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큰 행운, Idania
Buenas tardes mi niña Dios te bendiga. Siempre salud y suerte te desea tu madre cubana un abrazo besos mi angel.
좋은 오후구나 내 딸아 하나님께서 항상 축복하시길, 너의 쿠바 엄마가 건강과 행운을 빌어. 포옹과 키스를 보낸다. 내 천사.
너무 직역인가 싶지만, 트리니다드의 그녀가 최근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다.
명성이 자자한 중남미 사람들의 애정 가득한 표현. 조금 과장되었다 해도, 괜히 쑥스러워 웃음이 픽 나와도, 그 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 마음이 따듯해질 때가 많다. 이 쿠바 아주머니의 문자도 그러하다. 여행 간 단 3일 동안 함께 있었던 것뿐인데 정이 많이 들어 그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처음엔 내가 이 아주머니 댁에 묵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아이라인 아래위로 꽉꽉 채워 강해 보이는 인상에 약간 히피스러운 밤색 꼬불꼬불 머리, 그 밑에 휘황찬란한 귀걸이를 하신 Idania 아주머니. 뭔가 살짝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인턴 생활이 끝난 바로 다음 주, 원래는 시엔푸에고스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바나 정류장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 3명과 함께 합승택시를 타고 트리니다드에 가게 되었다. 도착한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바로 이 아주머니였는데, 우리가 내린 정류장 바로 앞에 서서 숙소 사진이 그려진 팻말을 들고 계셨다.
아르헨티나 친구들은 나에게 자기들이랑 방을 구하면 훨씬 저렴하게 지낼 수 있다며 함께 민박 집을 찾자고 했다. 사실 그 앞에서 호객 행위하는 사람들의 숙소 조건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아바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친구들은 유난히 이 사람들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끼리 방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성수기에 네 명이나 되는 우리가 함께 묵을 수 있는 방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그러던 중 꽤 괜찮은 3인용 숙소를 발견하여 내가 그냥 나는 혼자 구해볼 테니 그들은 그곳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친구들은 미안해했지만 이미 방 구하러 돌아다닌 지 한 시간 반이나 된 데다가 날도 어두워지려고 해서 그들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혼자 방 구할 거 생각하고 왔기도 하고.
그렇게 작별을 하고 터덜터덜 경사길을 걸어 내려오던 중,
-아이, 치나야(China: 중국 여자, 중남미에서는 통상적으로 동양인 여자를 지칭) 그냥 우리 집으로 가자.
어디선가 다시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신 것이었다.
나도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아이구 아주머니, 저도 가고 싶은데 혼자서 25쿡(쿡=달러) 너무 비싸요. 보시다시피 제가 아직 학생 이어서요, 경비를 최대한 아끼려고요.
-얼마짜리 방 구하고 있는데?
-음... 15쿡이요, 아침 포함.
-15쿡?? 아침 포함? 15쿡 숙박비에 아침 5쿡 어떠니?
-아줌마 죄송해요, 조금만 더 알아볼게요...
그렇게 뒤돌아가는데,
-15쿡에 아침 3쿡 어때! 아줌마가 진짜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여기 주위에 아침 포함해서 15쿡인 집도 없을뿐더러 숙박만 해도 다들 15쿡이 넘는단다. 우리 집 가자~
-네, 아주머니 사실 저도 이제 짐 놓고 쉬고 싶어요. 아줌마 집 갈래요! (나도 많이 지쳤었다.)
그리고 저 치나 아니고 꼬레아나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아 꼬레아나였구나! 그래 가자!
그렇게 아주머니 까사(민박)로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유쾌하고 장난기 많으신 우리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얘기하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시고는 집에 도착한 뒤 웰컴 드링크 한 잔과 함께 온 식구를 소개해주셨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 보이는 아담한 테라스 겸 식당, 문을 열면 있는 작은 공간과 화장실, 가장 안 쪽에 자리한 침실. 그 침실을 보는 순간 너무나 화려한 컬러에 잠시 당황스럽다가 정말 이상하게도 점점 좋아진다. 테라스도 좋고 화장실도 좋고 옥상이 있는 것도 좋다. 이 모든 것이 참 재미있게 느껴진다. 테라스 옆쪽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에서 트리니다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도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손톱만큼 보였다. 그 작은 바다의 모습에도 왠지 마음이 울렁였다. 밤에는 별도 잘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 그녀 가족과의 인연. 아주머니와 아주머니 며느리와 동네 산책도 함께 하고, 아들 별장도 같이 가고, 이후 나의 이동 편과 숙소들까지 해결해주셨다. 아주머니를 만나고 아주머니 집에 묵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선택이었는지,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이었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정말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