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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Dec 08. 2022

돈을 아끼게 해 준 녀석들

내 밥상을 책임져줘서 고마웠어

외국인 신분으로서 타지에 사는 것은 매일이 절약 같은 삶으로 이뤄진다.

물론 돈을 버는 대로 쓸 수는 있지만 나에겐 더 큰 목표가 있었기에 절약정신으로 매일 승부를 봐야 했다.

렌트, 휴대폰, 교통비는 어찌 됐든 나가는 비용이기에 옷, 액세서리 구매를 줄이고 식비 계획을 잘 짰어야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재료들을 정해야 했다.


계란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 삶은 달걀, 오믈렛, 계란말이, 계란찜 가지각색으로 변신하는 이 녀석은 30년 넘게 내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질감과 맛이 달라 식비를 아끼는데 가장 도움을 준 녀석이다. 면, 밥, 빵과 다 잘 어우러지는 계란 요리는 영양, 맛, 식감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음식 재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조화롭게 자기 역할을 잘하고 요리를 돋보이게 서포트를 하며 전체를 볼 줄 아는 계란을 택했을 것이다.


아보카도

한국에 있으면 집에서는 잘 먹지는 않게 되지만 토론토 마트에 가면 꼭 사 오는 아보카도.

고급스러운 이름 때문인지 건강한 이미지 때문인지 아보카도를 토스트를 만들어 먹을 때는 웬만한 브런치 집이 부럽지 않다. 어른이 된 느낌이며 수고한 나에게 맛있는 아침을 선물하는 기쁨을 준다.

아보카도와 바나나 또는 각종 과일들을 넣어 믹서기에 갈면 목 넘김이 부드러운 스무디가 되는데 밖에서 사 먹으면 7천 원이 넘을 이 음료를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돈을 아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다.

뿌듯함과 기쁨을 주는 이 녀석은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어른임을 느끼게 해 준다.


바나나

바나나에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을 생성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이 포함되어 있어 행복감 향상과 우울증 예방에 효과적임을 알고 있는가?

먹을 때마다 향긋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 이 노란 녀석을 사랑한다.

초록 녀석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숙이 되어 노랑이들로 변할 때 달콤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내 마음도 괜히 설렌다.

노랑녀석은 요거트와 시리얼과도 잘 어울리고 오트밀과 견과류와도 잘 어울린다.

시간이 더 지나 후숙 되어 갈색으로 변했을 때는 바나나 빵을 만들거나 아몬드 우유를 섞어 스무디로 만들어 먹으면 설탕과 꿀 없이도 꿀맛이다.

이 녀석은 할머니가 됐을 때도 여전히 사랑할 것 같다.


마늘, 양파, 청양고추

한국사람이면 요리에 마늘과 양파 그리고 청양고추가 들어가면 웬만하면 좋아한다.

토론토에 왔을 때 한국 음식이 비싸 직접 만들어 먹었어야 했다.

요리 1도 모르는 내가 음식재료들을 넣고 올리브유에 볶아 마늘과 양파 청양 고추를 넣으면 거의 성공적이었다. 토론토에서 지내는 6년 동안 나는 모든 음식에 이 녀석들을 불러들였다. 형편없던 요리실력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서 고마워.


양배추

엄마 밥이 그리울 때 양배추를 삶아서 밥이랑 양념장이랑 쌈을 싸서 먹는다.

양배추 삶았을 때의 향긋한 향과 부드러우면서 아삭한 식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씹을 때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양배추를 채로 썰어 계란물과 섞어 만든 양배추 전은 돈 없는 자취생에게 훌륭한 요리가 된다.

냉동 돈가스를 먹을 때 양배추 샐러드와 케요네이즈를 곁들이면 초등학생 때의 나로 돌아간다.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녀석이어서 그런지 냉장고 안방에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부와 유부

일에 바빠서 요리를 할 시간이 마땅치 않을 때 한국 마트로 달려가 두부와 김치 그리고 유부를 사서 온다.

만들기 간단한 유부초밥은 한때 나의 주 도시락 재료였다.

