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자 하는 기시미 이치로의 말인데, 이 명언이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관통하는 주제인 것 같다. 이십 대 중반이면 아직 뭐든지 해낼 수 있을 만큼 어린 나이라고 주변에서는 늘 부러워하지만 한 편으로는 성공보다는 실패 경험이 더 많은 짧고 얕은 인생이 불만족스럽기도 하다.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일이나 임용고시에서 간발의 차로 불합격했던 경험들은 당장 십 년 후에 되돌아보면 누구나 의례 겪는 성장 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막연한 지금에는 이런 과거의 실패들이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들곤 한다. 실패하기가 두려워 더 이상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당연한 말을 되새기며 도전을 회피하는 자신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신 취약계층으로 불리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거나 요청하기 어려운 청년을 우리는 고립청년이라고 부른다. 부끄럽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다룬 뉴스기사를 볼 때면 그들과 대비되는 내 모습에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난 후 지금에서야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어떻게 하면 보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들과 내게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Ⅱ 훈육
칼 융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표현대로라면,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피하려고 했던 그 고통보다 피하려는 마음이 더 고통스러워진다.... 그런데 다행히 어떤 이들은 신경증에 대결할 용기를 지니고 있어서 정당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간다. 어느 경우든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당한 고통을 피하려 하면 역시 문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장을 놓치게 된다....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훈육시킨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법과 동시에 성장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고 지금 당장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순간의 즐거움을 선택한다면 문제를 해결한 결과 얻게 되는 성장을 놓치게 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와 이 책의 저자가 공감하고 있는 ‘고통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한 세대와 그 윗세대사이의 갈등에서 쉽게 등장하는 단어인 ‘꼰대’는 이해할 수 없는 가치를 권위적으로 강요할 때 언급되는 듯하다.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같은 옛 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통을 이기는 것이 반드시 가치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지만, 쉽게 얻어지는 즐거움에 익숙해져 버린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에게 성공을 그야말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점차 성공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과 정도를 늘려간다면 아이들은 즐거움을 미루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 즐겁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핵심은 성공 경험을 직접 갖게 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삶이 주는 고통과 즐거움을 맛보는 순서를 정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먼저 고통을 맞고 겪고 극복함으로써 즐거움은 배가된다. 이것이 품위 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삶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일을 크게 나눈 다면, ‘시작이 즐겁고 끝이 괴로운 일’과 ‘시작이 괴롭지만 끝은 즐거운 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를 예로 들면 늦잠을 자거나 과식을 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에게 시작과 동시에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순간의 충동을 자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여 우리를 괴롭게 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 행위를 시작하기까지 원초적 본능을 스스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움을 주지만 끝에는 충만한 즐거움을 준다. 그 예로는 운동이나 독서가 있다. 시작할 때의 즐거움은 찰나지만 보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오래 지속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스스로의 본능을 억제하며 얻은 성취는 우리의 자아를 건강하게 확장시켜 주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아이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부모는 아이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훈육해야 할 미묘한 순간도 알아차리고 애정과 배려로 부드럽게 타이르거나 야단치거나 방법을 알려주거나 칭찬한다.
참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진정으로 시간을 써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두 세 문장의 시를 쓸 때도 반드시 시간을 들여 단어 하나 운율 하나에도 정성을 쏟아야 하듯 상대의 성장을 바라며 사랑하기 위해서도 그만큼의 질 좋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교육에도 적용 가능한 이치인 듯하다. 예로 자기 안과 밖의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학생을 대할 때는 교육자의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관찰은 곧 애정 어린 시간의 투자이며 이를 통해 학생의 미묘한 말과 행동에 따라 적절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느낌은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성격을 가지고 있을 텐데, 교육자로서 우리가 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대목을 읽으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그다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항상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셨던 부모님에게서 자란 나는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절제를 통해 스스로를 돌볼 줄 안다. 이런 내게 무절제한 태도로 살아가는 학생은 늘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고 그래서 나와 아이 모두가 괴로웠다.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가 나를,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개선할 방법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 아이를 괴롭게 한 것이다. 결국 학생이 성장하기 위해서 자기를 절제하는 습관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교육자는 이런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때 교육자는 ‘가정에서의 발달단계 과업 달성 실패와 그로 인한 낮은 자존감은 내가 도울 수 없는 영역이다’라는 태도를 버리고, 교육 전문가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성장을 돕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학생의 자발적 성장을 돕는 방법들 중 ‘모델링’이 있다. 아이들에게 목표가 되는 능력을 발휘하여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의 사례를 보여주게 되면, 학생들로 하여금 자발적 동기를 증진시켜 성취에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모델이 된다면, 혹은 그러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의 사례를 보여준다면 가정에서 절제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성공한 경영자에 정신과 의사로서 가족을 부양해 왔을지라도 나는 스스로를 기계치라고 생각했다. 유전적으로 무언가 부족하거나 천성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기계를 다루는 데 필요한 어떤 신비스러운 재주를 타고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것은 내 선택이었지 내가 저주를 받은 것도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또한 이제 나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결함 없는 어떤 이도 기꺼이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무슨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비슷한 대목이었다. 나는 평생을 내가 유전적으로 몸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 모든 종목의 운동을 잘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했는데, 첫 강습 만에 물에 뜨더니 두 번째 수업에서는 자유형 흉내를 내기 시작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자유형과 배영을 하게 되어 중급반으로 승급해 버렸다. 이제 나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수영을 다니고, 스스로 몸치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 또 다른 운동에 도전할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시간들이기’의 힘을 내가 가르칠 학생들에게도 알려준다면 그들에게 좋은 사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해야만 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와 같은 표현을 심하게 사용한다. 이는 자신은 선택권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자기 행동은 전적으로 자기 능력 밖에 있는 외부의 힘에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항상 그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나 존재에 떠넘기려고 한다.
