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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vory Sep 06. 2022

'도를 아십니까?'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3가지 심리

   시내를 걷다보면 일명 '도를 아십니까'를 만날 수 있다. '기운이 좋으시네요', '조상님이 운을 막고 있네요', '학생이세요? 설문조사 하고 가세요' 등 다양한 변조도 많은 것 같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들 중엔 수십년 동안 직장생활을 잘 해온 사람도 있고, 높은 학력에 모자랄 것 없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휘말리는 걸까?




   만성적으로 스트레스가 지속되고 심리적 괴로움이 누적된다면 누구나 심신이 취약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힘든 일이 생기는 원인을 찾고 싶어 하고, 힘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의지할 대상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힘든 현실로부터 주의를 돌리고 싶어 한다. 사이비 종교는 이 세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해 준다. 그렇기에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접하게 되는 사이비 종교는 사람을 완전히 홀릴 수 있다. 








   사이비 종교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이 지금 힘든 원인을 명확히 짚어준다. 신을 향한 정성(혹은 돈)이 부족해서, 조상 중 누가 앞길을 막고 있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그리고 해결책도 제시해 준다. 얼마의 헌금을 하면, 퇴직금을 우리 종교 재단 앞으로 돌려놓으면, 일주일에 며칠은 우리 종교단체에 와서 일을 하면, 몇 명을 우리 종교로 전도하면... 당신의 힘든 문제는 확실히 가실 것이며 복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말이다.



   사이비 종교는 당신이 확실히 의지할 수 있게 해준다. 아니, 오히려 당신이 의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사이비 종교는 헌신의 대가로 신이든 교주든, 같은 종교 내에 사람들이든 간에 당신에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제공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돈과 시간과 정성을 사이비 종교에 부으면 부을수록 내 마음은 종교에 더 의지하고 몰입하게 된다.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사이비 종교에 쏟아 부은 노력과 비용이 클수록, 더욱 의지하고 믿고 싶어 진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개인에게 매우 악영향을 끼치지만, 당장의 힘든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빠지기 쉬운 덫이 되고 만다.



   또한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길 바란다. 그래야 옳고 그름의 변별 없이 종교에 더욱 몰두하고, 집단 내의 불합리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고 삶이 고단했던 사람들은 현실을 잊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들이 맞물려서 사이비 종교에서 헤어나오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을 심리치료 장면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우주', '기', '에너지'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주제들에 몰두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일상생활을 점점 놓고 있었다. 이에 가까운 지인들이 '이상해진 것 같다'며 심리치료를 받아보라고 하도 권해서 주변인들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와봤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심리상담을 원하지 않는 사람과 상담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은 우울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그분의 표정은 밝았고, 머릿결도 광이 나는듯 고왔으며 옷차림도 단정했다. 한눈에 보기에는 본인의 말대로 큰 문제가 없어 보였고, 주관적인 불편감이 없으면서도 주변인들이 걱정해서 와봤다는 말에는 어쩐지 여유까지 느껴졌다. 이상한 종교에 빠졌어도 지레 걱정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대인관계도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상담실에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면서 최근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종교 단체에 대해 설명했다. 과연,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그 종교에 꽤나 심취해 있는듯 보였고 친구들의 걱정을 살만했다.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개념과 종교적 교리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속으로 퍽 난처했다. 나는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같은 정신병리가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고, 내가 아는건 정신질환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을 내가 무엇이관대 구출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거니와 하고 싶은 영역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그렇듯이 그저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50분의 상담이 끝날 무렵, 한시간 가까이 상담했음에도 나는 그녀의 심리상태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단지 그 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만 몇 가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 쪽은 내가 하는 영역의 일이 아니니 다음부턴 안오셔도 된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했다. 어쨌든 그녀는 중요한 일상 생활의 문제가 있고, 그녀가 종교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다음 주에 뵙기로 날짜를 잡고, 틈틈이 그 종교에 대해 공부했다. 인터넷을 뒤졌고, 그녀가 인상깊게 본 책도 구매해서 읽었으며, 관련 기사들이 있는지 살폈다. 책은 유치한 사기꾼이 쓴것 같아서 읽으면서 분노가 치밀었다(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섣불리 산걸 후회했다. 내 책꽂이에 도저히 꽂아두고 싶지 않았다). 관련 기사에서는 그 종교의 교주격인 인물이 사기를 비롯한 여러 법적 문제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 상담일이 되었다. 애초에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기에 혹시나 안오시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날도 단정한 옷차림에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들어오셨다. 아니나 다를까, '가지 말까 고민하다 왔다'며 나에게 솔직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가 빠져 있는 그 종교가 문제가 많은 종교임을 밝힐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 카드를 꺼낼 생각은 없었다. 상담실 밖에서 그녀가 만나는 대부분의 지인들에게 분명 들었을 것이다. 니가 얘기하는 그 종교 문제가 많다고. 나까지 그 당연한 얘기를 한다면 그녀는 더이상 상담실에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종교 얘기 외에는 하고 싶은 말이 없는듯 보였고, 나는 그 종교에 관심이 있는 척 열심히 들었다. 아니, 실제 관심이 있기도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녀에게 심리검사를 해오도록 했다. 첫날 심리검사를 권하지 않은 이유는, 압도적인 문항수의 검사지를 보고 귀찮은 숙제라고 생각해서 상담에서 drop 될까봐 였다. 




   어느덧 세번째 상담일이 되었을 때, 그녀는 '종교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어서 왔다'고 인사했다. 그동안 심리검사 결과도 나왔다. 외적으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임상적으로 두드러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만성적인 우울증상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기질적인 성향도 현 상황에서 부적응적으로 발휘되는 면이 많았다. 우리는 드디어 그녀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견고하게 쌓아뒀던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듯이 표정을 허물었고, 오랜 기간 묻어둔 이야기를 두서 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남편은 가정을 돌보는데 많이 소홀했다. 학창시절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도 많이 있었다. 첫 방문에서 그녀는 우울하지도, 힘들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자신도 몰랐던 힘든 마음과 상처가 많았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두루뭉술하고 흐릿하게 쌓아왔던 감정을 마주하게 되자 묻어둔 고통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더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용기를 내 고통스러운 감정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비로소 직면하면서 종교 단체를 향한 관심과 몰입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관심과 몰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해당 종교가 위험한 단체로 보인다며 꺼내는 증거들 앞에서, 그녀는 어쩜 그렇게 잘 아시냐며 놀랐다. 사실 그런 것들은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고 그녀의 지인들도 수십 번 이야기해왔을 테지만, 마음이 닫혀있을 땐 정보가 입력되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거액의 대출을 내서 지방에 있는 종교의 합숙단체에 들어갈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는데, 천만 다행하게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종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상담 끝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주변 사람들 중 사이비 종교에 쉽게 빠지거나, 아니면 그런 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나 자신이 그런 취약한 상황은 아닌지 돌이켜 보자.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현실로 인해 종교 단체에 빠져드는 것일 수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의 판단을 비난하기보다는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진 않은지, 지나온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지 그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상태일 수 있으니 심리 전문가를 만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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