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보고
어나더 라운드 줄거리 (출처: 나무위키)
마틴(주인공)과 토뮈, 피터, 니콜라이 라는 네 남자는 덴마크 코페하겐의 같은 고등학교 교사이며 친구들이다. 본인들의 수업에 열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덩달아 열정도 사라졌다. 4명의 인생은 젊은 시절보다 훨씬 쳐지고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생일을 기념해서 가진 저녁식사 중에 술을 마시면서 이들은 갑자기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사람이 적당한 수준에서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재미로만 넘길듯했던 이 가설에 마틴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가설이 지루한 교사생활은 물론 위태로운 결혼관계에도 개선을 줄지 실험에 들어간다. 수업 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유머라곤 전혀 없고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없던 선생님의 수업에 웃음꽃이 피고 아무 변화도 없던 가족들과의 일상생활에도 활기가 생긴다. 마틴의 후일담을 들으며 4명의 친구들은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고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1.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을 유지할 것,
2.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그렇게 그들의 위험한 실험은 이어지게 된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교사' 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직접 방문했고, 방문을 위해 공부했던 덴마크의 교사들 이야기여서 상당히 흥미를 끌었다. 영화 속에서 삶의 무기력에 쩌든 4명의 교사는 술에 살짝 취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수업에 자신감이 갖게 되고 실제로 수업에 활기가 넘치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능력 없는 교사로 지탄받던 마틴의 수업은 그 어느 때 보다 창의적인 수업이 되고, 생기 없던 피터의 철학 수업에는 열정이 넘친다. 니콜라이의 음악 수업은 순간적인 그의 창의력으로 아이들이 엄청나게 몰이하게 된다. 축구 코치인 토뮈의 아이들은 없던 재량을 뽐내며 축구장을 누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도핑 주사를 맞아서 운동 능력이 향상된 운동선수가 도핑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강한 도핑을 필요로 하듯이 마틴은 더 많은 술을 마시고 0.05%의 열중 알코올 농도를 넘어 0.1% 즉 살짝 취한 상태를 넘어 진짜 취한 상태로 수업을 한다. 수업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순식간에 인기 수업이 된다. 이를 본 친구들도 마틴을 따라 더 많은 술을 마시며 수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위험한 그들의 실험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알코올이 가지고 있는 속성상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이들은 갈 때까지 가보는 실험을 하게 되고 삶은 망가진다. 마틴은 이혼하고, 토뮈는 알코올중독자 되며, 이들의 음주는 교내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 영화는 덴마크 사회의 심각한 음주 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덴마크는 북유럽 국가 중에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16세 이상이면 알코올농도 3.5% 이하의 술을 사고 마시는 것이 합법이다. 이게 우스운 게 알코올농도가 적은 술이면 10병이든 20병이든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바이킹의 나라에서 술을 얼마나 마시는가? 하는 것보다 나의 관심사는 수업에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교사들이 물론 픽션이지만 알코올로 인해 그들의 수업이 자신감이 넘치고 수업에 창의성이 마구 발현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허구이지만, 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에 술을 마시면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 꽤나 설득력 있게 연출되었다.
어쩌면 중년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에게 수업은 덴마크나 우리나라나 맨 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과 방언을 하는 제자들을 가리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즉, 제3자가 볼 때 성령이 충만하여 각국의 방언을 하는 상태와 술에 취해서 혀가 돌아간 상태를 비슷하게 놓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라 성령에 취한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업을 할 때 파국으로 치닫는 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의지하면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침에 기도하고 차분히 말씀을 묵상하여 은혜받고 출근한 날과 아침에 아침 식사는 커녕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출근하거나 아침부터 기분 나쁜 일을 격은 날의 1교시 수업은 참 다르다. 아이들이 똑같은 행동을 해도 전자와 같은 날은 허용이 되고 용서가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귀엽게 보이기도 하는 반면 후자와 같은 날에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것은 단순한 컨디션뿐만이 아니라 나의 영적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수업에서 초조해하거나, 특정 학생과의 관계에서 불편해하거나, 내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불안과 불신으로 인해 스스로 수업을 망친 경험이 있는가? 수업에서 평안이 없는 문제는 대부분 외적 환경에 의한 영향 보다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수업이라는 것 자체가 교수-학습 내용을 매개로 한 학습자와 교사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해 있는 날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즉흥적으로 했던 아이디어가 수업 속에서 빛을 발한다. 어떤가? 영화 속 교사들과 비슷한 상태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혈중 성령 농도 0.05%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수업 전에 화장실에서 술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틈틈이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알코올 농도를 유지한다. 체육교사 토뮈는 아예 생수병에 술을 담아 학생들 모르게 술을 마신다. 물론 실제 혈중 알코올 농도는 알코올을 섭취하고 약 90분 정도가 지나야 측정된다. 그래서 영화 속 장면은 일종의 영화적 허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을 참고한다면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수업에서 성령님께 사로 잡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전에 잠시 이번 수업과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의 불안과 교만을 동시에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또한 틈틈이 무시로 기도하는 일은 하루에도 수천번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교사에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 모르게 조용히 성령님을 구하며 기도한다. 나는 두 아이가 싸워서 내게 왔을 때 어떻게 생활지도 하면 좋을지 아이들을 타이르는 말을 하는 동시에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기도 한다. 나의 판단과 교만을 내려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주님께 구하는 것이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영화 속에서 친구들은 4명이 소그룹을 이루고 함께 모여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나서 어땠는지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게 도전을 준다. 술친구의 무서움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셔도 되는 술을 마시게 된다.
믿는 교사들끼리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일을 강력하다. 소그룹에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 후에 삶 속에서 성령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래서 어떤 기도응답이 있었는지 함께 나누고 모여서 함께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일은 혈중 성령 농도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다 보면 하지 않던 기도도 하게 된다. 보지 않던 말씀도 보게 되고, 동료 교사의 삶이 나에게 자극 혹은 위로 혹은 연민이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영화 속에서 처럼 소중한 친구를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선생님을 살리고 침체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게 만든다.
적절한 비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요즘처럼 수업하기 힘든 때도 없는 것 같다. 정서행동위기 학생은 각 반마다 한 명씩 있고, 학부모 민원이 없는 교실이 없다. 교직만족도는 조사 아래로 가장 낮은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교직 탈출은 지능순서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받는 만큼만 수업해라! 또는 열심히 해봤자 자기만 손해다. 식의 피해의식에 쩌든 말들이 암처럼 교직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정말 맨 정신으로는 수업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조금 취해 있으면 어떨까? 삶을 망치는 알코올이 아닌 삶을 살리는 성령에 취하자! 늘 성령에 취해 수업하시는 TCF 선생님들이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