교육심리를 공부하며 사람이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충동을 외부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자아상을 보호하고 불안을 줄이고자 사용하는 방어기제로 ‘투사’를 배운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채 학교에 온 아이가 선생님께 ‘밤늦게 까지 축구를 보는 가족들 소리가 시끄러워서’ 숙제를 못했다는 변명을 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외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투사의 사례가 될 것이다. 학생이 이와 같은 방어기제를 보일 때 교육자는 아이의 이런 태도를 ‘변명’으로 치부하여 다그치기보다는 학생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 양상에 애정 어린 관심을 쏟아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다수 환자가 겪는 이러한 ‘무력감’의 뿌리에는 자유의 고통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완전히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부분적으로 완전히 자신의 문제와 삶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패배감이 깔려 있다. 사실 자신의 권한을 버렸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치유가 되려면, 그들은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고립청년들의 근본적 원인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가장 크게 느꼈던 변화는 무수한 선택의 자유였는데,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은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교육자로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동시에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만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저히 정직하려고 애쓰고, 그러는 한편 필요할 때는 진실을 모두 밝히지 않는 능력도 갖춰야만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동시에 진실로 우리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정돈이 잘 되고 효율적인, 현명한 삶을 위해서는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쁘게 살려면 파괴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 현재에 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진정한 어른이란 중용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말씀이었는데, 이 대목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어른은 때에 따라 정직하려고 애쓰기도, 또는 진실을 어느 정도 감출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일은 과감히 거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미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하면서도 기쁨을 위해 현재에 살며 즉흥적인 행동도 즐길 줄 아는 것이 어른인 것이다. 성인이자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사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똑같은 문제가 기업체의 회장이나 의사, 선생, 부모가 되는 데에도 내포돼 있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가장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란, 자기 결정에 따르는 최대한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도 있으면서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한 사람을 판단하는 위대성의 척도-아마도 최고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은 또한 기쁨에 넘친다. 이것은 그러므로 모순이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책에서 언급된 의사나 선생과 같은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지닌 이들에게는 선택이 다른 경우보다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들이 내린 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선생의 경우 어린 시절 가난을 수치스럽게 느끼게 한 교사의 언행으로 키우게 된 사회적 적개심을 연쇄살인이라는 행위로 해소한 범죄자나 교사의 애정 어린 관심으로 따돌림의 경험을 이겨내 그 또한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이의 사례들은 선생의 매 순간 결정이 지닌 사회적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권추락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에도 많은 이들이 교사 또는 다른 형태로의 교육자를 꿈꾸는 이유는 이런 결정을 내리는 순간들과 고통을 감수하는 경험들이 그들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Ⅲ 사랑
그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융통성 있는 대응 체계를 발달시킬 수가 없었다. 적절한 때에 주지 않는 것이 적절치 않은 때에 주는 것보다 더 인정을 베푸는 것이라는 점을 배워야 했다. 또한 스스로 돌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돌보기보다는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사실도 배워야 했다.
사랑이란 상대의 영적 성장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자가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조력해 주는 것에 도움을 그쳐야 한다. 간혹 사랑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보상이나 도움을 무분별하게 제공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교육학적으로도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저하할 뿐 아니라 책에서 말해진 바와 같이 독립심을 기를 기회를 뺏는 것일 수 있다. 교육자는 늘 학생으로부터 한 발치 멀어져 적절한 때에 도움을 제공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특별한 점을 이해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기꺼이 당신 말에 순종하고 당신이 그들을 대한 것과 같은 존경을 돌려줄 것이다. 당신의 가르침이 그들의 특성에 적합한 것이면 아이들은 더욱 당신의 가르침을 열망하게 된다.
학생의 성격적 특성이나 가정배경 등과 같은 전반적인 사항들을 알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마치 엄청나게 복잡한 기계를 조립하기 전 설명서를 차분히 읽으며 부품의 위치와 기능을 익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학생과 교육자 사이에도 give and take가 확실히 이루어져야만 두 사람 모두 성공적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 교육자는 우선 학생을 면밀히 파악하여 그의 요구와 필요를 정확히 알고 특성에 적합한 가르침을 제공해야 한다.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진심으로 듣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육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두는 것을 말한다.
학생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말과 같이 학생이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놓았을 때 교육자는 모든 편견을 제쳐두고 진심을 다해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당사자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충고하는 건 기껏해야 시간낭비인 데다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말을 잘 알아듣게 하고 싶으면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듣는 사람이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말해야 한다.
교육자로서 학생에게 충고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저자의 말과 같이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거나 실행 가능하지 않은 범위의 일을 강요한다면 적개심만 커질 뿐이다. 이 또한 평소 애정 어린 교육자의 관찰을 바탕으로 학생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Ⅴ 엔트로피, 게으름 그리고 원죄
게으름이란 단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따른 두려움, 현재의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새로운 정보를 수용한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그들의 지도를 개정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일을 싫어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항해 싸우는 경향이 있다. 이 저항은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지만, 그 밑바닥에는 분명 게으름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서의 두려움이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라는 저자의 말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등장했을 때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기술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이런 빠른 변화들이 때론 나를 숨차게 만든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로운 정보는 즉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늘 익숙한 것에만 이끌리는 본능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흐르지 않으면 고여 썩어버리는 것이 만물의 이치기에 나와 나로 인한 교육의 발전을 위해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