 계획이다. 처음 접하는 생소한 용어와 기능에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딸아이 작품의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포토샵 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림책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화방에서 두꺼운 종이를 샀다. 낱장으로 인쇄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책이 떨어지지 않게 실로 묶는 작업을 했다. 이 또한 실용적인 면에서는 불필요하고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딸아이에게 그것은 사랑의 흔적이 될 것이다.      


그림책 속의 글과 그림을 통해서 딸아이의 생각과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주인공이 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의 스토리는 평소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그녀의 마음의 본질을 드러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그녀가 우정을 쌓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수용과 거절, 도전의 순간이 드러났다. 연필과 물감을 통해 딸아이의 세계가 내게로 다가오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딸아이로의 발견과 연결의 여행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림책이 완성되면서 책에 대한 딸아이의 관심이 높아졌다. 나 또한 아이가 부담 없이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내와 이해를 배웠다.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함께 보낸 공동의 노력과 시간은 우리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했고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프로젝트였지만, 그림책이 완성되었다는 가시적인 결과 그 이상의 것을 남겨준 것이다.    

 

< 딸아이 그림책 완성본 >


완성한 그림책을 보여주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와, 엄마! 출판사에 이것 좀 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야망 있는 아이였던가.  

    

다행이다. 우리가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책이 되지 않아서.     




    

딸아이 맞춤형 그림책을 만든 과정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1.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선택한다.

   * 그림은 아이 수준에 맞는 것으로 선택

2. 아이가 그림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며 글을 쓴다. 

   * 텍스트에 집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

3. 지속적으로 격려하면서 아이가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 그림책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 약간 변경, 완전히 창작 모두 가능

4. 그림이 완성되면, 원본 그림을 스캔하고 포토샵으로 수정한다. 

   * 색상의 선명도, 전체적인 통일성, 글자 조정 등

5. 그림책의 느낌을 내기 위해 두꺼운 종이를 사용해서 인쇄한다.

  * 얇은 종이는 잉크가 비침

6. 표지는 인쇄 후 코팅하고, 단단하고 두꺼운 종이 위에 덧입혀 만든다.

7. 책의 낱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쇄용지들을 실로 묶어서 표지에 붙인다. 

  * 실로 묶는 작업은 생략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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