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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1.

엄마는 손해 보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연필 세 자루로 손톱만 한 유리병 모형을 바꿔온 날 엄마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매를 내리쳤다. 어디서든 네 몫은 네가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무시당하지 않고 산다고 평생을 가르쳤지만 영악한 어른으로 키우려던 엄마의 계획은 실패했다. 기꺼이 손해 보는 삶은 내게 더 큰 몫을 남겨두게 한다. 정해진 총량에서 남들보다 덜 가지고 더 책임지는 것을 습관 삼아 지내면 예상 못 한 순간에 의외의 이득을 얻게 했고, 그렇게 되리라 믿고 산다. 카르마의 법칙이라던가 대가를 바라는 오염된 선의는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것보다 선뜻 손해 보며 마음 편히 사는 게 내 행복에 보탬이 되는 것 같아 그런다고 해두자.


2.

취향은 모두의 몫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떠주는 짧은 영상들을 초점 없이 넘겨 보는 시간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려면 그만큼의 여가 시간이 보장된 직업과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익이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커피나 티백으로 순식간에 타서 마시는 것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드립 커피나 여러 과정이 필요한 잎차로 바꾸려면 카페인이 생존품이 아닐 정도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야 한다. 하물며 사유하기 위해서도 방음 잘 되는 집과 언제든 산책할 만큼 안전한 동네, 온갖 잡념들 속에서 내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 볼 공백이 필요하다.


Ref. 영화 소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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