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를 읽고 든 생각

by 아이주승



소위 일꺽이라 일컫는 일병 5호봉시절. 우여곡절 끝에 수리된 열흘짜리 휴가증을 들고 위병소를 나섰다. 방탄모와 흰 마스크를 굳게 쓴 초병들을 지나치며, 나는 곧바로 귓바퀴에 걸린 끈을 풀렀다. 부르튼 입술에서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겨울날 아침의 공기는 청량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얼어붙은 산천은 잿빛이 감돈 듯 유난히 황량하게 다가왔다. 마냥 ‘쾌’라고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해방감’이라는 단어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무언의 복잡함을 달랬다.


“돈 쓰러 가는 거지 뭐.” 셋째 삼촌의 냉소적인 농담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해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휴가 계획에 대한 물음에 “혼자 여행이나 갔다 올까 봐요.” 따위의 너스레를 떨었으리라. 미리 예약해 둔 기차표, 호텔방 값과 이래저래 여행 핑계를 대며 지출할 현금 및 부대비용을 더한 돈은 한 달치 월급과 맞먹었다.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시간은 유야무야 흘러 부대 복귀날에 다다랐다. 홀로 떠난 첫 여행의 기억은 그새 희미해진 뒤였다. 내겐 다만 삼촌이 툭 던진 그 한 마디만이 남았다.



가장 안락한 공간은 가장 잔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2020년의 봄. 나는 대학교 캠퍼스 대신 동네 약국을 뛰어다니며 KF94 마스크를 배급받았다. 마스크 배급은 생년에 따라 요일별로 배부되었는데, 2001년생은 월요일에 해당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나는 꼭 외출금지를 받은 중학생이 간신히 부모님께 짧은 외출을 허가받은 듯한 감상을 받았다. 외출허가의 결재권이 국가에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비현실감을 느낀 탓이 아닐까.


대한민국이 허락한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작은 골방으로 들어와 노트북 전원을 습관처럼 찾았다. 큰아버지께서 대학 입학기념으로 사주신 Asus사의 노트북이었다. 전공 및 교양수업이 웹캠을 통한 원격강의로 이루어졌기에 시간에 맞추어 지정된 웹 사이트에 접속해야 했다. 그 한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신입생이라는 최소한의 신분을 자각하게 했다. 강의가 종료되고 나면 나는 그저 밥만 축내는 백수와 다르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은 그런 날들의 집합으로 기억된다.


때가 되어 군대를 갔다. 6주간의 훈련을 받고 신교대를 수료했지만, 국가는 나를 다시 집으로 보냈다. 상근 예비역으로 소집되었기 때문이다. 8시간의 근무를 마치면 나는 다시 골방 책상에 들어앉았다. 신입생의 신분은 군인으로 치환되었지만, 여전히 백수의 신분과 병존했다.


출구 없는 자책의 시간은 그 정체성 간 괴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전염병이라는 변수는 통제불가능한 외생변수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미처 통제하지 못한 내면의 내생변수를 끊임없이 복기했다. 골방에 깊게 배인 특유취는 ‘저조한 성적 탓에 지망하던 학과에 불합격한 사실’과 함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에워쌌다. 노트북 쿨링팬 소음은 윙윙거리며 ‘성적에 맞추어 선택한 생경한 전공에 대한 두려움’과 ‘진로마저 막연한 상황에서 나아갈 수조차 없는 작금의 불안’을 상기시켰다.


책에 실린 산문 중 하나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에서 작가는 ‘집’이라는 공간에 구태를 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들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근무가 끝나는 22시경. 현역 선임들의 부러움이 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나는 집으로 퇴근을 했다. 하지만 내 발길을 이끌고 싶은 곳은 오히려 그들이 머무는 생활관이었다. 집 현관에 걸터앉아 군화 끈을 풀고 돌아서면 어젯밤 켜켜이 쌓아놓은 미결문이 나를 반겼다.

위 산문에서 작가는 ‘프로그램’(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이어 작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이라 밝힌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의 프로그램 또한 작가와 동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안으로의 반복되는 회귀는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초월해 나를 억압했다. 나는 부대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졌기에 군대의 시스템 속에서 삶의 안정감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즈음 여행을 떠나자 결심했다. 방역대책으로 인해 장병들의 휴가가 제한되었고 5월 군번인 나는 12월이 되어서야 신병위로휴가를 작성할 수 있었다. 부산에 가고 싶었다. 누군가 왜 부산에 가느냐고 물을 때면 그저 “강원도 이남지역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라고 에둘렀다.


사실 강원도 이남지역에 내려갈 이유도, 그 지역이 꼭 부산일 이유도, 어렵게 따낸 휴가 중에 떠날 이유마저도 없었다. 막연히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내가 아는 가장 먼 곳은 부산이었다. 내게 부산은 낯선 곳이었다.

휴가 이튿날. 나는 부산역을 지나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의 해는 저물어 수평선 너머로 떠간 지 오래였다. 유난히 밝은 월광만이 일렁이는 해수면에 부딪혀 바스러졌다. 부산의 겨울은 온난하여 바닷바람마저 잔잔했다. 유유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내일의 일정과 여행의 목적을 끊임없이 강구했다. 바다를 등지고 일어났을 때, 내게 남은 것은 하염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뿐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을 엮은 짧은 산문집이다. 책장을 펼치며 내 마지막 ‘여행의 이유’에 대해 과거의 나를 심문하고자 했다. 다행히 몇 가지 해답을 찾을 수 있어 기뻤다. 「추방과 멀미」에서 나타난 본래 기대에서 벗어난 이벤트가 발생하는 여행과 비견한 삶의 특징에 내 인생의 행로 또한 비춰볼 수 있었다. 「오직 현재」에서 현재를 살아감을 온전히 느끼는 여행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불안을 벗어내는 힘을 얻었다.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가치관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에서 일관되게 이어진다. 미궁같이 느껴지는 방송의 제작과정을 카프카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 관점에서 발생하는 혼돈을 스토아학파적인 입장으로 타개한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또 1인칭의 여행을 타자의 시각으로 관찰할 때 더욱 명료해지며, 이를 개인의 여행이 한층 풍부해지는 경험의 완성이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 산문 「여행으로 돌아가다」에서 작가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을 들어 소설과 여행의 유사성을 견지한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여행 이후 시간이 꽤 흘렀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할 즈음엔 모든 방역조치가 해제되었다. 어기적어기적 나는 졸업반의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군 시절 돈만 쓰고 온 그 여행을 밑거름 삼아 에세이를 쓰고 있다. -여행의 이유-를 교재로 삼아 나름의 ‘여행의 이유’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제야 그 이유에 근접할 수 있었을까?”라는 새로운 의문이 남았다.


가정은 이렇다. 부대에 복귀한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었다. 여행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유는 여행을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출발지점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간으로 설정했다. 대학교 입학을 기대한 나는 팬데믹이라는 낯선 세계를 마주했다. 이후 낯선 곳을 찾아다니며 그 세계가 나를 받아들이도록 내면의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에 이르러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고, 그 세계를 일상이라고 명명했다.


6년에 가까운 긴 여행을 돌아볼 때, 나의 새로운 출발지점은 대학교를 졸업한 순간이라 짐작한다. 시작될 여행의 끝도, 여행 중에 나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카프카적 관점이다. 다만 그 끝에 도달해 또 하나의 ‘인생의 이유’를 찾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때문에 그 결실에 대한 무궁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현재를 기쁘게 살아감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내가 다할 수 있는 태도라고 굳게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