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 최진영

by 영주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읽는 내내 먼지 냄새, 피비린내, 곰팡내같이 불행으로 상징되는 오만가지 지독한 냄새들이 풍기는 것 같아 울렁거렸다. 끝에는 맡아본 적도 없는 시체 썩어가는 냄새가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아무리 처절해도 웬만하면 인물들의 사랑이 부럽기 망정인데 구와 담의 것은 전혀 느껴보고 싶지가 않았다.


양육자의 부재, 가난, 빚쟁이의 독촉.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과 장치가 진부한데 하나가 다르다. 죽은 연인의 시체를 먹는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죽어있는 몸을 집으로 데려와 손과 발, 머리카락, 성기까지 정성스레 씹어 삼킨다. 이 파격적인 장치를 이해해 보느라 애를 썼다.


담은 구의 시체를 왜 하필이면 먹었을까. 왜 먹음으로써 사랑하는 구의 죽음을 애도했을까. 왜 시체 먹음이 담이 선택한 장례의식이었을까.


눈살이 찌푸려지는 담의 결정에는 타인의 이해가 요구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누구의 사랑 에피소드도 당사자가 아닌 이가 듣기에는 거북하게 들릴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만의 사랑을 함부로 판단해 말을 얹어서는 안 된다.


성숙한 사람은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 성숙하고 싶지 않다. 나의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 구의 증명


골목길에서 마주친 순간 본능처럼 서로의 그늘을 알아차린 구와 담은 분리되어 있던 각자의 그림자를 포개어 더 칠흑 같은 어두움을 만들고 마침내 한 몸이 되었다. 노마의 죽음과 구의 회피로 서로 얼마간 떨어져 있을 때에도 둘은 함께였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구의 증명


한 몸이었던 구가 죽었다. 길바닥에 죽어 있는 구의 몸을 끌어안고, 전화 부스에서 이어진 서른 걸음의 의지를 떠올리며 담은 더 이상 사람이길 원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무력하게 떠안은 부모의 빚을 갚아보겠다고 바둥대는 이를 사창가로, 섬으로 팔아보내는 사회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사람이길 포기해 구의 시체를 뜯어먹음으로써 그의 존재를 증명하겠다 작심한 것이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 구의 증명


잠이 오지 않는다던 담이를 위해 구가 들려준 소니 빈 이야기처럼, 평생 캄캄한 동굴이 제 세계인 줄 알고 살던 구와 담에게 죽은 연인의 시체를 먹어버리는 건 별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가장 최적의 장례의식일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으레 그러하듯, 평범하게 살다 가는 남들처럼 불에 태우고 산에 묻는다면 구가 살았었다는 사실을 알릴 방도가 없다. 깊은 산골 청설모처럼 도망 다니던 작고 마른 구가 정말로 있었다고 알리려면 그 몸을 씹어 삼켜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나를 먹을 거라는 그 말이 전혀 끔찍하게 들리지 않았다. - 구의 증명


그럴듯한 이유들로 담의 선택을 변호하고는 싶지만 분명 더 나은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직업병 때문인지 구와 담 곁에 더 나은 어른이 있었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어찌 됐든 어린 구와 담의 사랑은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어린 어른들의 그것보다는 두텁고 견고하다. 담의 말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그래도 담이 무사히 장례의식을 마치고 구를 이제 그만 기다렸으면 좋겠다.


심지어 구와 함께 있을 때에도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고, 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가 죽어버린 지금도 나는 구를 기다리고 있다.
구도 나와 같을까. - 구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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