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기억을 선사해준 그녀
살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친구의 이름,
나에게는 그게 M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 나타난 전학생이었다. 전 학교에서 쓰던 교과서와 전학 온 학교의 것이 같지는 않았던지 남은 한 달 동안 짝꿍의 책을 함께 봤는데, 그게 바로 M이었다. 여느 꼬마들이 그렇듯, 급격히 친해진 우리는 그 짧은 한 달 동안 교환일기도 하고 방학에 같이 놀았던 것도 같다. 호기심 많고 순둥이 었던 M은 이후 내내 나와 반이 겹치지 않다가 (따라서 딱히 교류가 없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극적으로 한 반에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난 M은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었지만 중학생이 된 그녀는 가장 뒷줄에 앉을 정도로 키도 커져있었다. 바뀐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학교에서 금지하는 화장과 염색, 액세서리 등 때문에 선생님들의 주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순수함을 전제로
M의 모든 것을 판단했다
한 번은 같이 복도를 걷다 선생님에게 불러 세워진 그녀가 금지된 비비크림을 바르지 않았냐고 추궁받았다. M의 얼굴 여기저기를 닦아보고 꼬집어보다 결국 크게 꿀밤 한대를 놓고 선생님이 사라질 때까지 절대 아니라고 호소하던 그녀가 안쓰러워 가고 없는 선생님 뒤에서 '하지도 않은걸 가지고 우리를 괴롭힌다'며 역성을 들어주는데, M이 말했다. 사실은 발랐노라고.
그날 이후부터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교칙에 위반되는 귀걸이 구멍이 막히지 않게 샤프심을 넣던 모습과, 짧고 불편해 보이는 교복 치마와, 중학생과는 어울리지 않던 칼로 다듬은 눈썹이. 물론 이것이 곧 비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우리 반에는 소위 '일진'으로 불리던 학생들의 다수가 있었는데, 4개의 분단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율이 높았다. (자율적으로 앉으하고 하니 그렇게 되더라.) 그리고 M은 떡하니 그중 한 자리를 차리하고 앉았다. 평범하던 나와 그녀는 점점 어울리는 그룹이 달라져갔다.
그런 그들의 분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룹의 우두머리 격인 아이가 매사에 M에게 모질게 말하는가 하면, 가만히 서 있는 그녀를 어깨로 치고 지나간다 던 지 하며 괴롭히고 있었다. 30명이 겨우 넘는 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M은 내가 전학 와서 처음 만난 친구가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집에 있던 나는 M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건 정말 몇 년 만이었던 것 같다.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그녀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괴롭힘의 이유를 물어봐도 그녀는 말을 돌렸다.
하지만 명확한 설명 없이도
그녀가 힘들다는 것은
몇 년 만에 건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사실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단지 쉬는 시간에 함께 어울려 주었고 여느 여중생들이 하듯 학교 이곳저곳을 함께 다녀 주었다. 그녀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술렁였지만 최대한 동요하지 않는 척하며 그저 M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내가 정한 목표였다. 부당한 괴롭힘에 대항할 대단한 운동 정신은 내게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많이 무서웠더랬다. M을 괴롭히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편드는 내가 더 얄밉다는 듯이 꽤나 노골적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M이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가 어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원래부터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은 무리의 등쌀에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예상된 전개였을지 모른다. M을 감싸주겠다 마음먹었을 때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휩싸인 두려움은 내 직감에게 경고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딱 하나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몇 달 뒤 전학이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들의 마수가 닿지 않는 정말 먼 곳으로 말이다. 그러니 아마도 그건 내가 떠나기 전 M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 내 신조와 같이 준 선물에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기에 떠날 곳에 미련은 두지 않기로 했다.
M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녀도 어린 마음에
두려웠을 것이다
또래들은 어린 만큼
더 잔인하기도 하니까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가는 것은 그녀의 정신적 생존본능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드디어 학교에도 전학 소식이 알려졌다.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무리는 나에게 '오해'를 했다며 먼저 다가왔고 떠나기 전 마지막 주는 모두와 나누는 그저 아쉬움과 속 시원함이 뒤섞인 훈훈한 이별의 시간이었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당시 동네 친구들에게 혹시 M의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전교에서 1, 2등을 했다'라고 하니 어디에서 무얼 하던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그때, 괴롭힘이 나에게 우회했을 때, M도 나처럼 내 편이 되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서웠던 만큼 그녀의 두려움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던 그녀의 선택을 원망할지언정 미워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괴롭히던 그 아이들도 좀 단순해서 그렇지 근본이 악질은 아니었으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연약한
그 나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귀신에 홀린 듯
자기답지 못할 때니까
우리가 다니던 학교 이름에는 '원'자가 들어갔는데, M은 '원'자의 'ㅓ'를 'ㅜ'밑에 넣지 않고 위에 넣고는 했다. 왜 그렇게 쓰냐는 내 물음에 자기만 그렇게 써온걸 그때 처음 알았다던 그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지금은 틀리지 않고 잘 쓰는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한 오늘. 나는 그때처럼 믿을 구석도, 용기도 없지만 나름대로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