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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vory Apr 08. 2023

만우절, 거짓말 하셨나요?


2023년 만우절이 지났다.

누구에게도 거짓말하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의도적인 속임을 하지 않은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학창시절 나에게 4월 1일은 가장 설레는 날 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설레지만 만우절은 또 특별했다. 상대가 만우절임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속이기 쉽기 때문에 4월 1일이 되는 밤 12시가 거짓말하기에 가장 적기였다. 서로 만우절임을 모르는 척 시치미 딱 떼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속이려는 사람만 있고 속는 사람은 없는 웃기는 거짓말 파티였다. 만우절을 알리는 오밤중의 문자메시지는 항상 유쾌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해마다 반복되는 뻔한 장난들을 알고도 속아주셨을 뿐이지만,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들의 장난은 너무나 참신하고 기발했다. 오늘만큼은 선생님같은 윗사람에게 대놓고 장난을 해도 괜찮다니, 얼마나 즐거운가? 거짓말 탐지에 예민해진 친구를 그럴싸하게 속였을 때는 또 얼마나 재밌는지! 내가 깜빡 속아서 친구의 “만우절이지롱~”하는 의기양양한 말을 들었을 때의 패배감마저 유쾌했다. 난 영원히 만우절을 즐길거야! 할머니가 되면 죽은척이라도 해야지, 히히. 






..라고 즐거워했던 나는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빨간날 아니면 의미를 두지 않는 재미없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나보다. 마지막으로 만우절 거짓말을 했던 게 언제였던가? 만우절인지도 모르고 그날이 그날인 것 처럼 지나간다. 그나마 이맘때 벚꽃축제라도 챙기면 다행이다.


평소 나이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지만, 만우절을 더이상 기다리지 않는 나를 느끼면 ‘나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가장 설레는 날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나이먹었음을 체감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내년 만우절에는 누구에게라도 장난을 쳐볼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내년에도 그냥 지나갈 것 같은 씁쓸한 예감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만우절 기념으로 바꾸고 싶었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있다. 만우절인지 모른 채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혹시 어떤 경위로 내담자가 보게 될까봐 무서워서(?) 차마 하진 못했던 사진이다. 대나무숲에 외치듯 슥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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