새콤한 맛이 더해 입맛을 돋워줘 한입 오물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도시락은 비워졌다.

두부를 썰어 프라이팬에 굽기도 하고 겉에 바삭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면 올리브유를 겉면에 입혀 에어 프라이기에 넣는다. 양념장을 만들어 찍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두부 김치는 치킨 콜라 못지않은 궁합을 보여줘 두부를 먹을 때 김치가 빠지면 섭섭하다.


조미김

한국에선 잘 먹지 않았던 조미김이 토론토에서는 그렇게 찾는다. 외국인들에게는 조미김은 주식으로 먹기보다는 간식 개념이다. 직장동료는 김을 들고 와 간식으로 자주 먹는다.

한국보다는 값이 비싸서 김이 특별한 간식처럼 내게도 인식되었다. 짭짤한 이 녀석은 간식으로도 맛있지만 갓 지은 밥이랑 김치랑 먹었을 때가 나의 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토론토 음식의 밍밍한 간에 물릴 때쯤 이 녀석과 김치와 나트륨 파티를 열고나면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사과

사과로 알아주는 거창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 집 사과를 양껏 먹었다. 모든 사과는 할머니 집 사과처럼 크고 예쁜 줄 알았다. 항상 우리 집 앞 베란다에 있어서 사과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했다. 토론토 마트에 파는 사과는 할머니 집 사과의 반만 한 크기에 맛은 반의 반도 따라오지 못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면 있었던 사과여서 귀중했고 당연했던 그때가 그립다.

사과를 먹고 자라서 그런지 타지에서도 내 몸은 다른 과일은 자주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사과는 매일 먹고 싶었다. 새콤하면서 달콤한 사과만의 향이 마음을 채워줬고 입맛을 돋워줬다.


시리얼과 초콜릿

식비를 아끼겠다는 마음으로 샀으나 중독되어 한 봉지를 거의 이틀 만에 다 먹기도 했던 애증의 관계 시리얼과 초콜릿.

시리얼로 내가 바삭한 식감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식증을 겪을 때는 찬장 안에 있는 시리얼이 나를 계속 불러 반봉지를 그 자리에서 다 먹을 정도로 시리얼을 좋아했다. 사람이 적응의 동물인지라 처해있는 환경과 문화에 따라먹는 음식과 생각이 달라지는데 한국에서는 손대지도 않았던 시리얼을 캐나다 와서 좋아하게 된 거 보면 환경과 문화가 사람의 식생활을 바꿔놓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만두, 김말이

한국 마트에 갈 때마다 비비고 상품들이 나를 유혹한다.

비비고 상품들은 캐네디언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냉동식품이지만 쪄먹거나 에어 프라이기에 넣으면 맛과 향 모두 군침을 돌게 만드는 요리가 된다.

비비고 만두는 캐나다에서 먹으면 '역시 비비고야'라며 더 큰 감동을 준다.

이 녀석들을 떡볶이 국물에 자주 찍어먹곤 하는데 만원이 넘는 떡볶이 값을 아끼는 동시에 마음껏 먹고 싶을 때는 재료를 사 와서 떡, 어묵, 만두, 김말이를 양껏 만들어 열심히 찍어먹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많은 방법을 연구했고 시도했다. 폭식증을 겪으면서 무너질 때가 많았지만 위에 리스트 된 녀석들은 토론토에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 몸속으로 꾸준히 들어가고 있는 녀석들이다.

토론토에 처음 왔을 때는 외국인 신분으로서 식비를 아껴야 했다면 지금은 경제 침체로 아껴야 할 시기다. 그렇다고 맨밥만 먹으며 살 수 없기에 내 몸에게 끊임없이 물어서 합의를 내린 결정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근사한 레스토랑 가서 분위기를 내지만 나머지 6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해 먹기 귀찮아 사 먹을까 하는 유혹이 하루에 몇십 번이나 찾아왔지만 일주일에 6만 원 한 달이면 25만 원 돈을 절약해 투자를 할 수 있었기에 위의 녀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내 입맛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내 식비 절약을 계속 부탁할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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