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삶이 묻어 있는 노래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두 권의 책과 온유 이야기
예배사역을 나름 오래했습니다. 지금 나이가 쉰하나이니 벌써 20년이 됩니다. 미국 유학과 예배 컨퍼런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실제 연합 예배팀 사역이나 교회 예배 현장에서 여러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예배일기를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예배에 대한 묵상을 일기와 함께 적어왔고 이를 책으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자》입니다.
이 책을 내려고 할 때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 아내입니다. “그리 특별한 글도 탁월한 글도 아닌데 왜 굳이 책을 내느냐? 당신이 책을 내지 않아도 다 알 만한 내용들이다. 당신의 욕심일 수 있다“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원고는 출판사에 넘어갔고 완성 책을 받아들고는 감격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내의 지적이 정확했습니다. 새로운 내용도, 전문적인 정보도 담겨 있지 않는 정말 평범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흥분해 있던 저를 그렇게 겸손케 하셨습니다. 제 흥분과 교만이 부끄러움과 겸손으로 바뀌어 있을 때 독자 서평을 통해 감동을 주셨습니다.
“전도사님도 이러셨어요? 저랑 별반 다르지 않았네요. 저도 한번 전도사님처럼 살아 보겠습니다.” 독자들이 같은 눈높이와 공감대를 가지고 솔직한 고백에 반응해 주셨고,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힘을 내겠다는 서평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2015년에 저는 둘째 온유를 희귀병으로 잃을 뻔했습니다. 병원에서 현대 의학기술로는 살릴 방법이 없다고 했으니 잃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 딸이었고 건강하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온유는 엄마와 마트에서 장을 보는 중에 갑자기 이상한 증세를 보여 급히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몸에서 생산된 항체가 오히려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는 희귀병인 ‘항수용체뇌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뇌사상태에서 원인이 무엇인지 겨우 찾아냈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집회 중에 아내로부터 아이가 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올라왔는데요. 멀쩡했던 아이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해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보고 긴 시간 경기를 하며 토하고 말라가는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는 아빠 심정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온유는 극심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고 치아도 빠지는 발작을 동반하며 61일간 사투를 벌였습니다. 병원도 포기했던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치유의 예수님을 움직이는 기도(눅 4:38~39)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한국 교회 안의 중보기도는 기도 부탁한 사람도, 기도해 주겠다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은 채 그저 오며가며 안부 묻는 습관적 인사였습니다. 제 아이를 살리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밖에 없었기에 저는 아이의 처참한 모습을 SNS에 나누며 '정직한 중보기도'를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 정직한 중보기도는 온유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에 기도 운동으로 퍼져갔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깊은 새벽, 죽음에서 갑자기 깨어났습니다. 저는 생명이 죽음을 이긴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온유가 두 손을 모으더니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부르짖으며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은 뒤 8일 만에 일어나 걸으면서 병원이 발칵 뒤집히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을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죽음에 처해지는 것보다 자녀가 부모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형벌의 고통을 겪다가 문득 생각 난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셨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아파하셨구나. 이렇게 고통을 당하셨구나.”
딸아이가 죽음 안에 있는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깊이 알았습니다. 사역자랍시고 그 사랑과 은혜를 모르면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값싸게 천박하게 알리고 다녔음을 깨닫고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고통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제 스스로가 만든 예수로 제가 신앙인이고 목사라고 외쳐온 거짓의 삶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서니 그제야 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이 절대가치라고 선포했지만 정작 삶 속에서는 예수 믿으면 잘 되고 잘 산다는 세상의 성공과 돈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이며 유일한 만족임을 경험한 성도들이 모인다면 교회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기도해 주신 분들을 통해 온유가 살아난 것처럼, 크리스천들이 이웃을 향한 정직한 기도를 함으로써 나 자신의 믿음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발견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온유의 병상에서 매일 절망과 소망을 오가는 마음 상태를 기록했습니다.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 인간 본심을 이야기했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믿음을 적어갔습니다. 기도 부탁과 응답을 모은 그 글을 《온유야, 아빠야》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세상의 의학 기술이 포기했을 때 믿음의 동역자들이 보내 준 정직한 중보기도의 사랑과 행동하는 배려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가 돌아온 기적을 경험한 뒤 제게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의 은혜는 더 가까운 현실이 되었고 더 절실한 고백이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가 장 목사님을 예배 인도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이 요청하시는 이유라면?
