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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일본 여행, 교토 3일 _3편

셋째 날, '미리 걱정하는 습관' 덜어내고 '낙천적인 자유의 품'으로

by 황교진

<교토 3일>

도시샤 대학
교토고쇼
헤이안진구
수로각
난젠지
철학의길
긴카쿠지(은각사)





교토 3일째는 비가 내렸다. 오전에 계속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교토 북동쪽을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개는 비라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고 내리는 대로 맞기로 했다.

3일째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건축 사찰과 건물보다 주로 정원과 길을 구경했다. 많이 걸었고 생각한 하루여서 어제와 다른 컨셉의 특색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거의 100장 가까이 찍었다. 겨우 선별해서 골랐다.



도시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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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3일 아침의 첫 도착 장소는 도시샤 대학이다. 역사가 올해 144년이나 된 명문 대학이며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됐다. 우리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바로 정지용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곳이다. 붉은 벽돌 건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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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163.jpg 윤동주의 필체를 그대로 옮긴 서시


납북 시인을 금기시한 시대 상황 때문에 정지용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가요 가사에도 나온 <향수>를 지은 분이다. 윤동주는 정지용 시에 심취해 영향을 받았고, 연희전문대 졸업 후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에 유학했으나 향수병으로 적응하지 못하다가 도시샤 대학에 전입한 후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공부하며 안정된 유학생활을 보낸다. 그러다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생체실험 의혹이 있는 같은 주사를 맞은 송몽규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20일 후 사망했다.


역사 기록으로 남은 이 자료를 상기하며 정지용과 윤동주 시비를 보니 울컥한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도 감정을 찌른다. 그 시대에 일본인은 칼을 든 폭군이면서 아시아의 형님인 체 한다는 사실에 분노와 슬픔이 엉켜온다. 시비의 글씨체는 실제로 서시를 썼던 윤동주 필체라고 한다. 정지용 시인의 시비는 <압천>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교토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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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샤 대학의 바로 건너편에 역대 천황들이 살던 궁성인 교토고쇼가 있다. 신으로 대우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살던 곳답게 아름다운 정원과 지위에 따라 머무르던 방과 연회장으로 쓰인 건물들이 있다. 입장할 때 가방 검사를 하고 방문객 명찰 목걸이를 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즈넉하고 차분하게 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간들을 감상했다. 도시샤 대학에서 정지용, 윤동주 시비를 보고 와서인지 근대 한국 역사와 일본의 상징적인 천황의 공간이 섞이지 않은 채 억압과 권력, 신분과 차별, 가난한 나라와 제국주의, 예술과 폭력 등 사람의 인생이란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헤이안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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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금세 도착한 곳 헤이안진구는 1895년 교토가 수도로 정해진 지 110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신사이다. 화려한 주홍빛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오전 내내 내린 비도 그쳤다. 동선의 입구에 있는 미술관은 시간상 패스했다. 입장료를 냈는데 신사 뒤쪽의 정원인 신엔에 들어가려면 또 입장료를 내야 한다. 봄의 벚꽃과 여름의 붓꽃이 아름답고 넓은 정원이라고 하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신사에서 시주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저렇게 열심히 정성 들여 돈을 내고 비는 것과 교회에서 예배하며 헌금하는 생활을 생각했다. 무엇인가 기대하며 물질을 내는 이들의 모습과 모든 게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실천하는 삶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어야 할까. 최근 스칼렛 요한슨이 스무 살에 주연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년작)를 보았다. 도쿄와 교토의 여러 배경이 나오는데 헤이안진구의 정원을 걷는 스칼렛 요한슨을 볼 수 있다.


3-19.jpg 헤이안진구에서 수로각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수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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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진구를 나와 걸어서 이동하는 길이 참 아름다웠다. 부잣집 동네 같은 느낌인데 집과 길, 나무가 잘 정돈되어 있고, 작지만 깔끔하고, 깨끗한 하천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흘렀다. 생경한 무엇인가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새로운 길을 걷는 기분이 참 좋았다. 20분 이상 걸어 도착한 난젠지의 주변에 조금 올라가면 수로각이 나온다. 블로거들 설명에 이곳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찍는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고대 로마의 수로가 연상되는데 붉은 벽돌에 빛바랜 세월의 흔적이 있고 고풍스러운 이끼가 멋을 더해 준다. 오늘 다녀 본 곳곳의 정원에 이끼가 매력적으로 눈을 호강시켜 주었다. 역시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인들이 많이 와 있다. 잠깐씩 들리는 한국어가 반갑다. 롱패딩 입은 학생들이 있어서 여기도 롱패딩이 유행하나 싶었는데 한국 학생들이었다.



