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작가의 입양 이야기 ②
셋째 입양을 소재로 가족과 사랑에 대한 따뜻한 울림의 책 《너라는 우주를 만나》를 쓴 김경아 작가에게 입양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이 책은 많은 북리뷰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자들의 자발적인 서평이 번지는 이유는 따뜻한 가족에 대한 갈망,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의 공감,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명이 깊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북콘서트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을 다루었다. (사회: 심에스더)
책을 내신 과정과 출간 후 근황은 어떤가요?
《너라는 우주를 만나》는 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집약해 썼다기보다 흩어져 있던 글을 모아서 정리했어요. 여러 신간들 중에 하나로 묻힐까 봐 출간에 대한 생각이 없던 중에 출판사 설득으로 엮어 냈어요. 쉽게 읽히면서, 입양을 자신의 주제로 이해하게 됐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많이 들었어요. 특히 부모 관계,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쓰다 보니, 독자들 자신의 입장에서 이 책을 해석한 개인적 후기가 많아 놀랐어요. 인터뷰하러 오신 기자들도 모두 책을 읽고 오셔서는 본인의 사연을 털어놓는 거예요. 인터뷰가 거의 상담 시간처럼 되었어요.
희은이가 중학생인 지금 시점에 책을 내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희은이가 어렸을 때 책을 썼다면 아마 편협하게 썼을 거예요. 자녀에 대한 책은 부모와 가족에 대한 이해와 생각이 넓고 깊어졌을 때가 적절하죠.
김경아 작가님은 강사, 작가, 사모, 편집인 등 여러 역할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많은 역할이 주어졌지만 전업주부 역할만 할 때가 있었어요. 선교단체 간사의 아내로 외부 활동 없이 세 아이 키울 때 삶을 잘 누리지 못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보람된 일이지만 내 선택보다 아픈 몸에 부여된 일상에 대한 상실감이 컸죠. 지나고 보니 전업주부로 엄마 역할에 익숙해지고 아이들에게 밥을 해 주는 일이 숙련돼 유익하게 남아요. 지금 제일 만족스러운 역할은 내가 공부한 주제를 잘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 그리고 감동적으로 잘 배웠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에요. 강사로서 필요한 소리를 내어 의미를 전달하는 것, 그 역할을 위해 공부하고 대중들과 만나 공감하는 시간을 즐거워합니다.
책의 서문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얼마나 부적합한 사람인지, 내가 훌륭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보이고 싶다고 하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요. 나 자신이 나에게 거는 기대를 채우는 것도 힘든데 거기에 다른 사람 시선까지 생각하며 살 수는 없어요. 내가 훌륭하다면 대한민국에서 세 아이를 이만큼 키운 것이죠. 입양부모라서 훌륭한 게 절대 아니에요. 그런 평가를 원하지도 않고요. 입양부모도 부모니까 아이를 혼낼 수 있고 아이가 가출할 수도 있는데 그때 '그러려고 입양했냐'는 야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입양부모가 훌륭하다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훌륭하다는 말은 편 가르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훌륭하지 않고 존경받을 만하지 않으니까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죠. 자신이 평범해도 보호가 필요한 아이에게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 책으로 알리고 싶었어요.
류머티즘 관절염은 만성질병으로 견디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연골이 닳아 수술까지 하셨는데요. 그런 뜻하지 않은 고통이 타인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19살에 처음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을 때 무슨 병인지도 몰랐어요. 매일 통증이 잡히지 않는 몸으로 첫째를 출산했어요. 그런데 그 극심하다는 산통에 “겨우 이거야?” 할 만큼 아이 낳는 고통은 쉬웠어요. 매일 다량의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줄지 않았어요. 이제 그 통증과 산 지 만 30년이 되었어요. 치료되지 않아도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죠. 초반에 저는 날카로운 바늘과 같은 사람이었어요. 힘든 것을 주체하지 못했죠. 아프지 않았으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거나 일하다가 급사했을지도 몰라요. 한번 꽂히면 모든 걸 집중했고 멈추거나 쉴 줄을 몰랐죠. 통증을 견디며 살면서 멈춰도 살 수 있고 멈춰도 나쁘지 않다는 걸 일찍 알게 되었어요. 고통은 유익한 면이 있어요. 저는 하나님과 많이 싸웠어요. 아이 키우면서 하나님께 섭섭했고, 아이들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데 하나님은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고 믿음을 강요하시는 듯했어요. 그런데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병, 관계의 병, 고통을 겪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이른 나이에 아픔을 겪으면서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개발되었죠. 저처럼 계속 아픈 사람은 죽음이 낯설지 않아요. 죽음이 멀지 않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단순한 질문이 자주 떠올랐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의 공통점은 이 고통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끝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죠. 제가 겪는 고통으로 인한 사유의 힘이 글을 쓰게 한 동력이 되었죠.
입양에 대한 편견으로 가장 자주 접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대표적으로 ‘피의 논리’입니다. 피는 못 속일 것이다, 키우다 보면 피가 당길 것이다, 도대체 어떤 아이인 줄 알고 데려와 키우느냐, 근본이 없는 아이를 어떻게 입양하냐, 하는 말을 듣게 되죠. 그러면 부부가 낳은 아이는 순수하고 근본 있고 문제없다는 것인데요.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혈연중심사고를 고수하고 있어요.
