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책상을 뒤흔드는 진동과 불쾌한 소음으로 눈을 떴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기 위해 당직실로 향했던 나는 는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네 비뇨의학과 전공의입니다."
"선생님 여기 CSICU(순환기 외과계 중환자실)인데요, 혈액검사 결과 노티 드리려 전화드렸어요."
"네 우선 불러주시겠어요?"
엎드려서 잠이 든 여파로, 안경알은 기름기가 번져있었고, 시야가 흐렸다. 애를 써서 작은 글씨를 읽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Hb(헤모글로빈) 7.3, Lactic 2.5, PO2 100, PCO2 30, Na+ 130, K" 5.6이에요."
"C-line(중심정맥관, 대량의 수액공급이나, 응급 약물 투여 등을 위한 도관으로 쇄골 하부나, 경정맥을 통해 우심방 인근으로 삽입된다)은 function 괜찮죠?"
"네, 지금까지는 문제없었어요."
환자는 수술 중 출혈이 많지는 않았던 상황이었다. 혈색소 수치가 감소되어 있다는 것은 출혈이 있었거나, 현재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배액관으로 배액 되는 체액의 색과 양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JP 색은 어때요? 양은 얼마나 나왔죠?"
"수술장에서 나올 때, 25cc였고, 지금은 계속 음압 상태에서 50cc 정도 drain 되었어요. 색은 Sanguineous(bloody)합니다."
"바이탈(vital sign, 활력징후, 체온, 맥박, 호흡, 혈압)은 괜찮나요?"
"BP(혈압)는 수축기 110 정도 유지되고 있고요, Pulse(맥박)는 90에서 100 정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단 pack RBC(적혈구) 2 pack transfusion(수혈)시행하구요, 내일 오전에 4a lab 시행하겠습니다. ABGA(동맥혈 가스분석) 같이 할게요. Cardiac marker(심장효소 검사)도 해주세요. 새벽이라도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투석은 예정대로 진행하면 되는 거죠?"
"네 투석은 예정대로 진행할게요."
다행이었다. 혈색소가 떨어지는 것은 불안했지만, 수술 부위의 지연출혈(delayed bleeding)을 확인하기 위한 JP catheter의 양은 늘지 않고 있었다. 활력징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며, 입고 있던 가운을 벗고 당직실 침대에 누웠다.
다시 잠에서 깨어난 건 콜폰(병원 내에서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방금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요란한 기계장치 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중환자실에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기계장치들이 많이 있는데, 제 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알람 소리가 큰 경향이 있다.
"선생님! 환자 sBP(수축기) 70이에요!, JP를 한 시간 만에 세 번을 비웠는데 아직도 계속 sangineous 하게 drain 되고 있어요!"
"네!? 수혈은 하고 있는 거죠? 얼마나 들어갔어요?, pulse는 어때요? 의식은요?"
상황의 위급함을 감지하고는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좀 전까지의 피곤은 잊혔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운을 챙겨 입었다. 위험한 상황이다. 복강 내 배액량은 측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고,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만약 복강내 혈관 손상에 의한 출혈이 있다면 환자는 오늘을 넘기지 못한다. 출혈 부위를 확인해야 하고, 혈압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내가 잠든 사이 투여된 약물에 의한 일시적인 쇼크이길 차라리 바랐다.
'제발... 안돼...'
나는 당직실 문을 박차고 계단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