난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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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로 알려진 절이 난젠지다.

건물보다 정원과 주변 모습이 아름답다. 500엔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뒤 본 정원의 모습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번 교토행에 내가 낸 소액의 회비가 일행에게 넘 미안한 마음 슬슬) 처마 밑 마루에서 내려다본 석정과 멋진 나무들만 봐도 감동이 느껴진다.



철학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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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젠지에서 도보로 이동하면 나오는 철학의길.

왜 철학의길일까? 2.5킬로미터 정도 운치 있는 길을 걸었는데 오늘 코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니 교토 여행 3일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철학의길을 걷는 순간이다.

교토대학 니시다 기타로 교수라는 철학자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겨울이어서 꽃이 핀 나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고즈넉하며 아름다운 올레길 분위기다. 단순하게 걷는 것만으로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주택들 사이에 작은 상점도 아름답다. 경차를 기막히게 주차한 모습에 일본인 특유의 디테일을 발견한다. 아기자기함과 차분함이 이 길의 특징이다. 한국 인물 중에 세계적인 철학자나 사상가가 드문(없는?) 것이 산책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 스쳐 지나간다. 벚꽃이 활짝 핀 봄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긴카쿠지(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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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여행 3일의 마지막 코스 긴카쿠지에는 3일 여행 중 제일 많은 관광객을 만났다. 아마도 교토에 오면 꼭 가야 할 관광지로 이름 난 곳인 듯하다. 십 대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한국인 가족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장난꾸러기 아들 둘을 데리고 올 날을 꿈꾼다. 긴카쿠지는 고색창연한 건물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 곳이다. 정원이 평면이 아니라 경사로에 오밀조밀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시선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인다. 산책로가 좁고 오르막길도 있지만 디테일이 묘하게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다. 수령이 600년이나 된 소나무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끼들이 조화를 이루어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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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쿠지는 4시 반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입구 옆의 찻집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일본식 단팥죽이 양은 적었지만 단맛에 따뜻한 국물이 속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당고라는 떡꼬치도 맛보았다. 노인 한 분이 주문을 받고 친절하게 조리해 주셨는데 다음에 킨카쿠지를 오게 되면 이 집에 또 오고 싶다. 따뜻한 화롯불에 둘러앉아 쉬면서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피로를 풀었다. 그 가게를 나오니 관람객들이 모두 내려간 뒤라 한적해진 경사로가 분위기 있게 맞이해 준다. 걸어 내려오다가 문을 닫은 상점들 가운데 5시부터 음식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튀김덮밥, 오므라이스, 돈가스 등을 시켜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양이 꽤 많은 편이었다. 소식을 하는 일본인과 달리 관광객용 사이즈인지, 우리가 많이 먹게 생겼는지 몰라도 열심히 걸어 다닌 뒤의 시장기가 입맛을 더 돋웠다.





이렇게 3일의 교토 여행이 끝났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혼자 간사이 공항으로 고속버스로 이동해 귀국했다. 여행을 선물해 주신 집사님 일행은 오사카로 비즈니스하러 떠났다. 2018년에 사회적기업 창업으로 사회 봉사 활동 외에 경제적으로 생활비를 벌지 못한 심란한 마음을 교토 여행이 크게 위로해 주었다.

갑자기 떠나오게 되어 더 설렜고, 2년 전 도쿄 여행과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여행과 견학은, 사람의 머리와 가슴을 풍성한 지식과 감동으로 채워 준다. 숙소에 와서 정지용, 윤동주 시인을 검색해 보고 울 뻔했다. 영화 <동주>는 감정이 눌릴까 봐 일부러 안 봤는데 오늘 도시샤 대학에서 본 시비와 그 인생들에 대해 자료를 찾아 읽고 가슴이 저며 왔다.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이 되지만 조금 힘이 난다. 아마 이전보다는 '미리 걱정하는 습관'을 덜어내고 '낙천적인 자유의 품'으로 한걸음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도 보고 싶다. 개구쟁이 두 녀석, 언젠가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자주 데리고 다닐 소망을 가져본다.
언어 공부, 역사공부의 열망이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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