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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를보다 Aug 30. 2020

안녕하세요, 젊은 꼰대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자동차 광고에 이런 멘트가 나온다. "너무나 다른 우리에게 어느 날 연결의 기술이 생겼다. XYZ세대가 타고 있다." 광고를 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X세대, Y세대, Z세대가 다 같은 세대 아니었어?" 그저 젊은 세대를 칭하는 용어로만 생각했던 XYZ세대 각각에는 나름의 분류기준과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준 속에서 나는 X와 Z사이에 끼인 애매한 Y세대였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항상 과도기에 놓여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수시모집 인원이 확대되면서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경쟁해야만 했고, 취업난이 닥치기 시작하면서 N포 세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예전에는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각 대학을 직접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스카우트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대학만 가면 다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만 믿었던 나는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황홀한 대학생활을 꿈꾸었으나, 대학 입학 이후의 삶이 진짜 지옥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꾸준히 노력하면 자수성가해서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난 용이 될 수 있었던 X세대의 눈에는 '노오력'하지 않고 그저 안정적인 직장, 워라밸, 정년보장, 공무원을 꿈꾸는 Y세대가 한심해 보일 수도, 나약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X세대에는 당연히 가능했던 것들이 Y세대에서는 불가능해진 것들이 많다는 것을.


 Y세대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더 높은 토익점수, 더 높은 회화실력, 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사회가 만들어놓은 그 규격 안에서 뭐든 이루어보고자 아등바등한다. 그런데 Z세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격 자체를 거부하는 듯하다. Y세대에게는 그래도 번듯한 직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정기적인 수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쯤 되면 결혼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건이 따라붙지만 Z세대는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뛰어들고 본다. 쉽게 말해, Y세대는 '꼭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돈을 모아 유럽여행을 가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Z세대는 당장 단기 알바를 뛰건, 고수익 알바를 뛰건 마이너스 통장을 쓰건, '일단 가고 보자!' 하는 추진력이 있다고나 해야 할까. 이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X세대는 말하겠지. '유럽여행?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물론 이와 같은 추측들은 오롯이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과도기 세대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사건은,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다닌 연극학과에는 소위 군대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입학하면서부터 슬슬 그런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우리 기수는 그 과도기 속에 애매하게 끼어있었다. 예전 선배들처럼 구타를 당한다거나 '빠따'를 맞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집합'이라는 명목 하에 엎드려뻗쳐를 시킨다던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던지 하는 육체적 기합을 받곤 했었다. 무대 작업에 누군가 빠지면 그 동기가 올 때까지 우리는 기합을 받아야 했고, 그러면서 동기애가 생긴다는 말을 들으며 정말 꼰대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은 한 마음으로 결심했었다. 후배가 들어오면, 우린 절대 꼰대처럼 굴지 말자고. 절대로 억압하고 구속하지 말자고.


