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vory Nov 11. 2024

상처받은 냉소주의자에게 건네는 위로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사람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에요. 친구나 동료들에게도 마음을 닫고 방어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을 열었다간 상처 받을 거니까 조심을 하는 거죠. 빈틈을 안 보이면 적어도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주변에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다. 혹은 나 자신이 냉소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해맑았던 사람도 속된 말로 ‘사회 물을 먹으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과 사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배신과 실망을 겪으며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자신만의 신념을 구축한 것이리라.



어쩌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나를 길러준 양육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매우 절친했던 친구일 수도 있다. 믿었던 사람일수록 상처는 더욱 깊게 새겨지고, 다시는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으려 애쓴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자아를 보호하고 방어하려다 보면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예민해 진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별 뜻 없이 상대가 건넨 말에 숨은 의도가 있는지 살피고 그 안에서 가시를 찾아낸다.



그리고 인간은 ‘역시’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신념을 공고화 한다. 자아를 보호하려 애쓰느라 다른 사람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고립되고 외로워 진다. 








냉소적인 사람은 차가운 사람보다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게 더욱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냉소적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사람을 믿었던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껏 표현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떠올려 보면, 그때 그 순간은 진심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누구나 거절과 배신의 아픔은 피할 수 없다. 당연히 괴롭고 슬프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금의 아픔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인간은, 당신은 그러한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힘을 가졌다.



어쩌면 사람들이 차갑고 삐딱한 게 아니라, 내가 삐딱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세상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볼 때에도 그 안경을 여전히 쓰고 있다. 나자신에게도 차갑고 엄격하다. 그러니 더욱 마음 쉴 곳이 없다.



삶의 아이러니는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만큼 누군가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더 이상의 상처는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 또한 닫아 버리는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새로운 상처가 아닌 치유와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 주는 작은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전문은 출처를 참고하세요!

https://www.dh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51


매거진의 이전글 실망하더라도 기대하는 게 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