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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느 Feb 10. 2022

췌장암 환자에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췌장암 환자에 좋은 음식이란 결론적으로 말하면 맛있는 음식이다. 환자가 먹는다고 해서 간을 지나치게 싱겁게 한다든지 몸에 좋다는 각종 몸보신 약재들을 대령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환자의 식욕을 떨어뜨리거나 알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갈때 마다 우리는 이것 저것 생각한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묻고는 했는데 뭘 먹어야 병이 좋아질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사는 우리가 환자를 지나치게 생각한 나머지 간을 하지 않은 밍숭한 것만 먹일 작정일까봐  "억지로 싱겁게 드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맛이 없어서 더 안 먹게 되거든요. " 라며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머릿속으로 새겼다.

"평소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해줄 것."


췌장에서 시작된 암은 폐로 전이되어 폐에 물이 차는 증상이 나타났다.  가슴 양 옆에 자리한 날갯죽지같은 모양의 폐에  기 대신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곤란한 응급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느다란 호스를 폐에 연결하여 물을 수시로 밖으로 빼내야 했다.

폐에 직접 관을 꽂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관을 통해 조금씩 노랗기도 하고 어떨땐 투명한 빛을 띤 물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고도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아버님 물이 많이 나왔어요?"

이렇게 물으면 자는 쌈지돈을 꺼내듯이 옆구리 쪽 네모난 비닐봉투를 들어보이며 "이만큼 나왔네"라고  했다. 마치 어제보다양이 작은 것이 아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 호스는 잠을 자다 뒤척이는 통에 빠지는 수가 생겼다.  다시 삽입하는 시술해서는 입원해야 된다고 했다. 번 입원하면 일주일씩 병원에 있어야 하고 그때 항암 주사를 맞 수가 생겼다.

종합병원은 대개 시설은  크고 화려하지만, 병원은 내 경험상 살아 있는 입맛을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이 다.

 이미 그 어떤 진수성찬도 미음죽이나 마찬가지로 느끼는 환자의 식욕은 바닥 끝까지 어져 좀처럼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밥먹는 문제로 병원에서 식판을 사이에 두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신경전을 벌였다.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의 목숨을 건 다툼은 결국 서러운 눈물짜증섞인 한숨으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전복죽과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평소에 나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동네 반찬가게를 친근하게 느끼고  퇴근 후 늘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배달 음식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전복죽과 닭죽이 쉬운 난이도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주말  나는 루 동안 이 두가지를 해냈다.

전통시장에서 싱싱한 빛깔을 뽐내며 물속에서 놀고 있는 전복 대여섯 마리를 데려오고,  잘 손질되어 윤기가 흐르는 닭도 한마리 가져왔다. 그리고 블로거를 찾아 가장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펼쳐 놓고 폰 화면 속 지시대로 하나 하나 따라 해갔다.

 전복 손질은 태어나서 처음 해봤는데 마도 아직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것 같다. 전복죽을 여러번 끓여본 지금은 숟가락을 넣기만 하면 전복이 기하게 촥 분리되지만 처음 칼로 낑낑대다 란 내장을 터트다.  내장 얼굴이며 씽크대 이곳 저곳으로 튀어  엉망이 되고 갑자기 옷에 묻은 내장으로 인해 바다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미끌거리는 전복을 잘게 써는 일도 보통 힘든게 아니다. 근래 계속 무리한 탓에 어깨죽지가 떨어져 나갈것 같았다.


 죽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불린 쌀과 찹쌀을 넣고 계속 저어가며 흰 연기 속에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고 팔이 아프다 느낄 때쯤 쌀이 푹 퍼지면서 죽으로 변신한다. 본래의 날씬한 모습에서 점점 불어나 어느새 냄비 가득 고소한 냄새를 풍기  이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 숟가락 떠먹어보고 싶게 만든다.


'음. 처음 끓인거 치고  맛있는데. 나는 요리를 안해서 그렇지 하면 잘한단 말야.  역시 타고 났나 봐'

 혼자 자화자찬을 하며 열심히 커다란 통에 한가득 죽을 담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두 가지 죽을 만들었다.


다음 날 시어머니와전화 통화에서 니가 만들어 준 죽 아버지가 너무 잘 드신다고 맙다고, 말 고마움이 듬뿍 묻어나는 뭉클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요리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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