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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07. 2020

"불가사리는 물에 사는 별이야"

두려움보다 기대감으로 채워지는 육아

사랑이와 바다, 나. 셋이서 보낸 오후. 스케치북에 열심히 중장비를 그려주고 저녁을 차리고 차리면서 대충 먹고 사랑이 먹은 거 치우고 바다 기저귀를 갈고 잠시 고개 돌린 사이 사랑이가 식탁에 주르륵 엎지른 물을 닦고 자동차 놀이를 돕고 바다 목욕물 받아두고 잠시 눈 돌린 사이 사랑이가 목욕통에 들어가 있어서 얼떨결에 둘 목욕 시키고 중간중간 수유하고 그 와중에도 사랑이가 필요한 거 있다고 하면 수유하면서 가져다주고 또 틈틈히 기저귀를 갈고 아기띠하고 사과 깎고 사과 먹으면서 책을 읽어주고...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아이 둘 챙기다보니 어느 새 밤이 되어 여보가 퇴근했다.


주말이지만 주말이 아닌 듯 보낸 날. 아직은 엄마가 도와주시거나 여보가 함께 있지만, 그럼에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이렇게 혼자서 아이 둘을 본다. 지금이야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만 앞으로는 온전히 내 몫인 것. 그래서 더 대수롭지 않게 해내려 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많다. 근육을 과도하게 쓰다보니 몸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고되고 사랑이가 끝도 없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부르니 머리가 쉴 틈이 없다. 오 분 아니 삼 분이라도 자유의 몸으로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 현실은 수유하느라 둘째를 끼고 있거나 재운다고 안고 있고 그러면서 첫째랑 놀아줘야 하니 육아노동의 강도가 평소의 몇 배로 높아진다.


그런데 이게 이상하게 생각보단 할 만 하다(너무 가혹한 풍경을 상상했던걸까). 둘째는 아직 어리니 품에 끼고 있음 되고 첫째는 말을 하면 알아들으니(그렇다고 엄마말대로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다. 그래도 쉽다고 할 순 없어서 자려고 누우면 운동 빡세게 한 다음 날처럼 근육이 욱신거리고 정신이 혼미하다. 새벽수유 때문에 애를 재웠어도 길어봐야 두 시간 후 다시 깨야하는 게 일상.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자는 것이 현명한 일일진데 이 시간의 고요함은 너무나 달콤하다.



아까 설거지 하는 중에 사랑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려준 포크레인 그림이 없어졌다며 "없어어 엄마 없어어 포코 포-코" 하고 서럽게 울었다. "사랑아 엄마도 빨리 가고 싶은데 설거지가 안 끝나 어떡하지 조금만 기다려줘. 분명히 있을텐데 어디갔을까? 울지말고 한번 더 잘 찾아보자". 그래도 운다. "사랑아 엄마가 얼른 끝내고 갈게 다시 한번 찾아보자". 계속 운다. 계속 울다가 설거지 끝내고 갔는데 나도 못 찾았다. 당황했다. "이거 세 개면 다 있는거 아니야? 사랑아 다 있는 거 같은데". 아니라고 또 운다.


어찌 어찌 상황을 정리하고 나중에 무슨 얘길 하다가 "사랑아 아까 엄마 설거지 하느라 바빠서 사랑이한테 바로 못 갔는데 기다려줘서 고마워" 그랬더니 사랑이가 "또 기다려주꺼야" 한다. "정말? 사랑이 힘들었을텐데도 이해해줘서 고마워" 하니 "안 울거야" 한다. 우느라 내 말은 들리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울지 말고 찾아보자고 찾을 수 있다고 했던 걸 기억한다. 엄마가 고맙다고 하면 그 말이 좋아서인지 동생돌보기도 도와주고 집안일하는 시간도 기다려준다. 쪼끄만애가 왜 이렇게 착하지 싶어 고맙기도 하고 이러다 빨리 철 들까 걱정도 된다. 더 천천히 커도 되는데.



"불가사리는 물에 사는 별이야". 낮에 고래밥 먹던 사랑이가 말했다. 이렇게 예쁜 말을 하는 고운 아이가 있으니 세상 정신없는 나홀로 육아타임이 그래도 할 만한 걸테다. 아이 둘 키우기가 두려움보다 기대감으로 채워지는 건 모두 이 아이 덕분. 사랑이가 이때까지 탈 없이 곧게 자라줬으니 바다도 사랑이 하던대로만 하면 되겠지, 나 잘 할 수 있을거야,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엄마가 형아만큼 못 챙겨줘도 쑥쑥 자라주는 바다가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랑이만큼은 못하다. 언제나 제일 고마운 건 내 첫 사랑 사랑이. 예전엔 할머니가 어떤 상황이든 큰 아들인 아빠 편만 드시는 게 세상 이해가 안됐는데, 이젠 조금,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할머니한테도 아빠는 첫사랑이었을테니까. 아마도 그래서.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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