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텍스트로만 접하던 판소리와 탈춤이 혼합된 장르가 펼쳐진다
판소리와 탈춤, 다소 경직된 장르와 활발한 장르의 혼합이다. 멀리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면 결국 두 장르 모두 우리의 옛 전통적인 공연예술에 해당하지만, 엄연히 다른 예술이며 느낌도 참 다르다.
먼저, 판소리는 보편적으로 우리겐 판소리 소설로 익숙하다. 직접 판소리를 듣는 경험은 굉장히 희소하기에 우리는 교과과정을 통해 「심청전」, 「토끼전」, 「춘향전」과 같은 대표작품으로 판소리의 내용을 인지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전래동화의 형식으로 굉장히 자주 접해 왔던 이야기지만, 위의 세 작품은 판소리 다섯 마당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그 근원을 판소리에 두고 있기에 판소리 소설이라고 불린다. 실제 판소리는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기보단 그보다 낮은 범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의 고난과 고통을 그려내고 동정하며 때론 인간적인 모자람 드러내면서 당시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탈춤은 훨씬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진다. 삼국시대의 국가 연희에 탈을 쓰고 춤을 췄다는 기록이 존재하기에 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다룬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탈춤은 보편적으로 ‘안동 하회마을’ 같은 관광 장소 혹은 그곳에서 펼쳐지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 정도로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탈춤의 특징은 가면 뒤의 배우라는 익명의 성격 때문에 판소리보다는 해학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 소설이니, 탈춤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모두 국문과 전공으로 한 번쯤은 듣고 시험을 치렀던 소재이기 때문이다. 때론 딱딱한 고전 텍스트를 읽으며 답답하기도 하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프리뷰를 작성할 때 미처 날아가지 않은 작은 기억을 찾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결과적으로 판소리와 탈춤은 직접 접하고 감상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이다. 특히 판소리는 전승자의 부재로 전통적인 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탈춤 또한 특수한 장소가 아닌 이상 실제 탈춤을 감상하기 어렵다. 더불어, 우리가 이제껏 공부해온 교육과정에서 판소리계 소설, 탈춤의 텍스트는 ‘흥미’보다는 ‘풀이와 해석’의 영역에 가까웠기에, 그것들이 주는 선입견 또한 딱딱하기만 하다.
이런 보기만 해도 딱딱한 우리 전통적 장르에 대해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은 유사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가진 장르를 혼합하고 보다 해학적으로 텍스트에 접근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바꿀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익살스러운 모습은 그것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통해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시놉시스
춘향의 판. 깽판전문 광대거지들이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아맹거사로 자칭한, 거지 중에 상거지 몽룡이 수절을 지키려던 춘향 앞에 나타나 사랑구걸 대신 밥구걸을 하고, 이에 당황한 춘향은 곡절이나 들어보자고 광대거지들을 다그친다. 몽룡이와 광대거지들이 풀어놓는 딴소리 판이 펼쳐진다.
심청의 판.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한 광대거지들이 잔치에 몰려들어 숟가락을 얹는다. 장님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황후와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거지들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는다. 눈뜬 봉사들이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광대거지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적벽의 판.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한 조조의 군사 앞에 며칠을 굶은 광대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조조군이 된 광대거지들은 적장인 제갈공명을 만나게 되고, 대의와 명분을 부르짖는 상대에게 거지들의 엉망진법을 한 수 가르쳐준다.
수궁의 판.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 모인 광대거지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 이에 불만을 가진 거지떼들이 앙심을 품는데... 마침, 술병으로 간이 상한 용왕의 상태를 살피는 자라를 꾀어내어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흥보의 판. 대박을 꿈꾸며 박을 타던 흥보 앞에 나타난 광대거지들.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고, 듣기만 한다는 말에 흥보는 망연자실해진다.
다시 춘향의 판. 거지떼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해후를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광대거지들은 역시 제가 갈 길로 향한다.
시놉시스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판소리 다섯 마당을 다룬다는 점이다. 나아가 한 명의 소리꾼과 고수로 이어지는 딱딱한 판소리 판에 ‘광대’라는 탈춤의 요소를 삽입해 더욱 해학적인 모습을 그려낼 것이라 예상된다. 아마 판소리의 고수를 통해 전문가적인 모습을 부여해 전통적인 긴장감을 불어넣고 그에 대한 해소로 탈을 쓴 광대들이 출연해 재미와 해학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딱딱하기만 느껴지던 판소리와 탈춤을 이렇게 흥미로운 장르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은 정말 기대가 되는 공연이다. 특히나 딱딱한 텍스트로만 접해오던 판소리 다섯 마당을 실제 소리꾼의 목소리로 접할 수 있다는 부분 또한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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