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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26. 2018

[두부] 봄은 고양이로다, 신촌 카페 데 코믹스

** 이 글은 #신촌데이트코스#신촌만화카페추천 글이 아닙니다. 그냥 고양이와 나무와 여유를 갈망하는 어떤 사람의 애정을 담은 후기.

카페데코믹스는 신촌 구석에 자리한 고양이가 있는 만화카페이다. 지하에 위치해 있는 이 사랑스러운 공간은 이 반짝이는 로고로 시작된다.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고, 일상을 잊고 싶고, 지금 직면한 문제들을 잠깐 미루고 싶어질 때 가는 곳이 있다. 매연 속에서 벗어나 푸른 공기를 마시고 싶은 심정이지만 의외로 이럴 때 내가 찾는 곳은 신촌 구석에 자리한 고양이가 있는 만화카페, 카페 데 코믹스다. 물론 이런 거창한 이유뿐만이 아니고 그냥 심심할 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항상 생각나는 곳이다. 방문할 때마다 찍어주는 작은 쿠폰이 거의 다 채워져가고 있다.

이곳에는 고양이들이 많다.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고양이들이 가끔 슬금슬금 걸어와서 눈을 맞춘다. 바로 이렇게!

이곳에는 고양이가 많다. 몇마리인지 세어보지도 않았다. 대충 기억나는 건 뚠뚠이 검정과 흰색 얼룩 고양이,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 입가와 발이 까만 카푸치노색 샴고양이, 그리고 상당히 야성적으로 생긴 날씬한 갈색고양이 등. 여느 만화카페처럼 테이블에 앉는 자리와 누울 수도 있는 좌식 칸으로 구별되어 있는 이곳에서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고양이들이 가끔 슬금슬금 걸어와서 눈을 맞춘다. 머리 뒤쪽 날개죽지나 꼬리 위쪽을 긁어주면 기분좋게 가르랑대며 엎드리기도 한다. 물론 까다로운 본래의 성질만큼 손만 대도 달아나는 경우도 많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내 간식을 사서 부스럭거리는 순간 이 까다로운 주인들은 우리가 잠시 빌린 곳에 커튼을 젖히고 침입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의 공간이 그네들에게 간택받았다는 사실에 인간들은 모두 행복해한다. 그리고 이 귀여운 존재들을 받아들여 맘껏 예뻐해주고 싶어하며 애교를 부려본다. 그렇지만 시크한 눈빛으로 한 번 돌아본 고양이들은 이내 벗어나 다른 곳을 탐색한다.

"뭘봐?"라는 듯한 표정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가장 사람 손을 잘 타는) 얼룩무늬 뚠뚠이 고양이. 머리 뒤쪽 날개죽지나 꼬리 위쪽을 긁어주면 기분좋게 가르랑대며 엎드리는 경우도 있다.

'냥냥이의 흔적.jpg'라고 바로 캡쳐해서 저장해놓았던, 어느 간택당한 날의 흔적. 내 노트북 자판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셨다


만화카페는 편안히 누워 만화를 여러권 쌓아두고 정주행하는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특히)일본 만화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는 그냥 가서 길게 누워 한숨 자거나 과제(...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굴레이다)를 하기도 하고, 정말 여유가 남는다면 웹툰 단행본을 옆에 쌓아두고 들춰본다. 별다른 먹을거리를 시키지 않아도 그저 그 여유만으로 너무나 충분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혼자서 가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과 가면 더더욱 좋은 곳. 나무의 따뜻한 느낌과 고양이털이 코를 간지럽히는 것 마저 기분 좋은 곳이다.

고양이를 예전부터 좋아하던 나로서는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로 채우게 되는 공간이다. 책들로(물론 만화책이지만 큰 서가가 있는 공간은 항상 옳다.) 가득 채워지고 고양이들이 그 사이를 뛰노는 이곳은 어릴 적 읽었던 <고양이학교>라는 책마저 생각나게 한다. 그 책을 읽고 아비시니안 고양이는 사자같이 용감해! 덤블도어같아!라고 외치던(판타지덕후주의)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야성적인 고양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화질이 조금 구리지만, 가끔 이렇게 서로 붙어서 소파 위에 잠든 모습도 볼 수 있다.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가 있다. 중학교 국어시간, 이 시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내가 좋아하는 봄.. 하고 되뇌이며 혼자 마음에 담아두던 시였다. 이 카페를 처음 방문한 것은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이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곳곳에 있던 고양이들에 봄을 담아 보여주었다. 다시 한 번 그 시의 구절구절이 떠올랐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봄과 여유를 갈망하는 어느 겨울
두부 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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