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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Aug 18. 2018

[유월] 세상에 없던 이야기, 김동식 소설집

투박하지만 진한 손길로

 나의 독서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그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 '도서관 출입증'을 손에 쥐었을 때였던 것 같다. 한 학년에 고작 다섯 반뿐이었던 작은 시골 동네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방과 후에 친구들이 하나같이 손에 나뭇가지를 쥐고 뒷산 아래로 콩벌레를 사냥 나갈 때 도서관 바닥에 낮게 지는 노을을 조명 삼아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듯 작은 서가에 꽂힌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곤 했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독서의 의미란?'이라는 다소 뻔한 질문을 받게 된다면, '차마 다 알지 못하고 죽어갈 누군가의 세계를 엿보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니까, 200년 전의 과거든 300년 후의 미래든 저 멀리 바다 건너 미지의 섬이든 오로라가 펼쳐지는 밤 빙하의 한가운데든,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순간들을 담아둔 보물상자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둘씩 아는 것이 많아지고, 키도 한두 뼘씩 자라며(사실 키는 그렇게 많이 크지 않았다..) 나의 세상은 그 조그만 도서관을 넘어서서 넓어졌고, 동시에 나의 또 다른 세계는 좁아졌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중고딩에게 책 읽는 시간은 사치였다. 나는 그렇게 자라났고 매일 다크서클 진한, 때 낀 얼굴로 수업을 듣고, 알바를 가고, 술을 마시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생계형 삶을 살다 우연히 시작한 도서관 알바에서 그 어린 시절 보았던 듯한 노을과 함께 서가 구석에서 이 책을 만났다.

 뻣뻣한 표지에 적힌 책의 정체성은 장편 소설도, 단편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소설집'이었다. 그 투박한 단어가 가슴 한가운데를 때리는 듯했다. 그리고 홀린 듯 읽어나간 문장들은 투박하지만 진하고, 독특하지만 어딘가 익숙했고, 웃기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비유하자면 언젠가 실수로 먹은, '첫 맛은 달달하지만 끝은 꽤나 쓴 홍삼 캔디'같은 느낌이었다. 작가가 남몰래 도서관 구석에 나를 불러내 들려준 세계들은 기괴하고 특별하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고,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기도 했다.

그동안 없던 작가, 김동식
"평생 읽은 책이 열 권이 안 되고... 그것도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일 거예요. 글을 쓰고 싶은데 배운 적이 없으니까 네이버에 들어가서 '글 쓰는 법'을 검색했어요. 보니까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고, 접속사를 많이 쓰면 안 되고, 간단명료하게 써야 하고, 그런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배운 대로 써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 김동식 인터뷰 中


  김동식 소설가를 부르는 여러 애칭 중 하나는 '노동하는 작가'다.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태어나서 책 10권도 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 대구로 올라갔고, 서울로 상경해 액세서리 공장에 취직해 10여 년을 일했다. 그러니 당연히 글 쓰는 법에 대해 교육받은 적도 없다. 그저 그는 마음으로, 손끝으로, 땀으로 읽어낸 세계를 오염되지 않은 그만의 언어로 지금 막, 발언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우리들 앞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절대로' 예측 불허하고, 서사들은 하나같이 뒤틀렸다. 당장 다음 행에 등장할 단어들 마저도 예상할 수 없고, 마치 몇 만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막 건져올린 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의 이러한 면모들은, 매혹적인 마지막 문단들을 낳는다. 나는 항상 단편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사랑한다고 외치곤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위태롭고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몇 장안에 끝마쳐야 하는 서사를 안은 작가들은 타당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그것을 끝맺어야만 한다. 때문에 서사 끝에서 마주하는 마지막 문단들은 모두 조금의 반전과, 이질감과, 여운을 품는다. 김동식의 예측불허함과 마지막 문단들의 이질감이 만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독특한 경험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낸 총 5권의 소설집 중 3권에 나타난 세계와 그 마지막 문단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약 당신에게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속 강렬한 울림이 전달된다면, 조용히 '공감'을 누르고 당장 5권의 소설집을 위해 서점으로 출발하길 바란다.

