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들을 재생하며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뮤직비디오 재생까지 하면 더욱 좋습니다.
‘유또보’에 이어 ‘두또듣’이다. 담쟁이를 시작하고 주구장창 듣담만 써온 것 같은데, 이번주도 듣담이다.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음악은 상당히 간편한 취향이다. 특히 팝 음악은 공연을 가고 싶다고 바로 갈 수 있는게 아니기에 어차피 못 즐기므로, 어디서건 이어폰 하나로 즐길 수 있기에 간편하다. 다른 일들을 하면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종강을 앞두고 정신없던 나에게 적당한 장르의 취향인거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로 때우는 건 아니다. 얼마전 처음 듣게 된 이후로 열람실에서 정신을 놓고 모든 노래를 재생했었다. 한 글자라도 더 짜내야하던 무수한 밤들에 잔잔하게, 때론 강력하게 맴돌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빌리 아일리시(Bilie Eilish)다. 2001년생인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지하고 어두운 감상을 펼쳐놓는다. 빌리의 감성 하나하나는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세련된 우울에 기반한다. <When the party's over>의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마시는 푸른빛 도는 검은 액체처럼 짙고 어두운 것으로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MwTqkKSps
여러분의 그에 대한 첫인상이 어떨지 궁금하다.
Ocean eyes
그의 데뷔 스토리는 '어쩌다보니'라는 다섯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14살 빌리는 오빠인 피니어스 오코넬(Finneas O'Connell)이 옆방에서 노래를 만들어 듣는 것을 듣다가 흥얼거렸으며, 그의 버전이 좋다고 생각한 피니어스의 제안으로 노래를 녹음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게 되었다. 올린 노래는 하룻밤만에 몇천 뷰를 돌파했고, 음반 제작사의 연락을 받게 되었으며 그렇게 데뷔하게 되었다. 그 데뷔곡이 바로 이 Ocean eyes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imfQi_pUw
No fair
You really know how to make me cry
When you gimme those ocean eyes
I'm scared
I've never fallen from quite this high
Falling into your ocean eyes
Those ocean eyes
- Ocean eyes -
뮤직비디오는 별게 없다. 그저 빌리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노래할 뿐이다. 노랫말의 'ocean eyes'는 화자가 사랑에 빠진 누군가의 눈을 가리킨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느껴지는 일렁이는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설레지만 무섭다. 눈을 바라보면 말 그대로 마음 한 구석이 쑥 빠지는 느낌을 받을 때, 그의 눈의 홍채 한 줄 한 줄이 불꽃처럼 보일 때(Fifteen flares inside those ocean eyes). 아니 어쩌면 눈을 본 순간 이미 망한거지. "나는 무서워, 이렇게 높이서 떨어져 본 적이 없거든. "이라는 노래 가사는 그만큼 직관적이다. 감동(感動)이라는 말에 대한 정말 강력한 설명이 아닐까.
Bellyache
https://www.youtube.com/watch?v=gBRi6aZJGj4
가장 처음으로 접한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이다. 곱고 예쁜 색감의 뮤직비디오와 정말이지 천사같은 목소리로 시작되는 노래의 도입부만을 보자면, 도대체 뭐에 관한 노래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공개되고나서 지금까지도 유투브에 해석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으며, 몇 가지 영상을 골라보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이다. 보편적인 해석은 노래의 화자는 벌써 주변인을 다 죽인 살인자로, 살해를 저지른 후에 다가오는 허무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가사 해석은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래에 링크 하나를 첨부해두겠다.)
노래를 하다가 머리를 감싸쥐고, 갑자기 조금은 귀엽게 춤을 추고, 돈을 허공에 뿌리고. 사실 뮤직비디오는 별게 없다. 그저 미국(인지도 사실 확실하지 않음) 어딘가의 도로에서 말하듯 노래를 읊조리고, 석양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은색 머리를 흩날릴 뿐이다. 그러나 묘하게 집중된다. 정말 이상하고 묘하게, 홀려서 그냥 보게 된다. 처음 노래를 들으며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면, 안 추는 듯 추는 춤사위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은 더 재생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결국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모든 노래를 채워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뮤직비디오 중 가장 발랄하고(?) 귀여운 포인트가 많이 등장하는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입덕 전문 노래>다.
Where's my mind
Maybe it's in the gutter where I left my lover
What an expensive fate
My V is for Vendetta
Thought that I'd feel better
But now I got a bellyache
- Bellyache -
빌리는 노래는 굳이 자전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되어 그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천진하다. 그 안에 존재하는 페르소나는 몇일지, 다음 노래에서는 또 어떤 사람을 보여줄지 하루하루 기대가 되는 뮤지션이다. 다만, 위험한 페르소나들에 갇히지 않길, 팬으로서 진심으로 기도할 뿐이다. 최근의 인터뷰들에서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 많은 팬들이 걱정을 표하고 있다. 자기혐오와 우울감 등은 그의 음악의 원천일 수도 있겠고 우리가 그의 음악에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기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PzYp2Q4YO0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https://www.youtube.com/watch?v=Ah0Ys50CqO8
그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들을 보다 보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포스에 압도되곤 한다. 내리깐 눈, 상대방을 더 얼게 만드는 굳은 표정, 어디를 바라보는지 잘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는 푸른 동공은 그 '포스'를 한층 공고히 한다. 이 뮤직비디오는 거미와 함께 한다. 거미를 정말정말 싫어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대단한 작업으로 보인다. 중간에 입에서 거미가 튀어나오는 씬 또한 직접 입에 거미를 넣고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범인(凡人)은 아니다. 평소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첫 자작곡이 <워킹 데드>를 보고 쓴 것이라고 하니, 사실 그의 취향은 말 다했다. 나로서는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의 총체라고 생각되는, 가장 '빌리 아일리시스러운' 노래였다.
제목인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은 영국 드라마 <셜록>의 모리아티의 대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우리의 지배욕을 포함한 다른 기타 욕망들을 모으고 모아, 그것이 만약 인격체를 갖게 된다면 모리아티 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갖고 있지만 모두가 아닌 그런 것. 거미를 달고 있는 왕관을 쓴 빌리 또한 노래한다. Watch me make 'em bow/ One by one by, one.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금기를 짚어주는 작품들에 나도 모르게 작은 열광을 보내며, 괜한 쾌감을 느낀다.
Count my cards, watch them fall
Blood on a marble wall
I like the way they all
Scream
Tell me which one is worse
Living or dying first
Sleeping inside a hearse
I don't dream
You say
Come over baby
I think you're pretty
I'm okay
I'm not your baby
If you think I'm pretty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I'm gonna run this nothing town
Watch me make 'em bow
One by one by, one
One by one by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Your silence is my favorite sound
Watch me make 'em bow
One by one by, one
One by one by (one)
https://www.youtube.com/watch?v=-tn2S3kJlyU
최근 한 달 동안 그의 노래에 빠져 살면서, 언젠가 꼭 담쟁이에 소개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정신나갈 것 같은 감성'이라고 명명한 그의 노래들을 주변 여기저기에 소개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지난 일 년동안 느껴왔기에, 충분히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말이 고이지 않았음에도, 나는 오늘 그를 소개해야만 했다. 재인이 기리보이를 소개할 때 말했던 것처럼, 이 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좋아함이 더 많이 농익기 전에 가볍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오늘도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글이 서투르다. 소개하고 싶은 노래들은 더 많고 모든 트랙리스트에 한 마디씩 남기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에서 느끼는 감상은 한계가 있다고 늘 생각을 했는데, 이 어린 뮤지션의 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러분도 그의 눈을 들여다보시길.
그의 홍채 속에서,
두부 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