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무침에 얽힌 콩나물 콩에 대한 단상
콩나물 무침은 내 도시락 반찬의 단골 메뉴였다. 콩나물 무침에 고등어 구이라는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배치는 항상 같은 반 친구들이 경악해 마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만큼 이 두 반찬은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반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도시락 반찬하면 콩자반이나 계란 말이, 소세지 계란부침, 멸치나 마늘쫑 등 달콤 짭잘하고 물이 없이 꼬득하여 깔끔한 반찬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항상 국물이 질질 흐르는 콩나물 무침에 식어버린 데다가 비린내 황제인 고등어가 완전 뒤엉켜버린 나의 도시락 반찬통은 그야말로 잡탕 그자체였다. 이 모든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나의 콩나물 사랑은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 그리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콩나물 무침을 생각하면 재래식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콩나물에 물 한 숟가락과 소금을 넣고 미리 익혀 숨을 죽인 후 고소한 참기름, 마늘, 고추가루를 듬뿍 넣고 연탄불에서 볶으시던 엄마의 등이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물에 삶아 건져낸 후 파, 마늘, 소금, 깨소금으로 간하는 흰색나는 콩나물 무침과는 사뭇 다른 요리법인데 엄마표 레시피의 고소함과 아삭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내 입맛이 달라진건지 양념인 참기름이나 고추가루맛이 달라진건지 도저히 어머니의 콩나물 무침과 같은 맛을 지금은 재현해낼 수가 없다. 엄마에 따르면 꽤 오래 볶으면 맛이 좋아진다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안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리알테 콩나물콩을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10년 전 쯤이다. 어떻게하면 직접 콩나물을 길러먹을까를 궁리하던 나는 드디어 오리알테라는 사이트를 발견하고만다. 낮선 땅인 프랑스에서 또 파리가 아닌 지방에서 소위 콩나물이라 하면 한국에서 통상 숙주나물이라 부르는 녹두를 발아시킨 나물을 일컫는 바람에 콩나물을 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를 많이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사실 숙주가 별미가 아닌 것도 아니고 나름 즐기지만 엄마표 콩나물 볶음으로 시작된 나의 유별난 한국식 콩나물 사랑때문에 결국은 나의 콩나물 기르기가 시작되었다. 한국 사람이 주로 재배해 먹는 콩나물콩의 종류는 서목태, 유태콩, 오리알테, 수박테 등이 있는데 이 중 유태콩은 메주콩 (통상 흰콩이라 지칭)처럼 생긴 콩으로 메주콩보다 크기가 작은 소립종이며 우리가 흔히 보는 콩나물에 유태콩이 사용되며 청국장 제조에도 쓰인다고 한다. 다음으로 흔히 검정약콩 또는 쥐눈이콩으로 불리는 서목태는 검은 콩의 소립종으로 콩나물 콩으로 많이 쓰이고 좋은 성분이 많아 약으로 쓰이므로 약콩이라도 불린다. 다음으로 수박 색이 나서 수박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콩은 녹갈색 중간에 검은 색이 간간히 보인다. 마지막으로 내가 애정해 마지 않던 오리알테는 수박태와 유태콩 중간 쯤의 색을 띤다. 토종 콩나물 콩 중 오리알태와 수박태는 나물용으로 최고의 저장성과 품질을 자랑하는데 워낙 수확량이 적고 콩알이 쉽게 튀는 단점 때문에 재배가 까다로워 재배 농가가 많지 않아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다. 특히 오리알태 콩나물콩은 전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재배되는 콩이다. 이름의 유래는 오리알과 비슷하다 해서 오리알태로 불려졌다고 한다. 보통 콩나물보다 작지만 마디가 통통하고 잔뿌리가 적어 씹으면 아삭아삭한 식감이 강하다. 재배시 대개의 콩나물 콩이 상온 기준 7.8월이면 발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오리알태는 여름이 지나도 발아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콩에 비해 생육이 왕성하며 넝쿨이 뻗어 생산성이 30 프로 정도 높지만 키울 때 쓰러지기 때문에 순자르기를 해줘야 한단다. 나는 사이트에서 “한민족의 기상이 서려있는 콩이다”라는 멘트에 혹해 오리알태 콩나물을 3킬로나 주문했다. 그리고 한 500 그램이나 사용했나 나머지는 해가 지나면서 발아가 되지 않아 콩밥을 지어 먹으며 모두 소비한 기억이 난다. 사실 콩나물 재배콩은 빨리 산패가 진행되어 1년 지나면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에 전혀 무지했던 것이다. 아마 콩 속에 많이 함유되어있는 지방성분 때문이리라.
내가 콩나물 재배를 시작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친할머니이다. 매년 여름방학 때마다 갔던 춘천 오월리 할머니댁 집 앞으로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이 시냇물이 앞의 강과 맞닿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시냇물과 강 사이에 넓은 도로가 생겨버렸지만).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집 앞 시냇물 중간 쯤 넓적한 바위로 다리 삼아 만들어 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 바위 밑에서 다 자란 콩나물을 마술처럼 꺼내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물이 항상 흐르는 천연의 작은 동굴에 콩들을 때때로 무심히 던져놓으셨다가 요리에 사용하시곤 했다. 지금 떠올려도 너무도 신기하고도 즐거운 기억이다.
나는 콩나물 재배를 위해 콩나물재배기도 구입해서 사용중이다. 내가 선택한 모델은 청시루라는 이름으로 콩나물 재배를 위한 어두운 색의 뚜껑과 새싹 재배를 위한 투명한 뚜껑이 있는 제품이다. 일단 불린 콩을 플라스틱망에 잘 배치하고 물을 채우면 마치 스프링쿨러처럼 한시간에 한번씩 약 1 분간 물이 뿜어지며 물을 주는 시스템이다. 물은 갈아주지 않고 그렇게 약 일주일 가량 놓아두면 일주일 후 애초의 콩 무게 대비 10배가 넘는 거의 1킬로 가까운 콩나물을 수확한다. 너무도 간편하고 좋은 기계지만 작은 공간에서는 물 뿜어지는 소리가 살짝 거슬린다. 몇 차례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내내 잘 끌고 다니던 이 기계를 다시 사용하려 꺼내보니 어두운 색의 뚜껑이 사라져버려서 투명색 위에 천을 덮고 재배중이다. 콩나물콩이 없으면 녹두를 사다가 길러먹는데 숙주나물도 수확하여 프라이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숙주를 넣고 살짝 숨만 죽인 후 간장으로 간을 해먹으면 별미이다. 살짝 참기름을 뿌려주면 화룡정점이라고나 할까.
이렇듯 나의 콩나물 사랑과 콩나물기르기는 현재까지 간단 없이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