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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를보다 Oct 31. 2023

[소개팅만 50번째] 3화

 가볍고 상쾌한 토요일의 정오, 마음이 들뜬 탓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신촌역 앞에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은 구경하고 있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한 가을의 한복판에서 저 멀리 뛰어오는 K의 모습이 보였다.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은 K는 어제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맨투맨에 청바지 차림으로 그를 맞이한 나 또한 그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보이며, 서로 한 발자국씩 가까워졌음을 만끽했다. 남들이 보면 대학교 캠퍼스 커플인 줄 알겠다며 혼자서 기분 좋은 주책도 잠시 부려보았다.


 우리는 딱 붙어 앉아서 근처 맛집과 카페를 검색하기도 하고, 다음 한 주간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연인의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다. 영화시간이 가까워오자 K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에게 겉옷을 맡겼고, 내 팔에 걸쳐진 낯선 그의 옷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색함과 동시에 설렘이 묻어있는 머쓱하면서도 스스로가 대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 안에서 남자와 나란히 앉아 팝콘 한통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손을 교차해 가며 사이좋게 팝콘을 나눠먹고 있자니, 이번엔 별안간 가슴이 뛰어댔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감이 있지 않은가. 일단, 어둡고 어두운 곳에서는 상대의 외모가 좀 더 준수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영화관 안에서는 주로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사이를 좁혀야 하기에 더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의 숨결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도 있고, 그러면서 몽글몽글한 연애의 감정이 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서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영화관 데이트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 소개팅 전문가들도 많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서로를 알아가기에도 빠듯한 시간 속에서 두, 세 시간 정도를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영화만 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영화관 데이트가 비효율적이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세 번 정도의 만남을 가진다면 그중 한 번 정도는 둘이 오붓하게 영화 한 편을 즐기는 것도 좋다고 본다. 서로 재고 따지며 질문하고 답하는 그런 틀에 박힌 만남에서 벗어나, 실제로 우리 둘이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어떨지 체험해 보는 데이트 시뮬레이션 같은 것이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가치관이나 성향을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도 있으니 어쩌면 이태리 식당에서 떡이 된 파스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대화의 형식만 갖춘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훨씬 세련된 만남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나는 은근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화나 드라마, 공연 같은 문화생활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문화적 취향이 잘 맞는지 안 맞는지에 따라 호감도가 급변하기 때문에 나에겐 오늘의 데이트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게다가 K가 지난 만남에서 내가 영화감독 중에 봉준호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을 놓치지 않고 센스 있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예매한 것부터가 호감도 급상승의 요인이었다. 어쩌면 K와 어느 정도 문화적 취향이 들어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그래, 인연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연락하길 정말 잘했어. 이제 더 이상 소개팅을 전전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짓도 마지막이다. K라면 내가 꿈꿔온 연애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밤새도록 전화기 너머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소리 없이 찾아온 아침에 화들짝 놀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며 그제야 뜨거워진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눈을 붙여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그런 연애를!’


 한껏 들뜬 내 마음처럼 영화도 클라이맥스를 찍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결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헉 소리 날만큼 놀라운 영화 속 반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K를 쳐다봤고, 그 놀라운 반전 뒤에는 입을 쩍 벌리고 잠든 K의 충격적인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피곤할 수 있지, 영화가 지루했을 수 있어, 취향이 안 맞았을 수도 있지, 수많은 ‘그럴 수 도 있지' 속에서 단 하나 용납이 안 되는 사실은 ’나‘라는 예외사항이었다. 내가 옆에 있는데 잠을 잔다고?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침까지 흘려가며 무방비상태로 숙면을 취할 만큼 내가 편안했던 걸까. K의 이완된 안면근육들이 우리 관계에는 긴장감이라곤 없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기분이 언짢아진 나는 영화는 보는 둥 마는 둥, 이따가 영화관을 나서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서운한 티를 내야 할지, 아니면 이해하는 척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 쿨쿨 자고 있던 K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개운하게 기지개까지 켜는 그의 모습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빈정대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주 푹 잤나 봐?”

“졸려 죽는 줄 알았어, 영화 너무 지루하다, 그치?”
 


