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라이트한 덕질 중입니다
오늘은 취향의 결정체, '덕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덕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심장이 아파서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기둥을 뽑고 지구까지 부수겠다는 그들!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똑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사고 초를 다투는 콘서트 티켓팅에 목숨을 걸며 피땀 같은 돈을 모아 지하철과 버스에 광고를 내거는 그들!
그러나 여기, 좀 더 무난한 덕질도 있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보며 무한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활력소를 얻고 나면, 금방 앱을 종료하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그렇게 나는 요즘 '라이트한 덕질'을 한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여돌, "우주소녀", "러블리즈", "오마이걸"을 라이트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주소녀
첫 번째 걸그룹은 우주소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활동은 많지 않지만 '우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듯한 그룹이다. 그런 만큼 내가 생각하는 우주소녀는 보랏빛의, 판타지 소녀들. 이들은 신비하고 몽환적인, 말 그대로 다른 별에서 내려온 것만 같은 마법소녀 이미지로 이목을 끈다.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는 탄탄하게 짜인 무대가 한 몫을 한다. 우주소녀의 무대는 그룹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해당 활동 콘셉트의 핵심적인 사랑스러움 요소들을 극대화해 전시한다. 화려한 안무와 대형은 많은 멤버 수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이고, 멤버가 이렇게 많은데도 한명한명의 디테일에 신경 써준 스타일링은 감탄(아니 감사)이 나올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내 최애는 대체 영상을 몇 번 돌려봤는지도 모를 <부탁해>. 청각적인 면에서도 여러 타이틀 곡이 풍성하고 웅장한 사운드로 내 취향을 저격했다. <부탁해>와 비슷한 느낌의 추천 곡은 <비밀이야>, <꿈꾸는 마음으로>, <La La Love>.
우주소녀의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걸스 판타지를 선사한다.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청순한 걸그룹의 이미지를 간직하면서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관을 탑재해 독특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제각각 하나의 에피소드로 존재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노래에 옷을 입히듯 패션, 아트워크, 영상 등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성이다. 12명의 멤버들은 예쁘고 순수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거나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캐릭터로 가상과 현실을 오갈 예정이다. 그리스 신화부터 별자리까지 다양한 우주의 상징을 활용해 하나씩 짝을 맞추듯 소녀들의 상상 속의 판타지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우주소녀 EP 1집 <WOULD YOU LIKE?> 앨범 소개 中
나로서는 가장 최근에 알게 된 그룹인데, 본인들의 매력이 단체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확실하고 그를 영리하게 내세우니 사랑하지 않을 턱이 없다. 진입 장벽처럼 느껴졌던 멤버 수도 곧 알아가는 재미가 될 것이다.
러블리즈
두 번째 걸그룹은 러블리즈. 팀명에서부터 사랑스러움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만큼, 이들은 차분하면서도 수줍은 마음을 스스로의 무기로 삼는다. 나에게 러블리즈는 순정 만화 주인공이자 분홍 그 자체인데, 이는 분홍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리고도 굳세게 피고 지는 꽃과 그들이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구현하는 매체는 단연 음악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은 어딘가 적당히 올드하고, 그만큼 애틋하고 아련한 감성을 담고 있다. 단조로 점철된 이들의 정서는 청순가련한 일편단심이다. 한 술 더 뜨면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다는 한 시인의 이름이 연상될 정도.
네가 좋아 쉽게 말해도
지금 내 맘조차 가볍단 건 아니야
그 또한 사랑이겠죠 바라만 보다 그친다 해도
그 또한 사랑이겠죠 내가 그렇게 부를 테니
러블리즈, <찾아가세요> 中
근데 이상해요 어느 날 갑자기
그럴 거란 예고 한 마디 없이 아물어요
녹아가요 시린 말들도 흘러가요 아픈 기억도
사라져요 아픈 상처도 지나가요
러블리즈, <그 날의 너> 中
그런데 이렇게, 한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그 마음은 결코 연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마음은 여리지만 굳세다. 그냥 순수한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순수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그리고 구멍 없이, 기복 없이 고르게 각자의 기량을 뽐내는 멤버들은 이를 한껏 살려 소화해낸다.
특유의 순수함을 곡에 고급지게 녹여 내고, 이를 다시 자신들의 러블리함에 옮겨 오는 이들의 작업에 다들 관심을 가져 주시길. <Ah Choo>와 같이 밝은 분위기의 곡을 원한다면 <Candy Jelly Love>, <안녕(Hi~)>, <지금, 우리>, <그대에게>, <Destiny(나의 지구)>와 같이 다소 어두운 곡을 원한다면 <찾아가세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그날의 너>를 추천한다.
오마이걸
세 번째 걸그룹은 오마이걸. 앞서 말한 그룹들과 비교하자면 오마이걸은 주황도 초록도 될 수 있는, 노란색의 동화 속 소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발랄하고 상큼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스펙트럼이 넓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꾸준히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며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오마이걸은 <Closer>, <비밀정원>에 이어 <다섯 번째 계절>을 통해,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틈틈이 <불꽃놀이>, <Coloring book>의 화려한 연희복이나, <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와 같은 청순한 요정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들의 다채로운 사랑스러움을 보여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빈틈을 공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일이 중소기업 아이돌의 과제이자, 동시에 셀링 포인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이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확실해진다.
사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오마이걸 쇼크’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가장 먼저, 오마이걸은 ‘걸그룹’ 하면 딱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팀이란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그런 기본형 모드에서, 오마이걸은 퀄리티가 부단히 높은 몇 안 되는 팀들 중 하나란 점이 더 있다.
셋째, 오마이걸은 여성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외적/인성적 조건들을 두루 갖춘 팀이기도 하다.
(...)
3대 기획사 아이돌은 이미 기획사 이름값만으로 셀링 포인트가 자동 설정된다. 일반대중조차 3대 기획사 팀들엔 관심을 갖는다. 그 자체로 홍보깃발인 셈이다. 그러나 중소기획사 출신 중소돌들은 다르다. 각자의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부실한 이름값을 대신할 셀링 포인트가 된다.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오마이걸이 만든 이변> 中
오마이걸 최대의 매력 포인트를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전원이 매력 넘치는 멤버 구성이 아닐까. 아이돌 취향이 확실한 나조차, 편애하는 멤버 하나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아마도 이 멤버들 자체의 사랑스러움이 오마이걸의 변신을 뒷받침하는 동력일 것이다.
행복하고 싶을 때 나는 소녀들을 봐요
나는 이들을 볼 때 무거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에만 몰두할 뿐이다. 어떤 감성을 이야기하더라도 이들의 문법은 모두 사랑스러움에 근거하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스럽고, 나는 덧없을지라도 이순간 분명한, 신남과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때의 나는 어둡더라도 아주 어둡지 않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위안의 대부분이 이들의 외형적인 예쁨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존재한다고도 믿고 있다. 그것이 하얗고 날씬한 젊은 여자들이 주는, 한없이 가볍고 밝은 잠깐의 행복일지라도. 나에게 더 웃고, 설레하고, 사랑스러워하는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옳다고는 못 하더라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한다고.
2019.06.
在人, 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