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II27_어떤 엄마, W

그 흔하고 낯선 길을 걸어간

by 일랑






임신 8개월로 접어들면서 휴직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출산준비는 나에게 그저 새로운 세상이었다. 혼자 배불러 다니던 회사에서와는 다르게 수십 명의 예비엄마들이 같은 바람과 관심사를 가지고 산부인과에서 제공하는 산모교실로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처음 겪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한 아이를 만날 기대로 가득 찬 얼굴들.


나를 포함한 수십 명의 임산부들이
같은 도착지를 향한 기차에
앉아 있는 기분은
실로 낯설면서도
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했다.



임신이라는 너무도 흔하지만 낯선 과정은 나에게 있어 배울 것 투성이었다. 매 단계 이상 없이 통과해야 할, 생전 처음 듣는 테스트들도 많았고 출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신 30주쯤, 처음에 다니던 병원에서 옮겨 새롭게 정착하게 된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듯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배너를 보게 되었다. 보통 수중분만 정도로 알려진,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한 지극히 자연적인 방법의 출산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관장과 제모, 내진과 회음부 절개를 피할 수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자연적인 방법으로 만나는 아이라는 매력에 끌려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게 되었다. 두개골을 접어가며 좁은 골반을 통과하느라 엄마보다 몇 배는 힘들다는 아기의 고통을 무통주사로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쉽지 않을 그 긴 시간을 남편과 함께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렇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괜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 정기적으로 다니던 임산부 요가반에는 나와 같이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던 한 산모가 있었다. 나보다는 주수가 조금 빨라 언제나 한 단계씩 빨리 출산의 단계를 밟아가던 W는 의학이 정의하는 ‘노산’에 해당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야무지고 용감한 눈빛을 한 예비엄마였다. 어느 주말, 남편과 함께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는 부부들을 위한 사전 교육에 참석했는데 교육을 진행하던 조산사가 지금 진통 중인 한 자연주의 출산 산모를 언급했다. 곧바로 ‘혹시?’ 하는 생각이 스쳤다. W의 출산 예정일이 그즈음이었기 때문이다. 양수가 터져 입원했지만 아직 진통은 없어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며 자연적으로 진행되는 자연주의 출산의 장점을 강조하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W 부부와 마주쳤다.


“저 오늘 입원했어요.”



힘내라는 말 밖에 건넬 수 없던 그 찰나에 그녀 눈에 비친 기대감을 나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를 뒤로하고 산부인과를 나서는 내 마음이 덩달아 싱숭생숭했지만, 몇 시간 후면 아기를 만날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사흘 후 참석한 산모 요가교실에서 들은 그녀의 근황이 의외였다. 이제 막 진통의 마지막 단계로 드디어 접어들었다는 거다. 사흘을 꼬박 병원에 있었다니, 자연주의 출산이 아닌 경우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은 촉진제를 놓아서 진행을 빠르게 한다.) W와 아기의 안녕도 걱정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겪어야 할 난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음날, 또 다른 수업으로 들른 병원에서 수유를 하러 가는 그녀와 마주쳤다. 사흘을 진통해서 출산한 산모 치고 낯빛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오래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축하를 건네자 요가 수업에서 배운 자세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걱정 많을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그렇게 큰 숙제를 해낸 그녀는 수유 콜을 받았다며 아기를 만나러 총총 사라졌다. 조리원 생활을 시작한 W가 며칠 전 자신의 길었던 출산기를 산모들 앞에서 공유하기 위해 임산부 요가반에 방문했다. 다가올 그 날을 앞둔 예비 엄마들 앞에서 그녀는, 양수가 새서 일찍 입원했고 정작 진통이 걸리자 아기가 횡아(옆으로 누운 상태로 출산이 불가능)였다고 했다. 조산사의 도움으로 아기 머리를 아래로 돌리는 데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하늘 보는 아기’ (반대쪽인 땅을 보아야 출산이 가능)여서 또 출산이 지연되었단다. 그렇게 40시간이 넘게 병원에 머무르며 포기하지 않고 아기의 자세를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 자연주의 출산에 성공했단다. 진통이 한참 진행되던 중에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후회도 되었다며 또 다른 자연주의 출산 대기자인 내 쪽을 보고 살짝 웃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는 듯, 너무 걱정 말라는 듯 말이다.


“어디에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하는지도
그때가 되면 알겠더라고요.
다 할 수 있더라고요.
우린 엄마니까요.”



며칠 새 선배 엄마가 되어 출산을 겪은 엄마만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그래, 엄마니까 할 수 있는 거다. 겁도 많고 엄살도 많은 내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를 제발 진통의 순간마다 기억해 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다가오는 아기의 생일을 남편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을 피하지 않는 용감한 엄마가 되어.







이제 조리원에서도 나와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했을 W에게 이렇게나마 존경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본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을 닮은 아기는 분명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녀의 용감함을 배우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산통을 겪고 있을 모든 엄마들과 아기들에게 부디 축복과 행운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