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스릴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 갈 때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거듭 당부하시곤 했다.
바이킹이나 청룡열차,
이런 건 무서워서 너는 못 타
그 말을 들은 나는 언니들을 따라가던 발걸음을 멈춘 채 회전목마나 범퍼카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바이킹을 탄 날, 나는 정말이지 기절할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한껏 위로 올라갔다 빠른 속도로 내려올 때의 그 느낌. 마치 오장육부가 다 내려앉는 듯한 서늘함.
떨어지는 바로 그 느낌이 싫어서 지금도 나는 바이킹이나 청룡열차와 같은 놀이기구는 피하는 편이다.
물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보면 떨어질 듯한 공포를 느낀다. 이미 그 느낌을 알고 있기에 그 예측이 바로 공포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케이블카나 스키장의 리프트도 아무렇지 않게 타지 못한다. 둘 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타봤는데도 떨어짐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스키장에 가지 않고 케이블카도 타지 않는다.
이런 내가 즐기는 공포가 딱 하나 있다. 바로 공포영화다.
사실 모든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공포영화의 대명사인 귀신, 좀비, 혹은 괴물이나 동물이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 다 봤을 정도로 즐긴다. 영화뿐만 아니라 무서운 사연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도 거의 매일 챙겨 듣는다.
쫄보인 내가 이런 공포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며칠 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
혹은 실현되지 않을 것에 대한 공포
내가 즐기는 영화나 유튜브는 모두 귀신이나 좀비, 혹은 괴생명체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가위조차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실제로 봤을 때의 공포를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좀비나 괴생명체 또한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그에 대한 무서움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것이다. 대신 영화를 보거나 사연을 들으며 상상해서 스릴을 느낄 뿐이다.
내가 범죄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영화를 보면, 주위에 있을 법한 이야기나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기에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가 가장 용감했던 것 같다고.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무수한 현실 공포를 경험해 본 적 없었던 아이 때가 말이다.
그걸 생각하니 내가 가진 고소공포증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이 느껴진다.
오늘도 용기 내어 현실 공포를 헤쳐 나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