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꿈꿔왔던 교토 여행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교토 1일>
7시 30분 인천공항 1T 출발
9시 15분 간사이공항 도착(피치항공)
교토역까지 공항고속버스로 이동
소고기 스키야키 덮밥으로 점심
히가시 혼간지
니시 혼간지
숙소 도착 후 짐 풀고
니조성
니시키 시장
오코노미야끼로 저녁 해결
2017년 가을 어머니 소천하시고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모 출판사에서 선배님으로 만나 친분을 맺은 형님이 도쿄 2박 3일 여행을 선물해 주셨고, 나는 마흔여덟에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보았다. 늘 어머니 병원 주변에서 위급 신호가 오면 달려갈 수 있는 수도권 내에만 있었다. 첫 직장에서 우수사원에 뽑혀 해외연수를 보내준다는 것도 거절하며 살아왔다. 아내와 아이들도 없는 공간, 2017년 12월 초 도쿄는 내게 새로운 나라이면서 신선한 세계였다.
청소년기부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깊었다. 새벽에 시장에 나가 일하시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긴 병간호의 끝에 이어진 도쿄 자유여행에서 낯선 자극들 앞에 깊은 위로를 얻었다. 도쿄를 다녀온 지 1년 뒤인 2018년 12월에는 교토에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창업에 한 해 동안 힘을 기울이다가 지친 마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한 실패와 좌절감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 무력해진 상태로 근근이 버티다 연말이 지나갔다.
출판과 NGO 홍보로 투잡을 뛰기로 하고 2월을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교토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교회 집사님의 제안에 가슴이 뛰었다. 내 열망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선물처럼 그렇게 교토 여행이 주어졌다. 새로 시작한 일들에 대한 일정 부담이 있었지만 너무 가고 싶어서 아내의 허락을 구해 응락을 받고 2019년 2월 9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심지어 아내는 5시 반 인천공항 도착해야 하는 나를 위해, 택시비 절감하려고 새벽 4시 반에 차에 동승해 주었다. 제1여객터미널에 내리면서 미안하단 말을 건네자 아내는 꼭 잘 쉬다오라며 축복해 주고 운전해서 돌아갔다. 편찮으신 장모님 돌봐드리러 낮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데 새벽부터 나를 위해...
7시에 보딩을 마치고 인천에서 교토로 피치항공 비행기가 떴다. 저가항공이면 어떠랴. 1시간 45분이 금세 흘렀다. 간사이 공항에 내렸다. 날씨는 흐렸지만 춥지 않았다. 포근한 바람이 불었다. 공항에서 교토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일본 특유의 간장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한국과 반대 방향 도로, 현대기아차는 한 대도 볼 수 없는 온통 외제차들(^^), 무채색의 일본 집들의 차창 밖 풍경은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재밌는 자극이었다.
교토역에 도착해 소고기 스키야키 덮밥으로 첫 식사를 했다. 동양을 이해하기 위해 온 서양 손님이 많았고, 혼밥을 즐기는 현지인도 많은 식당이었다. 국물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잡채와 쇠고기의 조화로 첫 식사 나쁘지 않았다.
히가시 혼간지 & 니시 혼간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의 동선을 감안해 히가시 혼간지와 니시 혼간지를 둘러보았다. 검정과 금색의 묵직한 위용, 천년 고도의 숨결은 사찰 풍경에 배어 있고, 눈에 담는 순간 그들의 역사 또한 감각 기관에 들어오는 듯.
사찰 정원의 벚나무에 벌써 꽃이 피었다. "길고 힘든 겨울, 참아가면 끝을 본다, 꽃은 핀다, 지금도 너의 꽃은 필 준비를 하고 있다. 잘 참고 견뎌라" 이른 벚꽃은 말해주고 있었다. 나무들을 가까이 보면 꽃망울이 있다. 내 삶에도 꽃망울이 있을까.
어렸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미닫이문들의 작은 주택들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처음 경험했다. 편리하고 자유롭고 있을 건 다 있는 말끔한 숙소였다. 짐을 풀고 버스로 니조성으로 향했다.
니조성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성쇠와 일본 역사의 변천을 간직하고 있는 옛 별궁. 1603년 축성 후 일본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이 별궁에 담겨 있다고 한다. 에도막부의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시대가 시작되어 봉건제에서 근대 민주국가로 급속한 변화를 이룬 역사적 무대인 니조성.
일본 건축의 황금기인 에도 초기의 유적답게 전시 아이디어도 좋고, 궁전의 복도를 걸으며 듣는 새소리(니노마루 복도를 지탱하는 못이 걸쇠와 닿으면서 나는 소리)도 신기했다. 벽화와 영주들의 마네킹, 그리고 궁전 정원들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관람객들에게 주는 특유의 감동이 있다. 우리 경복궁, 창덕궁도 이렇게 전시할 순 없을까.
니시키 시장
교토 첫날, 마지막 일정은 니시키 시장이다. 관광객 속을 누비며, 꼬치, 생선, 모찌, 어묵 등 일본 특유의 전통 음식들을 구경하며 몇 가지 먹어 봤다. 새벽에 일어나 많은 걸음이 따랐더니 시장했고, 허리와 다리도 무거웠다. 저녁 식사로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고마운 벗 최재혁 집사님과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 최 집사님 회사의 남자 대리 한 명도 동행했는데 총무 역할로 수고해 주어 나는 정말 편하게 첫 날을 다녔다.
6시 되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일찍 해가 떨어지는 교토의 하루, 신기했다.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주님께 감사하고 아내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