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작가의 입양 이야기 ①
주변에 입양 가족을 볼 기회를 많이 갖게 되면서 핏줄과 근본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틀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장년이 250 가정인데 그 중에 입양 가족이 여섯이다. 모두 공개 입양 가족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입양 아동을 볼 때마다 복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하나님이 복음의 울타리 안으로 거두셔서 양자 삼아주심으로 자유롭게 누리게 하신 그 사랑의 의미를. 입양 가족을 가까이서 보는 건 큰 축복이다. 막장 드라마에서 과도하게 사용한 클리셰로 갖게 된 편견이 사라지고 참 사랑에 대해 배운다. 아이들 모두 공동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배로 낳은 형제들과 같은 위치에서 커가고 있다. 이 입양에 대해 다룬 따뜻하고 감성적이며 인생 공부가 되는 책이 《너라는 우주를 만나》이다.
책 《너라는 우주를 만나》로 만나는 입양, 우리 삶의 이야기
이 책을 쓴 김경아 작가의 가족과 기자는 선교단체 IVF로 맺어진 인연으로 오랜 친분을 나누어 왔다. 저자의 남편 김종호 목사는 현재 한국 IVF의 대표로 섬기고 있다. 올해 결혼 25년 차인 김경아 작가는 개성이 다른 세 딸의 엄마이다. 막내 희은이를 입양한 뒤 입양 가족 모임의 대표이자 입양 교육 강사로 활동한다. 최근에는 한국 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른 성에 대한 강의도 여러 군데에서 요청받고 있다. 세 딸을 키우면서 수필로 등단한 작가이며 번역도 두 권(<교회 다움> <이제 아프지 않아>) 했으니, 슈퍼우먼으로 비친다. 그러나 책에 자세히 소개한 바 19살에 류머티즘 환자가 되어 극심한 통증을 육체의 가시로 달고 산다. 연골이 닳아 인공 고관절 수술까지 받았으니 신체 능력으로는 슈퍼헤로인과는 거리가 멀다. 남편 김종호 간사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다.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이니 재정적으로 넉넉할 리가 없다.
저자는 우리가 편견을 갖는 이유는 그 대상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입양 가족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이미지로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아이를 갖지 못할 때 고심 끝에 입양을 선택하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 갈등을 겪는다. 이 책은 그런 고루한 편견과 맞서면서 보편적인 사랑으로 입양을 선택할 수 있는 외연을 넓혀 준다. 실제로 경험한 일상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해 입양의 현실에 대해 실용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희은이네는 아이 하나 더 키울 충분한 체력과 재력이 있어서 셋째 입양을 한 것이 아니다. 책의 첫 부분에 카이스트 학생 수현이의 죽음이 나온다. 선하고 맑고 공부 잘하고 집밥을 그리워하는 여학생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떠난 그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저자는 불과 며칠 전까지 집에 초대해 밤늦게 수다를 떨며 사랑한 젊은 친구가 죽음을 대면하고 어린 한 생명을 가족으로 들여놓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수현이의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가정이 필요한 아기를 품기로 한 것이다. 일어날 수는 있지만 흔치 않은 극심한 고통의 떠나보냄이 생명을 맞이하게 했다.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아기 희은이는 생후 29일째 그렇게 김경아 엄마를 만난다. 저자는 희은이와 처음 만난 날, 아이는 하나의 우주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정현종 시인 <방문객>의 시구처럼 자기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자기만의 빛깔, 자기만의 아픔과 기쁨을 가지고 막내 딸로 왔다.
큰 인간이 보호가 필요한 작은 인간의 인생에 개입하는 방법
저자는 입양을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며 어른인 큰 인간이 보호가 필요한 작은 인간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훌륭하거나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 자신이 성숙해지는 선물임을 드러내는 것이 책의 목적임을 밝혔다.
부피가 작고 세련된 구성의 책을 읽고 두어 번 가슴 울컥했다. 입양에 대해 북돋우는 에세이로보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감성적이고 따뜻한 에피소드로 다가왔다. 내가 자란 가족의 울타리를 생각하게 했고, 어렸을 때 본 미드 <초원의 집>의 서부 개척 시절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분위기도 떠올랐다. 그 미드의 아버지 조나단은 고단한 일상에서도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정하게 이해하는 대화를 나눈다. 지금 대학 졸업반인 첫째 희연이는 엄마는 따뜻하고 감성적이기보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엄마의 책은 100번 중에 1번 나오는 따뜻한 이미지로 잘 포장돼 있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과 같다고 하여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독자로서 보기에 저자는 아이 셋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깊고 높고 넓다. 피가 섞이지 않고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는 편견에 맞서, 공개 입양의 장점을 전하는 사려 깊은 전문 강사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희은이의 당당함이 이 책이 가진 강력한 무기이다. 희은이는 부모가 사랑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원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가 막내라고, 사랑으로 키우는 부모 중에 가짜 부모는 없다고, 나라를 지키는 중2답게 똑소리 나는 언어로 답한다.
인생의 울타리를 넓히는 행복한 선택
한국의 부모들은 딸은 김연아, 아들은 반기문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런 일류 아이로 만들려고 공감능력, 감수성은 일찌감치 제쳐 놓고 머리 나쁜 아이여도 금수저 집안이면 스카이에 보내기 유리하도록 입시제도가 복잡해졌다. 한창 뛰놀며 꿈을 생각할 나이에 경쟁에서 이기게 하고 우러러보는 고지에 올려놓으려고 하루 열 개가 넘는 학원에 강제로 보내고 뼈 빠지게 돈 벌고 투자한다. 저자는 주변을 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에서 자녀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울타리를 만들어 주려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친구 같은 존재로 곁에 있고 세 딸은 모두 참 밝다. 희은이라는 우주가 들어온 이 가정은 은하수가 촘촘한 하늘처럼 신비롭고 풍부한 애정이 넘쳐 보인다. 결핍이 있지만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걸음을 한 희은이 가족을 투영해 나와 내 가족의 고통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입양이라는 주제로 도약해 가면서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합한 부모여도 보호가 필요한 아기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부모도 같이 자라가는 모델을 만나게 된다. 출산의 고통보다 큰 통증이라고 하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달고 살아도 입양이라는 우주를 만나 인생의 울타리를 넓히는 것이 가능함을 배운다. 우리는 자기 고통을 현미경으로 보느라 많은 고통에 짓눌려 있는 사회에는 안대를 차고 사는 건 아닐까. 고통에 대한 헤아림 없이는 함께 사는 사회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수현이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책의 끝에는 <한나의 선물>(지머라이어 하우스덴 지음, 해냄)을 언급한다. 한나와 한나 엄마를 통해 병이 치료되지 않아도 치유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한나 엄마는 악성종양으로 4년을 못 살고 죽어가는 딸을 돌보면서, 사랑받는 존재로 충만히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자신 또한 소중한 삶으로 완벽하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죽을 것임을 확신한다. 치유의 근원이 사랑이라는 메시지에, 치료는 큰 의미가 없다. 죽을 때까지 상처와 고통을 받고 답 없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사랑을 붙잡지 않으면 인생 자체는 불행으로 가득할 것이다.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이 책을 읽고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입양에 대한 마음의 폭도 넓어졌으니 《너라는 우주를 만나》는 지금의 우리 일상에 큰 일을 해내고 있는 책이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피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맺어진 공동체의 사랑이다. 한때 해외로 입양을 보내던 우리는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품어주고자 하는 의지의 전환이 필요하다. 입양과 사랑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저자와의 세밀한 대화를 2부에서 이어 다룬다.
_글 황교진 / 가스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