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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일본 여행, 교토 3일 _2편

둘째 날,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를 생각한 하루

by 황교진

<교토 2일>

교토 국립박물관(헤이세이치 신칸)
산주산겐도(삼십삼간당)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산넨자카
니넨자카
고다이지
마루야마 공원
지온인지
식품점에서 사 온 초밥, 우동, 김밥, 회 등으로 숙소에서 저녁 파티







교토 둘째 날 아침이다.
매일성경으로 마태복음 9장 27절~38절 말씀을 묵상했다. 예수는 보지 못하는 사람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며 목자 없는 양 같은 백성들을 가르치신다. 나의 곤궁한 처지를 바꾸실 유일한 분이 나를 택해서 믿음을 주셨는데 나는 왜 수시로 우울할까?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했다.

어제 식료품점에서 산 신라면 세 개를 끓여 먹었는데 스프를 조금 줄였는데도 엄청 맵다. 일본에서 담백한 음식만 먹다가 아침에 매운 신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숙소 밖을 나왔다. 어제 흐린 날씨와 달리 화창했다. 여행하기 딱 좋은 햇살이 비춘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롯데리아가 반갑기도 하다.


일본 버스는 뒷문으로 탄다. 승차할 때 살짝 버스가 기울어져 올라타는 승객을 배려한다. 앞문으로 내리면서 1일권을 결제(600엔)하면 날짜가 찍히면서 하루 종일 프리패스로 버스를 탈 수 있다. 운전기사는 출발할 때마다 출발을 알려주고, 다음 운전수와 교대할 때 정중하게 승객들에게 인사한다. 정확한 매뉴얼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버스 기사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한 도전이다.




교토국립박물관


2-3.jpg 교토국립박물관 헤이세이치 신관 전경



오늘 첫 방문지는 교토국립박물관이다.

여행지의 백미는 박물관 관람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문을 연 헤이세이치 신관 이전에 1897년 개관한 본관은 궁정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를 맡아 처음에는 본관을 3층으로 계획했으나 1891년에 발생한 미노-오와리 지진의 영향으로 단층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122년이나 된 이 박물관은 외관만 관람이 가능하다. 신관인 헤이세이치는 2004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리모델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 거장 다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했다. 설계만 11년, 공사기간은 5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적성에 안 맞아 힘들었지만 나는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유명 박물관을 가면 건축가에 관심이 간다. 박물관 앞의 호수와 박물관 창호를 보며 안도 다다오가 생각났지만 다른 거장 두 분의 작품이다.



2-4.jpg 1897년 개관한 본관, 서울역 느낌이 난다
2-5.jpg 박물관 정원의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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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립박물관 실내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오디오 한국어 안내(500엔) 장비를 대여해 설명을 들으며 그들의 역사를 공부했다. 1층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불상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거대한 불상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분위기에서 모든 생각을 정지시키는 힘이 있다. 저주를 막아주길 비는 무서운 얼굴의 신과 축복을 비는 자비로운 얼굴의 불상들이 위용을 가득 뿜어내며 전시돼 있다. 큐레이션이 뛰어난 전시관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2층은 일본과 중국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중국의 피카소로 통하는 치바이스(제백석)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1층의 일본 불상과 칼, 그림, 서예들에 이어서 본 중국의 격동기를 거치며 그림을 그려온 치바이스의 작품들이 한중일의 지역의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역사와 유물이 담긴 박물관을 보면 마음이 넓어지고 인류의 힘이 전하는 상식과 지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산주산겐도(삼십삼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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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립박물관 바로 앞에 산주산겐도(삼십삼간당)가 있다. 서른세 칸의 건물 안에 중앙의 거대한 불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목조불상 500구씩 1000구가 빽빽하게 서 있다. 불상 조각가 단케이가 82세 때 중존을 만들었고 가마쿠라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124구는 헤이안 시대 작품, 나머지 800여 구는 가마쿠라 시대에 복원된 것들이라고 한다. 1001구의 관음상과 인도에서 기원한 다양한 28구의 불상들까지 모두 얼굴이 다르다. 그 얼굴들 중 자신이 만나고 싶은 얼굴이 있다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할까, 다양한 신을 모시는 다양한 불교 국가가 일본인 것을 생각게 한다.
마당에 나와 둘러본 건조물도 묵직한 기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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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jpg 산주산겐도(삼십삼간당)의 정원



기요미즈데라(청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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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이동한 기요미즈데라는 산 중턱에 있다. 걸어서 올라가는 길에 기념품, 음식점들이 아기자기한 크기로 즐비하다. 휴일이라 그런지 현지인보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아 보인다. 체력을 보충하려고 핫도그를 먹고 기요미즈데라 표를 끊었다.


