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음 뒤에 숨은
처음 V를 본건 한국이 아니었지만
내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그를 한국인이라 확신했었다
심지어 먼저 다가와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봤으니 나에게는 확신을 넘어 기정사실이었다. '한국말을 안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외국에 오래 산 교포인가 보다'며 나름의 가설도 세웠더랬다. 그래서 나중에 V가 자신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때에도 한동안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무던히도 한국인처럼 생긴 홍콩계 사람이었다.
V는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무표정한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목소리도 엄청난 저음이어서 굉장히 진지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밑도 끝도 없이 개구진 친구다. 약 오르는 말을 툭툭 던지기도 하고 매사에 시니컬한 비평도 서슴지 않는다. 나보다 다섯 살 위였기 때문에 당시 내 기준에는 꽤나 많은 나이였지만 성인 남자가 이렇게 유치하고 짓궂은 게 가능한지 궁금할 정도로 그는 의외의 면을 가지고 있다.
V는 나에게 뜬금없이 한국 여자들을 싫어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던지 "한국 여자들도 너 싫대"로 응수해봤지만 깊이 없이 오가는 대화는 끝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왜 싫은지 물었다가 정말 반박 못할 치명적인 이유가 나올까 봐 조금 두려웠었다. 너무 치명적이어서 같은 한국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그에게 미안해질 이유라도 있는 거라면, 그냥 모르는 게 속편 할 것 같아 끝까지 정확히 묻지 않았다.
함께 하던 공부를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V는 그곳에 남았다. 그렇게 각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던 중 V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만날 시간이 되냐고. 어떤 여자 때문에 오는 거란다. 일이 잘 풀리면 며칠 머물겠고 아니면 바로 떠날 거라고 했다. 며칠 뒤 임시 번호로 연락이 온 그는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당장 만나고 싶어 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너무 먼 거리여서 나갈 수 없었다.
평소 답지 않은 흥분된 목소리로
그는 일이 잘 풀렸다고 했다
아마도 결혼 승낙을 받은 것이리라
몇 달 뒤 나는 서울에서 하는 그의 결혼식에 (알고 보니 통역관으로) 초대받았다. 결혼식에서 처음 본 V의 신부는 이국적인 눈매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 대충 들어온 그의 러브스토리에 의하면 둘은 대학 동창이었단다. V는 그녀를 좋아했지만 당시 다른 한국 남자 친구가 있었고 고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V의 마음속에 아쉬운 짝사랑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나에게 한국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던 그는 매번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학업을 마치고 V는 나와 함께 공부했던 도시에 남았고, 그가 있던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된 그녀가 연락해와 다시 재회하게 된 것이다.
본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어수선한 틈을 타 V와 오랜만에 눈을 마주쳤다. 내가 표정으로 무언의 타박을 주자 V가 씩 하고 웃는다. 당사자인 자신은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어로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아내를 배려하던 그는, 행복해 보였다. 지금껏 참석해왔던 결혼식들과 달리 V의 친구로서 자리를 메꾸는 내 어깨가 유난히 무거웠는데, 그의 뒤로 가득한 (통역이 필요한) 외국인 친구들 때문이었다. 처가를 한국에 둔 V는 한국을 자주 오간다. 덕분에 V의 식구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딸아이의 앙탈에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은 내게 조금 낯설었다.
이미 와이프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동창들 사이에서도 V의 변화는
놀라움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매년 우리가 공부하던 도시에서 열리는 학교 동문회에서였다. 나는 졸업 후 처음이었지만 비교적 가까이에 사는 친구들은 매년 참석하는 자리라고 했다. 동문회 다음날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사업을 꾸려가는 입장이었다. 모두 다른 나라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공통된 직장인의 고충을 공유하는 와중에 사장인 그만은 시각이 다른 것이 신기해서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V는 요즘도 가장 자주 연락 오는 외국 친구다. 문제는 자꾸만 나에게 프리선언을 종용한다는데 있다. 너같이 무서운 사장님에게 일 받아서 하는 거라면 사절이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은근슬쩍 도와달라고 던지는 일들을 거절하기도 매번 곤란하니 이제 제발,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내 허파에 바람 넣지 말기를.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약 올리면서도, 한국에 올 때면 늘 다른 친구가 아닌 나를 찾는 V를 싫어할 수 없다.
같이 공부하던 시절, 한 조가 되어 프로젝트를 하던 중, 한 번은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V가 나에게 물었다. 살면서 목숨의 위협이나 삶의 거대한 위기를 맞아본 적, 없지 않냐고.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온실 속에서 화초같이 곱게 살아오지 않았냐며. 반박할 수 없었다. 필리핀에서 온갖 위험과 재해에 위협받으며 살아온 그에 비하면 나는 부모님의 철저한 보호 아래 안전하게 자란 게 맞으니까. 표면적으로는 짓궂게 장난치지만 그 삶의 진정한 깊이까지 나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이룬 가정의 두 아이,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이제는 V가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