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시각장애 딛고 판사의 꿈 이룬 김동현 변호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은 공익이면서 제겐 사익이기도 합니다!
연세대 로스쿨 출신의 김동현 변호사(38). 그는 카이스트에서 신소재공학과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불행히도 2학년이던 2012년 5월, 의료사고로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현실을 받아들여 시각장애 1급의 고통을 딛고 법 공부를 계속해 장애인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2019년 서울시 복지상 장애인 인권 분야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간절히 소망해 온 판사 임용을 앞두고 있다. 시각장애인 판사로는 최영 판사에 이어 김동현 판사가 두 번째다.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사를 향해 걸어온 길
김동현 변호사는 과학도로서 법과 경제를 공부하고 IT 관련 분야 법조인이 되고자 했다. 그러다 로스쿨 재학 중에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로 전맹 판정을 받고 시각장애인이 되는, 인생의 격변기를 겪었다.
“사고 후에는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어요. 시력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현실을 빨리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했죠. 두세 달 병원에 누워 있으니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의 옆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들의 현실에 낙심하지 않은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나라 첫 시각장애 법조인 김재왕 변호사와 최영 판사의 선례를 찾아보며 아들을 격려했다.
“어머니는 제게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어요. 부산에서 올라오셔서 제 생활을 도왔고 학교와 직장 가까이 이사 다니며 용기를 주셨죠. 저는 어머니 사랑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짧은 기간의 보행 훈련만 받고 2013년 1월 시각장애 등록을 한 뒤 3월에 복학했다. 로스쿨에서 많은 양의 공부를 하는 데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책 파일을 읽어주는 음성 전환 프로그램에 익숙하기 전인 그에게는 3학년 동기들과 2학년 학우들, 장애학생지원센터 도우미의 도움으로 공부에 파고들었다.
시각장애인이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증명된 현실이기에 김동현 변호사는 법조인의 길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점자를 익혀서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분량도 많아 그저 책 파일을 반복해서 들으며 공부에 전념했다.
우등생 졸업과 국내 최초 장애인 재판연구원
로스쿨에서 성적은 어땠는지 질문에 그는 활짝 웃으며 학점이 좋아 우등상을 받고 졸업했다고 한다. 변호사 시험에서 서술형 답안은 그다지 불리하지 않았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타이핑으로 시험을 보며 충분한 분량을 서술할 수 있었고 시험 시간 연장의 편의가 제공됐다.
가족들은 그가 변호사가 됐을 때보다 재판연구원이 됐을 때 크게 기뻐해 주었다. 2012년 영미의 로클럭(Law Clerk) 제도를 본 딴 재판연구원 제도가 시행된 뒤 장애인으로서는 김동현 변호사가 최초의 재판연구원이다.
“시각장애인 법조인 선배들을 보며 판사를 꿈꾸던 제게 재판연구원은 판사가 되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에 정말 기뻤어요.”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의 차별, 학대 사건 전문 변호사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 후 판사 임용까지 5년의 경력이 필요하다. 그는 재판연구원으로 2년 경력을 쌓고 지난 3년간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로클럭과 달리 현장에서 일할 때는 의뢰인과 관계를 맺고,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제대로 일해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결과로 보여드려야 했어요. 제 의뢰인 대부분은 장애우라 변호사의 시각장애를 이해해주었죠.”
두꺼운 법전을 청력에 의지해 공부하면서 새로운 판례나 최근 자료는 구하기 어려워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 온 파일을 공부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체감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뿐만 아니라 생존권 보호와 차별의 불이익에 특히 관심이 많다. 장애인 권익 옹호를 위한 일을 하며 그는 최영 판사에 이은 두 번째 시각장애인 판사 임용에 통과했다. 누구보다도 약자의 심정을 잘 아는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판사 법복을 입게 됐다.
법률과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김동현 변호사는 행정법에 관심이 많다. 여러 분야를 돌며 재판을 맡다가 기회가 되면 행정법원에서 일하고 싶다. 행정법은 기록이 정제돼 있고 형사 사건보다 장애인 권익을 위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현재 판사 임용 후 가장 걱정되는 바는 무엇인지 질문해 보았다.
“결국은 제가 하는 재판에 정확한 판결을 내려 시각장애인에 대해 의구심을 극복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공정한 재판을 할 것입니다.”
그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한 바 있고, 쇼다운(소리로 듣고 상대 골 포켓에 공을 넣는 시각장애인 스포츠로 테이블 하키 경기) 선수로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일상을 즐길 줄도 안다.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시각장애인과 로스쿨 생활
로스쿨에서 공부하며 그는 장애인 학생에 대한 지원이 부실한 대학들의 불평과 불만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연세대학교에서 받은 지원이 가장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의시설뿐만 아니라 특히 정서적 지원은 큰 힘이 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교수님이 제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인 김영일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고, 전 법무부장관 박상기 교수님은 제가 수업을 듣지 않는데도 저술하신 책 파일을 주시며 격려해 주셨어요. 로스쿨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제가 제일 편한 자리에 앉도록 배려해 주었죠.”
그는 자신을 가르친 교수와 함께 공부한 학우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해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끝으로 힘든 현실을 사는 청춘들에게 용기의 메시지를 전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법조인의 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도와주었고 뜻을 이룰 수 있었듯이요. 저 또한 후배들이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 인권은 저로서는 공익이 아닌 사익입니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도 공정한 재판을 수행하는 판사가 되어 법원 내부에서 개선할 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앞장설 것입니다.”
_글 황교진 / 연세소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