 그렇게 우리는 선배가 되었고, 아랫 기수 후배가 들어왔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연극학과에서는 '집합'이라는 것이 존재해 왔었는지, 왜 대학교에서 단합과 동기애를 키워나가야만 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다 함께 한마음 한 뜻으로 공연을 만들어나간다는 특성 탓에 우리 학과에서는 유독 '단합'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믿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위계서열과 군기와 기합이 없는 환경에서는 그 단합을 만들어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공연팀에 속해 있다가도 공연이 잘 안 풀릴 것 같으면 쉽사리 그만두고 공연팀에서 빠져버리는 후배들도 있었고, 다 함께 즐기러 놀러 가자는 취지의 엠티마저도 참여율이 저조하여 취소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정 없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는 학과를 바라보며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도 갖곤 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대학시절, 일명 똥 군기 문화에 완벽 적응했던 나에게 위계서열이 있는 직장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막내, 나는 배우는 사람, 나는 아랫사람이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직장 특성상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님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것이 크게 불편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항상 느낌표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상급자의 어떤 부탁에도 무조건 "넵!" 하며 복종했고 갑작스레 회식이 잡혀도 "넵!" 하며 참석했다. 체질상 술이 몸에 받질 않아 맥주 한잔에도 온몸이 새빨개지는 나였지만, 윗사람이 따라주는 술은 "넵!" 하며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대학교 때는 소주 한잔도 입에 못 대던 내가 직장에서는 술 잘 먹는 직원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직장생활 3년 차에 들어선 나에게도 이제 후임이 생겼다. 항상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들하고만 지내다가 또래가 생기니 이래저래 의지도 되고 또 나도 모르게 이제 내가 한껏 짊어지고 다니던 느낌표를 한 두 개 정도는 후임에게 넘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느낌표를 모두 떠넘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꼰대가 되기 싫었으니까.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 하면 덜 힘들겠다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처음 몇 달 간은 너무 행복했다. 나랑 마음도 잘 맞았고 내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식사할 때 먼저 자리를 잡고 수저를 깔아놓는 다던지 물을 따라놓는다던지 혹은 사무실에 손님이 오시면 벌떡 일어나 차를 내온다던지,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당연한 예절이고 기본이라 할만한 것들을 함께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매일 점심식사 후에 가졌던 국장님과의 티타임을 거절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급작스러운 회식에는 절대로 참석하지 않았으며, 설사 회식에 참석하더라도 식단 조절 중이라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업무시간에는 딱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처리했으며, 국장님이나 팀장님이 업무 외적인 일을 부탁할 경우에는 그것이 쉬운 일이건 어려운 일이 건 간에 '내 일도 아닌데 이런 걸 왜 시키는 거냐'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 둘 새로 온 신규직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에게 시키지 못한 일들과 그에게 가지 못한 술잔들은 모두 내게로 돌아왔다. 솔직한 심정으로 억울한 마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무조건 "넵!" 하며 복종했던 나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을까에 대한 의심이 더욱 컸다.


 당일 날 급하게 잡힌 회식에 내가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들이 마구잡이로 따라주는 술을 모두 받아먹어야만 하는 의무도, 내 점심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국장님의 돈 자랑을 듣고 있을 의무도 없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무실은 돌아가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을 몸소 두 눈으로 보게 되니, 나의 가치관에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안 해도 되는 것 나도 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남자 직원들의 성희롱인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한 농담에 반응을 해주지 않고 싸한 분위기를 견디고 있는 것보다는 그냥 하하하 웃어넘기고 마는 것이 더욱 편하다. 오늘 딱히 약속도 없는데 갑자기 잡힌 회식에 '일이 있어서요.'하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할 때에 마주해야 할 떨떠름한 상사들의 얼굴이 불편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내가 손해보고 말지! 눈 질끈 감아버리는 편이 나았고 나는 햇수로 3년을 그런 식으로 지내왔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는 신규직원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는 기회가 되었을 때, 한번 넌지시 물었다. 6개월 동안에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에 대해서. 역시 그는 내 예상대로 내가 외면하려고 하는 그 불편함 들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불편함만 견디면 내면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후배는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선배도 모든지 다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학시절의 내가 겪었던 그 딜레마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을 챙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내가 억지로 희생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주인공인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도 바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만들어질 개인주의 적인 차가운 세상이 조금 두렵다. 물론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하며 그들의 장단에 맞추어 나를 갉아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와 존중, 배려와 희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나로서는 후배의 행동이 가끔은 불편하게 다가오곤 했다. 


 자수성가가 가능했던 X세대에게 있어서 미래란, 현재를 희생한 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질 테지만 Y세대에게 미래란, 안개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 너머와 같다. 그런 Y세대에게는 현재를 희생하면 부모님처럼 그나마 숨좀 트이는 미래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Z세대는 불안한 미래에 자신의 인생을 거느니 눈 앞에 보이는 확실한 현재를 살겠노라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XYZ는 이렇듯,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그들이 습득해온 경험이 모두 다르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은 변한다. 우리가 적응해나가야 할 환경도, 사회도, 삶의 방식 또한 변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나 내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야 말로 꼰대의 길로 향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나, 꼰대가 되기를 거부하는 젊은 꼰대로서 세상에 한 마디만 던지고자 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고, 사회 속에 정해진 규율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고, 불편한 것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고쳐나가고 조율해나가면 된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한다면 광고 속에 등장하는 XYZ가 하나로 연결되는 그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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