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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Aslan Jul 26. 2020

전공의 일기.

4-7화

수술실 벽은 온통 초록색이다. 수술포도 초록색이다. 눈에 피로를 덜어주고, 피와 섞여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갈색으로 변한다. 내가 다음날 마주한 투석환자의 모습은 수술대에 누워, 마취 기계에 숨을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와 나의 감정의 골은 수술대 앞에서는 의미없었다. 나는 의사로서 수술대에 누운 환자 곁에 섰다. 


 발가벗은 몸에 붉은 소독약으로 복부와 회음부를 소독했다. 소독약이 점차 말라갔다. 하얀 방포로 소독 부위에 남아있는 약물을 제거했다. 핑크색 소독약을 이용하여 소독 부위를 다시 한번 닦아내고는 수술포로 환자를 덮었다. 수술에 필요한 기구들을 쓰기 좋게 배열했다. 준비가 끝났다.  


"타임아웃 진행하겠습니다."

"환자분 등록번호 확인했습니다. 환자분 성함 확인했습니다. 환자분 생년월일 확인했습니다."

"네, 환자분 오늘 신장암에 대해 우측 근치적 신장절제술 및 하대정맥 혈전 제거술 시행예정입니다. 영상자료와 의무기록 확인했습니다. 수술은 5시간가량 예상되며, 다른 위험요인 확인하겠습니다."

"고혈압, 당뇨, 만성 신질환, 대동맥 판막 역류있습니다. 마취과적 위험요인으로 환자분 중환자실로의 퇴실이 필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예방적 항생제 투였되었나요?"

"네 예방적 항생제가 10분 전 정맥주사로 투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때마침 교수님이 입실하셨다. 언제나 그랬듯, 수술실에서 교수님은 차갑다. 20년 가까이 수술을 집도하신 분이다. 우측 신장을 절제하는 것 자체는 교수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차가워 보이는 교수님을 보면서, 교수님 역시 긴장하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써지컬 마커(절개부위를 표시하는 펜) 주세요"

"롱 미드라인(치골부터 명치에 이르기까지 복부 정중앙을 길게 절개하는 방법)으로 그려"

"네, 거즈 주세요" 

교수님이 필드에 들어오셨다.

"블레이드 주세요"

"거즈" 


환자의 복부에 번뜩이는 칼날이 다가갔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는 날카롭게 벌어져갔고, 피부 아래 노오란 지방조직이 드러났다.  

"보비, 석션"

[쓰으윽 쓱쓱]


석션(수술장에서 혈액이나, 액체를 음압을 이용해 빨아들이는 도구)소리가 고요한 수술방을 가득 메웠다. 

절개선은 이미 지방층을 지나, 근막층을 절개했고, 하얀색 복막이 드러났다.  

"스무스(포셉, 이가 없어 조직에 손상을 줄일 수 있다) 두 개 주세요"

"메젬(조직을 잘라내는 가위)" 

복막이 열렸고, 꿈틀대는 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패드 주세요" 


신장은 후복막 장기이다. 복부는 복막강과 외복막강, 후복막강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신장은 장이 들어있는 복막강이 아닌 복막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신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복막을 열고, 후복막강으로 접근해야 했다. 


"장 내리고, 신장 뒤부터 정리하자."

"네, 교수님. 디버(수술부위를 벌려 장기로의 접근을 도와주는 장치) 주세요."

"하나 더" 

장이 흘러내려오는 것을 방지하고, 신장을 박리하기 위해 복벽의 우측 외벽부터 절개를 시작했다.  

"보비(닥터 보비가 발명한 전기 소작 기구, 전기를 이용하여 절개, 지혈 등을 할 수 있는 도구로, 현대 외과 수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주세요."

"여깄습니다."

"롱 팁(long tip)을 줘야지! 생각이 있는 거야!?" 


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스크럽 널스(수술장 간호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롱 팁 나왔습니다." 

수술장에서는 대부분의 의사가 날카로워진다. 순간의 실수가 생명을 잃게 만들기도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장애를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같은 수술을 반복한 베테랑 의사라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고요한 수술방에 교수님의 호통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주변은 얼어붙는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20 [의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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