절벽 위에 위치한 중앙 사원은 보수 중이지만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어둡고 복잡한 인파들로 정신이 없지만 막상 들어서면 탁 트인 전망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봄가을에 절경이라고 한다. 물론 사람들 많은 시기인 건 감안해야 한다. 사찰 안에는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지슈진자(地主神社)와 마시면 건강, 학업, 연애에 효험이 있다는 오토와 폭포(音羽の瀧)가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세 줄기의 물을 다 먹으면 효험이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을 마시려고 꽤 길게 줄을 서 있다. 8세기에 오토와 폭포를 발견한 엔친 대사가 이곳에 관음상을 모신 것이 절이 생긴 시초라고 한다. 기요미즈(淸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절 입구 앞의 가게에서 기모노를 빌려 입고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왜 굳이?


등산한 것처럼 다리에 피로가 누적됐지만 기분은 좋다. 역사가 담긴 낯섦은 충돌하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그 낯섦의 기분 좋은 물가에서 카타르시스의 얻는 선물이다.



산넨자카, 니넨자카


2-18.jpg 경사로로 이어지는 산넨자카, 니넨자카.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정겹게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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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에서 연결된 내리막길에 산넨자카, 니넨자카가 있다. 우리의 인사동, 북촌길 느낌이다. 가회동 한옥마을과 같은 옛 지붕의 아기자기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지며 개성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떡코치 등을 파는 곳이 많고 헬로키티와 토토로 샵도 만날 수 있다. 여행 온 한국 연인들과 젊은 친구들 목소리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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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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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비싼 관람료(600엔) 앞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 남자 청년들이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도 지불하고 들어왔다. 이곳은 우리와 악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히데요시의 부인인 키타노만도코로(네네, 출가하여 고다이인코게츠니(高台院湖月尼)라 칭함)가 케이초우(慶長) 11년(1606)에 세운 절이다. 칸에이(寛永) 원년(1624) 7월 켄닌지의 산코오쇼(三江和尚)를 주지스님으로 맞이하여 고다이지라 칭하였다. 조영하는 데 있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정치적 배려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하였기에, 절의 경관은 극히 장엄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이곳의 가을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 하얀 돌을 깔아둔 정원과 대나무숲, 독특한 모양의 나무들이 있어 마루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면 힐링이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되는 걸음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차분히 감상하진 못했지만, 교토의 유서 깊은 절들은 각각의 특색이 있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마루야마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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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넓은 공간에 버스킹하는 청년 한 명의 기타와 노랫소리가 있고 비둘기를 쫓는 아이들이 있다. 잠시 여백을 가지는 이 공원의 호수(연못?)가 있어서 이어지는 사찰 둘러보기에 휴식이 된다.



지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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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지막 코스다. 경내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으며 사색하기 좋다. 이곳에 우리나라 양식이 섞인 종이 있다. 신발을 비닐에 담아 아미타전으로 들어가 종교 양식과 숭배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된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이 사찰에 오는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 걸까? 재물? 건강? 사실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며 장수 국가가 아닌가. 우리 기독교인은 무엇을 기대하며 바라고 사는 걸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잘먹고잘사니즘이며 돈인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난 중에 말씀하시고 고통 중에도 형통하며 살아 있는 눈빛으로 의연하게 사는 모습은 이 땅에서의 복이 아니라 천국 소망에서 가능하다. 순회하는 세계관이 아닌 창조와 죽음, 부활 소망을 가진 인간에 대해, 교토 이틀째의 자극에서 받은 메시지다.


오후 4시면 사찰 관람을 마감시킨다. 열심히 하루를 알차게 둘러봤다. 많이 걸으면서 올라가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일본 건축물과 학교들에 시선이 꽂힌다.




식품점에서 사 온 초밥, 우동, 김밥, 회 등으로 숙소에서 저녁 파티


아침을 라면으로 먹고 점심을 건너뛰며 돌아다녀 시장기가 엄습했다. 어제처럼 식당에서 돈 쓰는 것보다 숙소 앞의 식품점에서 먹고 싶은 것을 쓸어와서 숙소의 식탁에서 먹기로 했다. 식품점에 없는 게 없다. 한국 도입하면 잘 나갈 것 같은 메뉴도 여럿 눈에 띈다. 회, 초밥, 김밥, 우동, 과일 등을 샀는데 가격이 착한 편이다. 우동이 특이하다. 젤리 형태의 응고된 국물이 들어 있어 레인지에 넣고 가열하면 따뜻한 국물의 우동으로 조리된다. 물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신기해서 일본어 설명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글을 쓰기 전에 오늘 아침에 본 말씀을 한 번 더 묵상했다. 목자 잃은 양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에게 오신 그분을 바라본다. 이 감사한 마음이 결핍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사람이 있고, 풍성해지면서 타버린 연탄 발로 차듯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느 쪽일까? 딱 필요한 만큼 주시고 예상치 않은 때에 풍성히 주신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믿음의 문제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어려운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경제력이 힘인 시대를 살아가지만,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는 내가 가지는 추구의 문제다. 추수할 일꾼을 찾으시는 분께 내 곤궁한 처지도 맡기고 긍휼을 구하며 살도록 하자. 여러 신을 모시는 돈과 장수의 나라에서 선한 목자를 바라봄의 가치를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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