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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성 Alchemic Oct 30. 2015

모두에게 필수적인 실패의 기술

실패의 한살이를 마치게 하라

제가 그간 길 위를 걸어오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을 꼽으라면,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그 실패 속에 고요히 머무는 법을 배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대개 실패 이후에는 신속하게 논리적인 원인 분석에 몰두하거나, 실패를 만회할 효과적인 계획 설계에 매진하기가 쉽습니다. 또는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 돌려버리고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시도들은 정확히 말하면 실패에 수반되는 다양한 정서들(자책, 실망, 분노, 좌절감 등)을 느끼지 않기 위한 회피 기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실패를 온전히 직면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라는 것입니다. 


실패를 직면하고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실패의 논리적 측면들뿐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들까지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통념과 달리, 실패가 주는 쓴맛은 실패라는 일련의 경험을 온전하게 완성시켜주는 화룡점정과 같다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이 한살이를 온전히 마치려면 일련의 필수적인 절차들을 거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는 낙엽을 떨구고 겨울을 맞아야만 봄에 새싹을 틔울 수 있고, 꽃은 화려한 생을 마치고 시들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기꺼이 죽어야, 생생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실패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를 거부하거나 적대하지 않고 그 쓴맛 속에서 고요히 머무르며 부드럽게 눈맞춰 줄 때, 비로소 실패는 여한을 남기지 않고 우리 품 안에서 평온히 눈을 감아 자신의 한살이를 마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었을 때만이 실패는 통찰과 성장이란 열매를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실패의 후유증이 너무 오래 가거나,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면 우리가 실패의 한살이를, 실패의 죽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꽃이요, 지혜와 통찰은 그 꽃이 지며 낳는 과실입니다. 


낙화의 쓴맛 속에 고요히 머무를 수만 있다면, 실패는 우리 삶에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문득 금강경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장엄은 이름 붙이기를 장엄이라 한 것이지 진정 장엄이라 할 것이 없다.  여래는 이름 붙이기를 여래라 할뿐 진정 여래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거기에 감히 덧붙이면 이렇게 되겠네요. 


"실패와 그 아픔은 이름 붙이기를 실패와 아픔이라 할뿐, 진정 실패와 아픔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실패로부터 자유로운 삶은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삶입니다.



항상 애씀 없는 행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Alchemic Linguist-



#연금술 #납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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