소설집 1. 회색 인간

  김동식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풍자와 비판, 해학이 가득한 어른 동화의 면모를 서사 전반에 깔고 있는 김동식의 이야기들을 대표할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집 [회색 인간]에서 첫 번째로 실린 단편은, 제목과 동일한 이름의 소설 <회색 인간>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소설집 1권인 [회색 인간]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회색 인간]은 <회색 인간>,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등의 단편에서 우리를 결국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극한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낮인간 밤인간>,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등의 단편에서는 정상과 비정상, 다수와 소수, 그리고 차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큰 물음들을 던진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먼 곳에서 인류를 관조하며 자조 섞인 물음들과 함께 극한의 상황을 던져놓는다. 마치 게임 판에 '인간'이라는 말을 놓은 딜러처럼, 혹은 지구를 처음 만들고 인간을 시뮬레이션 하는 신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같이 참담하다. [회색 인간]은 우리에게 답변을 내려주길 바라고 있다. 어떠한 경우의 수에서도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시뮬레이션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인간이 무엇을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1.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
2. 인간에게 환멸을 느낀 적이 있거나, 인간 중심적 사고에 지친 사람
3. 정상과 비정상, 다수와 소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회색 인간>의 마지막 문단.

소설집2.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내가 처음으로 접한 그의 소설집이다. 담겨 있는 수많은 단편에서는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요괴들이 인간들 앞에 나타난다. 돈 욕심이 과한 사람들을 황금으로 만들어 준다는 요괴부터, 음식을 TV 혹은 잡지 등에서 보기만 해도 그 맛과 포만감이 느껴지는 초능력을 준다는 요괴, 세상 모두를 예쁘게 만들어준다는 요괴까지.. 모두가 혹할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요괴 앞에 인간들이 선택한 선택지와 만들어갈 결과에 대한 궁금증은 단숨에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가도록 만든다.

 처음 책의 제목을 읽었을 때, 제목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왜냐하면 인간 앞에 등장하는 요괴들은 하나같이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단편을 읽고 난 뒤, 제목이 지칭하는 것은 인류 앞에 나타난 '요괴'가 아닌 바로 '인간'임을 깨달았다. 소설 속 인간들은 하나같이 약하다. 황금, 젊음, 미, 쾌락 등 수많은 유혹에 갈대처럼 흔들린다. 이렇게 약한 인간들이 모이고 모여 다수가 되면 가장 강한 요괴가 되어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의미하는 건,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악한 요괴'이지 않을까.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1.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 성악설을 믿는 사람.
2.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 성선설을 믿는 사람.
3.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사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요괴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안전했다.
수백 명의 인간을 삼켜 먹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인간을 삼켜 먹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요괴였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의 마지막 문단

소설집3. 13일의 김남우

[회색 인간]이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다면, 13일의 김남우는 SF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김동식은 자신의 발칙한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혹은 앞서 두 시험을 통과한 인간들을 몰아붙이는 듯, 더욱더 기괴한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우리의 당황하는 표정을 지켜보며, 그는 '이건 몰랐지?'하고 비웃어 버릴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집은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편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비효과>에서는 자신의 사소한 행위가 몇 단계 후에 누군가의 죽음을 야기하게 된다면 휴대폰으로 알림 문자가 전송된다. <13일의 김남우>에서는 매일 13일만을 살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도덕의 딜레마>에서는 지구 멸망 전, 노아의 방주에 타기 위해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시험당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에이즈에 걸린 80세 노인과 반드시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낳는 20세 여성, 둘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와 같은. 앞서 두 소설집이 인류 집단의 행위를 관조하는 느낌이었다면, [13일의 김남우]는 우리를 바로 앞 탁자에 앉혀두고 끊임없이 심문하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1. 평소 심리학 실험에 관심이 많은 사람
2. SF, 판타지 장르에 관심이 많은 사람
3. 앞선 두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사람


"너희들이 상상했던 그 이야기들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야.
이런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현실.
너희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정말, 끔찍하게 무서운 이야기 아니야?"
학생들은 침묵했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맞았구나.

-<김남우 교수의 무서운 이야기>의 마지막 문단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요괴가 연처럼 날아다니는 하늘 위로,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요괴에게 먹혀도 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뚱뚱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슬픈 사람도, 아픈 사람도, 외로운 사람도,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中



이 글을 처음부터 모두 읽어내린 사람들이 그가 너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오해할까 염려된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 속 인간들이 하나같이 잔인하고 그래서 모든걸 붕괴시키더라도 김동식은 서사의 말미에 항상 희망의 가능성을 품은 단어들을 심어놓는다. 그리고 그를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우리의, 인류의 몫으로 남겨둔다. 때문에 그의 글을 읽고난 직후에는, 우리가 어떤 답을 내리고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지에 대해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를 너무 비관적 작가로 매도하진 않았으면 한다. 누구보다 우리의 곁에서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며 글로써 ‘노동’하는 그이기에,
오늘부터 세상에 대한 그의 비관을 또 하나의 사랑의 언어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p.s 너무 흥미로워 단번에 술술 읽히더라도, 하나씩 음미하면서, 천천히 그의 단편들을 맛보길 바란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8월의 휴가 한 자락에서,
유월 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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