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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by 황교진 Jun 10. 2018

전쟁과 가난의 제3세계, 교육으로 미래를 밝히다

해외 교사 양성과 교육 콘텐츠를 지원하는 권기정 대표 _1부

재난지역의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 힘이 돼 주는 방법을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해외 교육 지원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 호이(HoE, Hope is Education)와 국제개발협력 협동조합 빙고(BINGO)의 CEO를 역임하고 있는 권기정 대표가 그렇다.

권기정 대표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긴급구호 현장을 시작으로 르완다,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이티, 남수단 등 자연재해 및 전쟁으로 인한 피해 현장에 달려가 피해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2014년 ‘제9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의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이웃 사랑을 해외 극빈국으로 넓혀 기독 정신을 몸소 보여 준 젊은 실천가이다.

대학 시절부터 구호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청춘과 신혼 시절을 온통 분쟁 지역, 재난 지역, 극빈국가에서 보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DNA를 가진 걸까?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하는 사회 조류를 거슬러 지진과 전쟁, 가난으로 어려운 나라의 교육과 변화를 위해 전심전력하는 사람, 그 일에 행복해하는 권기정 대표를 만나 보았다.

 

권기정(HoE와 BINGO Development Artist)



 

명함에 개발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새겨져 있는데 왜 대표나 팀장이 아닌 아티스트인가요?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아티스트의 기본 덕목은 자신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죠. 또 예술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김수영 작가가 말한 바 있습니다. 과거 제3세계에서 국제 개발에 힘을 쏟은 이들은 남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사람, 나는 고통스러워도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반면에 자기만족만 있고 현지인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선교사, 엔지오 활동가 모두가요. 예술로 승화시켜서 보면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아티스트에 개발(Development)이란 말을 붙여 개발자들 스스로 아티스트의 의미를 도입했으면 해서 제가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부끄러워서 저만 명함에 새겨 쓰고 있습니다.(^^)

 

호이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호이는 "Hope is Education"으로 교육사업 엔지오입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나라의 공교육 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죠. 제3지역 아이들에게 학용품과 학비를 지원하는 기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아이들에게 교복, 학비, 학교 리모델링이나 신축 비용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교육 행정을 담당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현지 교사의 질을 높이고 소외계층의 교육 콘텐츠를 후원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에요. 제3세계는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교육 전문 엔지오에서 교사들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재정과 물품 지원 위주였습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학용품 지원과 학교 짓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콘텐츠 지원입니다. 한국은 교육에 대한 특유의 열정이 있으니 방학을 이용해 교사 교육을 돕는 지원 사업을 추진하여 시작했죠. 호이에는 국내 일선 교사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방학 때 그분들이 해외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평소에도 신규 사업에 대한 회의를 현직 교사들과 함께합니다. 캄보디아, 우간다 등에 대한 교사 지원 프로그램을 저희 직원과 지원 교사들이 함께 기획했습니다. 현지 경험이 있는 교사들이 주축이 되니 실질적인 교육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2017년에는 '한국기독언론대상'의 나눔기부 부분에 “호이(HoE) 10년의 기록”이 최우수상에 선정되기도 했죠.

 

