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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03. 2018

[두부]언어를 음악에 담는다는 것, 심규선(Lucia)

올해의 노래
그리고 2017년, 누구보다도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면서 마음의 갈증에도 허덕였던 나를 위로해준 심규선의 달과 6펜스.


매년 올해의 노래를 혼자 생각해보곤 한다. 어렸을 적부터 매년 있었던 것 같지만 가장 최근 몇 년을 생각해봐도 상당히 다양하다. 2015년, 칙칙한 재수생의 일상에 새로움과 싱그러움을 안겨주었던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사실 이거 제목을 영어로 써야할 지 한글로 써야할 지 잘 모르겠다). 2016년, 대학 입학하고 처음 느낀 쓸쓸함과 공허함을 채워주던 우효의 청춘.


그리고 2017년, 누구보다도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면서 마음의 갈증에도 허덕였던 나를 위로해준 심규선의 달과 6펜스. 사실 심규선의 모든 노래들이 <올해의 노래>이긴 했지만, 특히 이 노래를 제일 많이 흥얼거리고 혀끝에 담고 살았던 것 같다. 가장 시적이었고, 아름다웠고,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해준 노래였다.


심규선(Lucia)


노래들에 영혼이 있다면, 그녀는 그 영혼들에 접신해 독무를 추는 무녀(巫女)와도 같았다.


심규선에 대해서 나는 사실 잘 모른다. 원래 활동명은 세례명인 Lucia였으나 소속사를 옮기며 본명인 심규선으로 활동하게 된 사람, 뮤지컬 경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맨발로, 그 발끝으로, 그리고 손끝으로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 노래들에 영혼이 있다면, 그녀는 그 영혼들에 접신해 독무를 추는 무녀(巫女)와도 같았다. 원래 라이브를 잘 듣지 않고 공연에 찾아 가지도 않는 천상 안방순이 체질인 난 심규선 역시 음원으로 반복 재생하고 있었는데, 라이브 영상을 한 번 보고 하루 종일 모든 ‘직찍’을 돌려봤었다. 몸짓 하나하나로 자신이 쓴 가사의 진정성을 더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심규선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몇 개의 노래를 듣게 되었고(아마도 멜론 노래 추천으로 접했던 것 같다), 목소리에 먼저 반했고, 특유의 멜로디 진행과 독특한 분위기에 반했고, 가사를 보고 다시 한 번 반했다. 그녀는 시인이다. 가사 하나하나에 그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언어를 골라 담는 낚시꾼. 내가 생각하는 시인의 정의도 다르지않다. 나타내고 싶은 것을 최고의 언어로 행간에 담아내는 사람. 그녀는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의 노래

‘달과 6펜스’는 동명의 소설을 모티프로 써진 노래다. 고갱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 또한 이 노래 덕분에 읽었다. 주인공의 모델이 고갱인지도 모르고 읽게 된 책이었지만 한때 담쟁이의 첫 글로 이 책을 쓸지 고민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해서 그림을 그리고 자기 세계를 표현하다 간 스트릭랜드의 생애는 아팠고 눈물이 났으며 그러면서도 부러워 미칠 것 같았다. 다른 게 아니고 꿈에 미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미칠 수 있는 꿈이 있다는 것. 그게 너무 부러웠다. ‘꿈’이라는 글자 자체에 울컥하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세상은 꿈을 강요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의 인생을 멋지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조차 말라버린 우리에게 계속해서 꿈을 묻는 건 너무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일상을 버리면서 예술에 눈멀고 몸바친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노래에 멍해졌다. 부럽고, 동경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달빛에 비친 유리창도, 이렇게 반짝이지는 않지
너의 눈물, 맺힌 눈
검은 하늘에
너를 안고 있어도, 넌 여기 없고
그을음과 타고난 재만 있잖아.
아무래도 좋을, 결말 따위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다시 걸어보게 해줘 사랑에
난 이미 손 쓸 수 없게 돼 버렸지만


환상곡, 빛과 그림자

정말 모든 앨범이 좋지만, 굳이 꼽고 싶은 앨범은 두 개다. 미니앨범 [환상소곡집 Op. 1]과 정규 3집 [Light&Shade Chapter. 2].