초청 집회가 끝나면 주최 측에서 “수고하셨다, 은혜 많이 받았다”라고 인사해 주십니다. 사역자들은 이런 인사에 오해하면 안 됩니다. 진짜 도전과 은혜를 받았다면 다음의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첫째는 초청 집회를 했던 교회가 다시 초청을 합니다. 둘째는 초청 집회를 했던 교회가 주위 교회에 소개를 합니다. 이것은 맛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당에서 맛있고 특별한 음식을 경험했다면, 맛본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SNS를 통해 직접 맛본 것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다시 갑니다.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 자신이 맛본 그 집에 모시고 갑니다. 저도 제가 먼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사랑이 무엇인지 복음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맛보아야 합니다. 시 34편 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제가 맛보지 않고 간접 경험으로 집회에 임하면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들통이 나서 초청 집회가 끊어질 겁니다.
행복도가 낮은 청년과 다음 세대를 위해
다음 세대와 청년 세대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고 외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이 절대 가치'라고 노래하지만 삶으로는 '하나님을 통해 받는 복 즉, 돈과 성공'에 서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절망하고 낙심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돈과 성공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면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우리에게는 두 주인이 있고 그것은 하나님과 재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와 힘을 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형통과 참 소망을 주는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복은 하나님을 통해 얻는 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시 16편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복을 인정하고 발견했다면 대가를 치르는 삶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가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그 밭을 샀다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기독교인이기에 “주님이 어떻게 해주시겠지?”라고 게으름 피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외치는 절망적 가치관에 “그래, 뭘 해도 안 된다, 될 대로 대라”라며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도록 노력하고 그 복이 인생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에 집중하고 대가를 치르는 삶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본질적인 부분에 몸부림치며 연구하고 공부하고 애쓰는 과정에서 주님은 책 두 권과 음반 여섯 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후 사역과 음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예배 공동체인 데퍼밴드(Desperate band)와 깊고 오랜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합니다. 찬양사역자로서 후배들과 한국 교회에 하고 싶으신 말씀은?
저는 목사님들이 먼저 바뀌어야 교회가 바뀐다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목사님들은 1년에 52번의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사람은 안 변해, 저 권사님 내가 집사 때부터 쭉 봐왔는데 똑같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기독교인들이 문제라고 합니다. 저는 목사님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한 후 강단에서 내려와 말씀대로 살아내는 그 뒷모습을 보고 성도들은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는 부모들과 선생님들의 인격과 삶이 바뀌어야 그들이 바뀝니다. 교회 밖에서의 부모와 선생님들의 일상의 삶을 통해 아이들은 보고 배웁니다. 찬양사역자들도 그러합니다. 정직하게 주의 말씀대로 살아내고 주님을 깊이 경험하는 몸부림 없이 음악으로만 승부를 건다면 감정적 감동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탁월한 음악성이 아니라 찬양 사역자들의 정직한 삶이 묻어 있는 노래입니다. 정직한 삶이 담긴 노래 위에서 성령님이 운행하며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찬양 사역자들 생각의 근원과 삶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은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자신이 부른 노래 가사대로 정직하게 살아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성령님을 통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게도 이것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장종택 목사는 집회를 마친 교회와 반드시 기도제목을 나누며 교제를 이어간다. 핸드폰에는 장 목사에게 기도 부탁하는 분들의 문자 메시지가 가득하다. 외부강사이지만 내부의 교역자처럼 그는 한국 교회의 많은 아프고 힘든 교인들과 지속적인 기도 친구로 사랑한다.
이른바 부름을 많이 받는 스타 사역자이지만 강단과 마이크의 중압감 앞에 겸허하게 포지셔닝하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자신을 놓으려 분투한다. 61일이나 딸 온유가 뇌에 침투한 바이러스와 싸우며 눈을 못 뜨고 사경을 헤맨 순간에도 그는 절실하게 기도 부탁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고, 딸의 회복을 목도했다.
현재 그는 미주 워싱턴 지역 한인 교회에서 간증과 찬양 집회 중이다. 매달 수많은 예배를 인도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말과 귀와 마음이 무엇을 향하는지 민감하게 집중한다. 장 목사가 온유 이야기를 간증하며 부르는 찬양이 <생명과 바꾼 주의 사랑을>이다.
생명과 바꾼 주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나를 위해 흘렸던 주의 눈물 잊지 않게 하소서
주의 긍휼과 주의 선하심 내가 묵상하오니
내 영혼 위해 베푸신 주의 은혜 잊지 않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 눈물 때문에 주 앞에서 예배합니다
_글 황교진 / 가스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