 무안한 기색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하품을 쩍쩍해대는 눈치 없는 K를 보고 있으니, 가슴속에 조심스레 품어 보았던 설레는 미래와 따스한 애정들이 유리구슬처럼 한꺼번에 와장창 쏟아져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난 이미 K에 대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영화관을 나와 같이 밥을 먹으며 나눴던 소소한 이야기들, 그의 꿈과 미래에 대한 제법 구체적이었던 목표와 계획들은 기억 속에서 너무나도 희미한데, 다른 분위기 좋은 식당을 두고 대낮부터 곱창에 소주를 찾던 K, 그마저도 식당에 가다가 갑자기 트레이닝복을 사야 한다며 다짜고짜 쇼핑몰로 들어가 날 한참을 매장에 세워두고 옷을 고르던 K,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고 어린아이처럼 조르던 K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니 말이다. 단 두 번의 만남에도 이렇게 나를 편하게 대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연인이 되어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나를 얼마나 더 편하게 대할지 눈에 훤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실망했고 서운했다.


 그날 이후로 우린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자기 전엔 10분, 20분씩 통화도 하곤 했지만, 나는 K가 주말에 약속을 잡으려고 하기만 하면 애매한 핑계들로 어떻게든 만날 수 없는 사유를 만들어내며 필사적으로 그를 피했다. 선약이 있어서, 감기 기운이 있어서, 출장을 가야 해서, 가족 모임이 있어서,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예전의 다른 실패한 소개팅의 결말처럼 장문의 메시지로 이 관계를 끝내지 못한 데에는 첫 만남부터 바람을 맞힌 나의 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이 1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진지한 만남을 이어갈 것처럼 고백 아닌 고백을 하더니, 겨우 두 번 만나 보고서 우린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찢어지자고 말한다면 내 입장에서도 황당할 것 같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 만남을 또다시 내 입으로 끝내기가 염치없고 어려웠기에 이미 이 관계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정쩡한 K와의 관계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갖은 핑계를 대며 만남을 피하는 내게 K는 결국 떠났다. 서로 잘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만을 남기고.

내 입으로 하지 못하는 말을 그가 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단 두 번만의 만남으로, 단 한순간의 행동만으로 그를 전부 안다고 자만할 수 있었는지, 그때 차라리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 너의 행동에 실망했고 서운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그와의 관계가 좀 더 성숙한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지는 않았을지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우린 안 맞았던 거다.


나는 서로 편안한 사이가 되더라도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가 조금씩은 특별한 나날들로 채워지길 바라는 편이었다면, 그는 일상 속에 녹아드는 그런 연애를 추구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면이 안 맞았던 것이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빠르게 치고 나가는 전략이 필요한 소개팅 전쟁에서 그런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하나 맞춰가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용감한 생각이다. 시간이 많고 아직 여유가 있는 싱글에게는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혼기 꽉 찬 싱글들에게는 잔혹한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선자들이 항상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이 있다. 적어도 세 번은 만나봐야 알지 않겠냐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눈 딱 감고 세 번만 만나보라고. 세 번째 만나보면, 네 번은 더 쉽고 그러면 다섯 번은 더 쉽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서 그렇게 계속 만나게 되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이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싶다. 사실 한번 아닌 건 끝까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 번을 만나든 열 번을 만나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처음 봤을 때 아니라고 생각했던 면이 열 번째 만나서 맞아지지는 않는다, 절대. 그저 그 부분을 내가 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오로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포기가 되면 만나보는 거고, 열 번 아니라 백 번 생각해도 포기가 안 되는 부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끝내는 것이다.  


 학교든 회사든 어떠한 집단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오던 이성이라면,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도  오랫동안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문득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못나 보이던외모도 귀엽게 보일 수 있는 거고,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들이 장점으로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까지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열렸을 때에야 비로소 나랑 좀 안 맞는 부분은 서로 맞춰나가면 되겠다고 마음먹어볼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소개팅에서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는 말이다.


 한 사람에게 정이 들고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이 생기려면 세 번, 열 번의 만남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흔히들 자만추라 일컫는 환상 속 유니콘과도 같은 그것은 시간도 많이 드는 데다가 또 운 좋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게 되더라도 서로의 감정이 일치하게 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결국 소개팅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이다.


 연애를 전제로 하는 소개팅이라는 만남은 순간의 첫인상이 그 성패를 좌우하고, 그렇다면 결국 내가 이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상대여야만이 비로소 바늘귀만 한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인데, 당연히 이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기준이 자연스러운 만남에서의 기준보다는 좀 더 빡빡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K의 영화관 숙면 사건처럼 그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더 이상의 그 관계의 발전은 불가능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면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너 그렇게 다 따지다간 평생 혼자 늙어 죽는다.’, ‘너 그러다 나처럼 된다.’,‘너 아직 급하지 않은가 보구나.’, ‘그거 다 갖춘 사람이 왜 널 만나냐.’


하지만,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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