호이와 함께 운영하는 빙고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빙고는 협동조합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후원을 하면 사업 결과를 페이퍼나 영상으로 받아 보는 형식으로 수동적이라는 한계가 있죠. 열심히 참여하고 싶어도 돈을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구조가 모순이라고 생각했어요. 구호 기관은 수평적 문화, 민주적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엔지오를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여 후원자가 조합원이 되는 구조를 창안했습니다. 즉, 후원자가 직접 참여하는 엔지오이죠. 해외 신규 사업을 기획할 때 후원자가 자기 전문성을 표현하며 정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빙고는 시작한 지 3년이 됐고 현재 100여 명의 후원자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국제구호활동에 관심을 가졌나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선교단체 죠이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단기선교 디렉팅을 하기도 했고, 학부 시절 타 대학의 죠이를 개척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선배 중에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지역에서 사역하는 오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3학년 복학한 뒤 단기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 달 간 그 사막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단기 선교 치고는 꽤 힘든 일정이었죠. 그러고 나서 2001년 911이 터지고, 그해 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뉴스를 보고 아프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가서 도움이 되는 일이면 뭐라도 하자고 마음먹었죠. 국내에 있는 엔지오 단체 100여 개에 연락해 보았습니다. 그중에 한국이웃사랑회(현재 굿네이버스)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제게 무얼 잘하냐고 묻기에 난 군대에서 보급병으로 물자를 나눠 주는 역할을 했으니 그 일을 해보겠다고 답하여 아프간 현장에서 난민들에서 구호품 나눠 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몇 달 생활하고, 아프간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씻고 먹고 자는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로켓을 들고 무장한 민병대와 일을 하면서 힘든 광경을 많이 접했습니다. 장기간 굶은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의 먹거리를 위해 폭도로 변할 때 괴로웠습니다. 그 사람들을 접하면 마음에 한계가 오죠. 100 가구에게 나눌 음식을 전달하다가 타 지역 사람들이 요청하면 안 줄 수 없을 때 난감하고 힘들어집니다. 총을 든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죠.

 

아프가니스탄 민병대 속에서





1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견디도록 한 힘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싶었습니다. 흔한 이야기이겠지만 어렸을 때 슈바이처 박사를 존경했고요. 고1 때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읽은 많은 책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지금 인문학 출판사 중에 적절한 곳에서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고요.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활동을 마친 뒤에는요?

아직 대학 졸업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남은 2학기를 마치려고 복학을 했는데 굿네이버스에서 르완다에 파견할 인력이 필요한데 갈 생각이 있냐는 요청을 받았죠. 그래서 또 휴학을 했습니다. 쓸 수 있는 휴학의 한도 초과로 학장님을 만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휴학의 목적을 들으신 학장님은 쉽게 승인해 주셨고, 바로 르완다로 갔습니다. 아프간에서 귀국 후 반년 정도 지난 시기였죠. 그때 르완다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지금 호이가 하고 있는 교육 지원 사업의 필요를 체험했습니다. 이전에도 아프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물자를 공급하며 학교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엔지오는 의료와 교육이 필수 지원 항목입니다. 르완다에서 저는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 예산, 교사 교육 훈련을 담당했습니다.

그때 르완다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미국 선교단체 파송 선교사였습니다. 제 인생의 반려자를 구호 현장에서 얻은 것이죠. 당시 르완다에 한국인이 저를 포함해 네 명이었습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굿네이버스, 미국 선교단체 등 소속은 달랐습니다. 젊은 청춘 남녀 4명이 자주 모여 한인회가 결성되고 밥 먹고 대화 나누다 사랑이 싹텄습니다. 1년 동안 르완다 구호 활동을 하며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장기 파송을 받은 아내에게 한국에 가서 결혼하자고 하여 귀국해서 결혼식을 치렀죠. 1년 후 아내와 함께 에티오피아에서 3년, 이집트에서 1년, 아이티 2년을 보낸 뒤 굿네이버스에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옮겨 내전 중인 남수단에서 3년 반을 보냈습니다.

 

호이(HoE) & 빙고(BINGO) 사무실


 



 

권기정 대표는 남수단의 이태석 신부가 사역한 곳과 강 하나를 두고 있는 위험 지역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재건 사업에 몸담았다. 독립국가가 됐어도 내전으로 몸살을 앓던 남수단은 독립을 이끈 반군 세력과 이에 맞서고 있는 수단 민병들이 소지한 무기가 회수되지 않아 위험이 도사린 지역이었다. 그 지역에 정성과 꿈을 뿌리며 평화가 정착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한 이야기와 재난 지역의 고통받는 현지인들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와 소명에 대해 2부에서 이어 다룬다.


사단법인 호이 후원 문의 02-737-1225
http://www.ihappynanum.com/Nanum/B/ZXV6VR26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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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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