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홀스트의 전원 교향곡, "코츠월즈"

<행성 너머의 홀스트> 3화

by 아이비





작곡가에게 돈은 월급처럼 오지 않는다. 아아! 콘서트홀의 박수소리가 그대로 통장에 날아와 꽂히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거물급 스타가 아닌 이상 오직 작곡만으로 먹고살기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작곡 이외에도 '생계용' 직업 하나쯤은 끼고 살았다.



이제 막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친 젊은 작곡가 홀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교회에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극장에선 트롬본 연주자로 일했다. 그러다 1898년에는 카를 로사 오페라 컴퍼니의 수석 트롬본 주자 겸 리허설 코치직 제안을 받았고, 곧장 트롬본 가방을 짊어지고 오페라단에 합류하러 떠났다.



카를 로사에서 보낸 첫 주는 악몽 같았다. 생소한 레퍼토리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고, 가수와 연주자들은 뭔가 모르면 홀스트에게로 와서 질문을 퍼부었다. 그래도 이런 혹독한 현장 실습 덕분에 그는 오케스트라의 속사정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었고, 돌이켜보면 이는 작곡가로서는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한 셈이었다. 그의 절친 레이프 본 윌리엄스는 나중에 이렇게 적었다.



"그(홀스트)의 오케스트라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 또렷한 감각은 그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실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며 얻은 살아 있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회 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작곡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작곡된 곡들 중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에게 바친 <월트 휘트먼 서곡(Walt Whitman Overture)><발레 모음곡 E플랫장조(Suite de Ballet)>가 있다. 휘트먼은 홀스트와 본 윌리엄스 모두에게 영감을 준 거인이었고, 홀스트는 훗날 그의 시를 기반으로 <죽음의 송가>를 비롯해 수많은 곡들을 써냈다.



서곡에는 멘델스존 같은 19세기 낭만주의 거장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면 발레 모음곡을 들어 보면, 아까 본 윌리엄스가 했던 말대로 현장에서 '구르고 부딪히며' 오케스트레이션을 몸으로 익히고, 그 와중에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모음곡 중 '왈츠(Valse)'는 라벨을 떠올리게 하는 우아함과 섬세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터치가 녹아 있고, '밤의 정경(Scene de Nuit)'는 뱃노래를 연상케 하는 서정성 속에 아름답게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이 돋보인다.



Walt Whitman Overture, Op. 7




"Suite de Ballet" Op. 10





어느덧 19세기가 저물고 1900년의 아침이 밝았다. 홀스트는 여전히 트롬본을 짊어진 채 순회 공연을 다니며 작년부터 쓰던 교향곡의 작곡을 틈날 때마다 이어가고 있었다. 작품의 이름인 "코츠월즈"는 그가 첼트넘 그래머 스쿨을 졸업한 후 성가대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열심히 걸어다니던 코츠월즈 언덕(Cotswolds Hills)에서 따 온 것이었다. 홀스트의 딸 이모젠은 훗날 이 작품이 "그가 지금껏 시도한 것 중 가장 야심찬 작품"이라 회상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이 곡을 통해 코츠월즈 언덕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그 감정은 좀처럼 뚜렷하게 표현되지 못했다. 영국 시골의 상징을 찾으려 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이라곤 에드워드 저먼(Edward German)의 튜더 왕조풍 흉내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일단 빌리고 난 후에는 정해진 형식에 끼워 넣는 것 외에 달리 활용할 길을 찾지 못했기에 그저 무사히 완성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교향곡의 작곡은 잉글랜드 동쪽 해안의 스케그네스(Skegness)라는 도시에서 7월 24일에 마무리되었다. 특히 2악장은 홀스트가 존경하던 사회운동가이자, 해머스미스 사회주의 협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죽음에 바치는 애가(哀歌)로, 윌리엄 모리스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의 헌정이었다.




홀스트가 오르간을 연주했던 성 로렌스 성당



코츠월즈의 베니스라 불리는 버튼온더워터(Bourton-on-the-Water)




홀스트의 "코츠월즈" 교향곡의 초연은 1902년 4월 24일, 본머스 윈터 가든스에서 댄 갓프리(Dan Godfrey)가 지휘하는 본머스 시립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이 공연은 홀스트가 쓴 교향악 작품이 전문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최초의 무대였다. 홀스트와 아내 이소벨, 본 윌리엄스는 리허설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본머스로 향했다. 리허설 도중 연주자들의 작은 실수와 지휘자의 질문 폭탄으로 홀스트는 살짝 긴장한 듯 보였지만 다행히 리허설과 본 공연 모두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청중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더 타임스는 다음과 같은 평을 전했다. "작곡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정확히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다만 탄탄한 음악적 작법과 선율적 재능이 엿보이며, 특히 느린 악장에서 그 장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악장이야말로 작품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 할 만하다. 반면 첫 악장은 힘이 부족하고 독창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청중은 교향곡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따뜻한 반응을 보냈다."




코츠월즈






차표값을 아끼기 위한 습관과 별개로 홀스트는 평소 산책을 즐겼고 먼 거리라 하더라도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며 영국 곳곳의 명소들을 소개해주는 트레킹 가이드 "The Gustav Holst Way"라는 책도 있으니 나중에 영국 여행 시 참고해봐도 좋겠다.



교향곡은 아무래도 단순한 초기작이라 부르며 묵혀놓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1악장은 짧지만 영국 민속 음악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밝고 활기찬 대목이다. 경쾌한 리듬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홀스트가 윅 리싱턴과 버튼온더워터를 오가며 보고 느꼈던 푸르른 자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전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악장 엘레지는 단연 압권이다. 여린 선율 속에 금관이 제법 많이 등장하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스토리텔링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듣는 이는 마치 한 편의 장중한 추모 헌사를 감상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4화에서 계속)






Holst: Symphony in F Major, Op. 8, H. 47 "The Cotswolds"

홀스트: 교향곡 F장조 "코츠월즈"



길이


약 25분 - 30분



편성


2(2번 주자가 피콜로 겸)/2(2번 주자 잉글리시호른 겸)/2/2 – 4/3/3/1 – 팀파니 – 타악(심벌·트라이앵글) – 현.



홀스트는 교향곡을 몇 개 썼을까?


홀스트는 나중에 <합창 교향곡(Choral Symphony)>을 따로 썼지만, 이 곡은 대규모 성악이 결합되어 있고 다소 난해하다는 평이 많다. 순수 기악 교향곡은 이 작품뿐이다.



주요 음반


JoAnn Falletta / Ulster Orchestra (NAXOS)

Andrew Davis / BBC Philharmonic (Chandos)

Douglas Bostock / Munich SO (Classico)






I. Allegro con brio








II. Elegy: Molto adagio - "In Memoriam William Morris"








III. Scherzo: Presto








IV. Finale: 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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