우리 부부가 낳은 첫째와 둘째를 보면 너무나 개성이 달라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 독특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피는 속인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를 닮았으면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을 거예요. 피의 논리는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해요.
근본이 없는 아이라고 하는 어르신들도 많죠.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 부모님 위로 입양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서 입양과 무관하게 살아왔을까요? 우리는 입양의 기록을 가진 근본 없는 사람들이에요. 우리의 유일한 피는 주님의 보혈밖에 없죠. 주님이 피 흘리심으로 구원한 우리에게 보혈 외에 피 언급은 의미가 없어요.
입양하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살 때 딸만 낳으면 눈치를 보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처럼 혈통을 끊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죠. 이런 편견의 언어들에 대응하는 팁을 주신다면요.
그래서 저는 입양 교육 강사가 되었어요. 아이들부터 이해시키자고 마음먹었죠. 아이들에게 입양 교육을 한 지 6년이 흐르며 변화가 생겼어요. 주변에 입양 가족 본 사람 손들라 하면 매년 숫자가 상승했죠. 그만큼 공개 입양가족들이 계속 늘었어요. 사람들이 편견을 행사하는 건 내가 만나 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주변에 입양가족이 우리 가족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접해 보는 것만으로 편견이 깨져요.
입양가족 대표를 하며 여러 고민을 접하면서 중요한 건 유머라고 생각해요. 뾰족하고 개념없는 말에는 유머로 대처하고, 타인에 대한 오지랖을 정으로 받아들여야 탈진하지 않아요. 편견에 대해 삶으로 보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희로애락의 평범한 가족으로 사는 것을 노출하면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 믿어요.
공개 입양에 대해 쓰시면서 무언가를 숨기는 데 드는 엄청난 에너지를, 잘 알리고 사랑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아이가 비밀 입양으로 자라서 나중에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됐을 때, 입양 부모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속았다는 생각을 해요. 나를 위해 숨겨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죠. 비밀을 안 순간 자기 인생을 재해석하고 배신감을 겪어요. 희은이는 애초에 비밀입양이 불가능했어요. 남편의 직업상,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두 딸에게서 숨길 수 없었죠. 그렇다면 잘 알리는 데 에너지를 쓰면 좋겠고, 고맙게도 먼저 공개입양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어요. 한국 사회는 여전히 비밀입양이 많아요. 우리 모임에도 비밀입양 가족이 오세요. 아이가 입양 사실을 모른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예요. 대화가 평행선으로 이어져요. 그분들의 이유도 사랑이기 때문이죠. 아이를 사랑한다는 데 이견을 좁힐 수 없어요. 그러나 비밀로 자라는 사람의 결과를 유념해야 해요. 저는 터놓고 건강하게 풀어내는 것이 쉬운 길이라고 여겼어요.
이 책으로 입양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읽고는 한편으로 입양에 두려움이 생긴다는 분도 있을 수 있겠죠?
입양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어요. 《너라는 우주를 만나》를 낸 이유가 우리나라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 한 명이라도 더 가정을 찾기를 바라는 목적 때문이었어요. 이 책을 읽고 입양을 못하겠다고 하실 수 있겠지만, 아는 게 힘이죠. 입양의 이모저모를 충분히 알고 입양 부모가 되는 것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 위주로 알고 입양 후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나아요. 입양에 필요한 준비 서류만 해도 24가지에요.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입양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라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죠. 그 과정에서 부모가 성숙해집니다. 부담스러운 분들은 책을 안 읽어도 입양을 안 하실 거예요. 입양은 하나님의 일이에요. 현실을 알고 임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죠.
입양을 결정하고 아이와 소통하며 따뜻한 부모로 사랑하는 일은 신앙인에게만 가능한 건가요?
입양은 큰 인간이 작은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예의이고, 보호가 필요한 작은 인간을 어른인 큰 인간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죠. 어른인 이유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입양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문제라고 생각해요. 불완전한 이 땅의 현실에서 입양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죠.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라도 어른들이 사회적 친구로 키워줄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해요.
저는 입양 부모 초기에 열정적인 입양 전도사였어요. 제 꼬임에 넘어간 부모들이 많죠. 지금은 예전처럼 책무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처럼,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건 나 자신의 성숙을 위한 기회이며 의무와 책임만이 아니라고 말해요. 이 기회는 잡는 사람만 누릴 수 있고 잡으면 큰 유익이 따르죠.
김경아 작가에게 들은 입양의 실제와 그 의미는 진중하면서도 가슴 뛰는 사랑의 당김으로 다가온다. 가족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어린 시절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나누는 독자 평이 많다. 입양이라는 사랑법에 수많은 단층을 보여 준 책이다. 주인공인 희은이 일상에 친근한 유머가 베여 있다. 삶이 즐거우려면 가족의 사랑과 이해가 기본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
《너라는 우주를 만나》는 인간은 비범하기도 평범하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가슴 찡한 신파를 연상했다가 나의 이야기, 모두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저자는 입양을 다룬 책 중에 가족이 되어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한다. 혈연을 넘은 진정한 가족, 나는 누구에게 어떤 가족이 되어 가는 사람일까? 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내 가족의 울타리 안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질문하게 된다.
_글 황교진 / 가스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