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티 플레저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매년 지역 양수발전소 주도로 관내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골든 벨 퀴즈대회가 열렸다. 상식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언제나 호기롭게 출전했지만, 예상치도 못 한 문제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번번이 광탈할 뿐이었다. 그 해는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중 곰 캐릭터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였는지 그랬다. 결과는 어김없이 탈락이었다.
패자부활전마저 떨어진 나와 내 친구 D군은 관중석으로 돌아갔다. 바야흐로 결승 문제 직전, 참가 학생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골든 벨 최후의 n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의, 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그런 유형의 문제였다.
첫 번째 문제가 나왔지만 공부깨나 하는 D군과 잡식에 능한 나조차도 들어봄직 못했고,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답자가 나오지 않자 두 번째 문제가 출제되었다. 문제 수준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에 나와 D군은 사회자와 선생님들 몰래 휴대폰으로 문제를 검색(대개의 학교는 휴대폰을 걷기 때문에 타 학교 학생들은 검색할 수 없었으리라 추정한다)하는 배짱을 보였다. 일찌감치 탈락해 잃을 것 없는 신세에, 아무도 못 맞히는 문제. 못 먹어도 go였다.
검색 결과는 문제가 말하는 정답에 가까웠다. 일말의 양심에 찔린 우리는 “말해? 말아?”와 같은 짧은 토론 끝에, 마침내 D군이 손을 번쩍 들어 사회자에게 발언기회를 얻었다. 정답이었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우리 학교 선생님에 의해 커닝시비가 짧게나마 있었지만, 물증도 없거니와 제 얼굴에 침 뱉기라 생각했는지, 얼레벌레 어물쩡 넘어갈 수 있었다. 대회 마무리에 우리 학교 학생이 최후의 1인까지 오르는 좋은 분위기에 힘입어 사후 책임도 피해 갈 수 있었다.
며칠 뒤 일본에서 귀국한 D군은 급우들에게 우마이봉,곤약젤리따위의 일본과자를 뿌렸다. 내게는 800엔짜리 로이스 생 초콜릿 한 상자를 조용히 건넸다.
어딘가에서 콘클라베(Conclave)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당시의 부도덕한 쾌감을 돌아본다. 하필 콘클라베라니.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마다 깨우치고 회개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그런지는 몰라도 이 사건 이후로 켕기는 것 없이 살았고 그렇게 살려 노력하고 있다. 떳떳하게 살자꾸나. 남들은 몰라도 참새가 알고 생쥐가 알고 세상이 안다.
그래두 야심한 밤 어른들 몰래 꺼내먹는, 찬장 위의 초콜릿 한 조각이 그 어느 초콜릿보다도 달콤한 법이다.
그날 탈락한 문제에서 나는 오답을 썼다 쓱 지웠지만 옆자리 Y고 여학생의 “방금 탈락했는데 왜 앉아있냐”는 쏘아붙임에 머쓱하게 자리를 비켰다. 나는 딱 그 정도의 비겁함을 지닌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