[환상소곡집 Op.1]의 앨범커버. 아름다운 가사들과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마음 한 켠이 아린 멜로디의 결합은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심규선의 노래들의 독특한 분위기를 ‘환상곡’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녀의 가사를 탐미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매우 동의하는 바다. 아름다운 가사들과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마음 한 켠이 아린 멜로디의 결합은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녀의 미니앨범 [환상소곡집 Op. 1]의 앨범 커버가 가장 그녀의 음악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사실 제일 예쁘다). 이 앨범은 외국 동화의 배경 음악으로 쓰일 법한 <요람의 노래>부터 다분히 한국적인 사운드를 가진, 한을 표현하는 듯한 <아라리>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정규 3집 [Light&Shade Chapter. 2]의 앨범 커버. 앞서 말한 ‘달과 6펜스’가 담겨있다. 이 앨범에는 이 노래 말고도 보물 같은 트랙들이 많다.

정규 3집 [Light&Shade Chapter. 2]는 앞서 말한 ‘달과 6펜스’가 담겨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이 노래 말고도 보물 같은 트랙들이 많다. 정말 하나하나 너무 아끼는 노래들이라 어떤 것을 손에 꼽기가 아프다. 멍했던 귀가길과 새벽을 함께 한 노래들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많이 들은 트랙들로 추천곡들을 꼽아보자면.

<외로워 본>  되는 일도 없고 세상 시련이 다 나에게 오는 것만 같을 때, 힘듦의 끝이 어디일까 막막할 때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사실 마냥 “희망이 올 거야! 행복이 올 거야!”하는 투의 노래는 위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행복해 보이는 노래의 분위기와 내 상황의 괴리에 더 자괴감만 더해지지. “억지 하루 살아내는 그대를 그 누가 손가락질 할테요”라고 말해주는 이 노래는 그렇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고, “외로워 본 이”들을 조용히 응원한다.


외로워 본 이는 고독의 같은 말들이
슬픔도 상처도 아닌 걸 알게 된다지요
모든 게 다 지나고 나서야 이해하는 것
외로운 시간은 그렇게 성립하는 것

외로움은 이제 더 이상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믿게 되었지요
진정으로 외로워 본 사람만이
사랑하고 가슴 뜨거울 자격 있음을


<너의 존재 위에>  이 노래도 무척이나 애정하는 노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가끔 잊곤 한다. 그럴 때마다, 보통 랜덤 재생을 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튀어나온 루시아는 말했다.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절대 올리지 말 것을. 위로를 찾던 곳에서 위로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할 때. 절절하지만 어딘가 차분한 목소리로 노래하던 목소리, 그 말들을 멜로디에 얹어 전달하던 목소리가 있었다.


난 참 바보처럼 쫓았지
보이지 않는 허상을 잡히지 않는 허상을
두 손에 쥐려고 애를 썼네
불행함의 이유를 이 괴로움의 시간을
다 견뎌내려 하지마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두지마
꿈도 명예도 어제와 불확실한 내일 그보다 더 소중한




홀려서 듣게 된다, 라는 말이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 나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심규선은 선율 위에 그대로 음성과 몸을 맡기며 노래의 화자 그 자체로 분한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또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새롭고,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고, 매번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 이 노래들이 내 마음에 그렇게 절절히 다가왔는지에 대해 나는 아직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노래를 듣고 잠시라도 멍해지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슴 속에 뜨거움이 밀려와 가끔은 눈까지 올라와 버리곤 한다는 것은, 그녀의 노래들이 매우 특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2018년 1월 어느날.
2017년을 떠나보내며.
두부 씀



사진 출처: 심규선 인스타그램(@luciatune)
영상 출처: 유투브 simsime9
사진 출처: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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