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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Dec 13. 2023

어린 밤

저물어가는 것들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매일 무언가와헤어짐을 준비하고 고하는 일 같다. 과거를 과거로만 남겨둘 수 없었던 날들은 꽤 자주 있었다. 다가올 내일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을 다시 과거로 만든 일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오랜 습관 덕에 입버릇도 늘었다. 나는 자주 후회했고 아쉬워했다. 미련 속에서 오래 뒤척이다 스물아홉 번째 겨울이 되어서야 떠나간것들을 그리 오래 품지 않고자 노력했다.


익숙하게 내 옆에서 자리를 하고 있는 것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 그 자리에 있음이 너무나 당연해서 떠올림에 있어 중간중간 그것들을 빼먹을 수도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나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그것만은 확신한다. 단단한 확신 속에서 나는 언젠가 그것들과의 헤어짐에 있어 내가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 옆을 채우던 것들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고 밀려나고 그러다 서서히 그 모습이 옅어져 간다.


가장 감정적이고 그래서 늘 마음이 괴로웠던 이십 대를 떠올린다. 쉽게 슬퍼했고 쉽게 슬퍼한 만큼 행복도 쉬웠다. 내 곁에 오래 머물던 몇 명은 이제는 그 흔적을간신히 알아볼 만큼의 크기로 남아 있다. 한 번은 여전히 그들이 내 곁을 채우고 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빠르게 젓는다. 내 삶에서 그들을 덜어내고자 결심한 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내 삶에 안정적으로 들어차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있겠지만, 그 모습은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 내 삶을 채우던 것들을 나는 이제 어렴풋하게만 기억할 뿐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삼십 대의 끝,사십 대가 된다면 지금 이 순간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짐작을 해볼 뿐이겠지. 열아홉에는 스물이 된다는 생각에 그저 정신이 없었다. 아마 신났을 것이고, 세상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십 대의 키워드에 맞춰 살아가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나의 이십 대는 전체적인 틀에서 본다면 학습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보내왔던 것 같다.

그 틀에 맞춰서 내 삶은 이루어졌고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스물이 그랬고, 이십 대가 그랬다. 세상은 큰 틀을 보여주고서 누가 틀리고 누가 옳은지 보여주곤 했다. 사실 틀리고 옳은 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옳고 싶었다. 그런 이십 대를 보낸 것같다.


다가올 서른에 나는 세상이 부여한 큰 틀을 아마 채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는 부합할 수 있어도 완벽하게 그 틀에 맞춰서 살아갈 순 없을 것 같다.누구의 삶이 맞고 틀리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는다. 그저 이제는 내 삶을 채우는 것들이 시간이 흘러도 단단하게 내 삶을 채우길 바랄 뿐이다. 매일이 이별의 순간이지만, 그 이별의 순간 마저에도 내 삶을 채우는 것들은 제법 단단해서 나의 오랜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여전히 나는 나의 서른에 무엇을 채우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고 채워나가겠지만, 이 모든 것들은 지나고나야 알 수 있겠지. 저물어가는 스물아홉 끝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만큼. 어떻게든 다가올 나의 서른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올 겨울을 유독 닮았다. 계절의 흔들림 속에서 느끼는 불안은 올해뿐이었으면 한다.


언젠가 내 삶을 채우던 계절은 안정된 모습으로 본연의 것을 지켜내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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