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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Dec 05. 2023

약을 먹으면서


  매일 저녁 8시, 약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이 약이 과연 나를 지켜주고 있는 걸까.


  내 왼쪽 유방에 있던 암세포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성질을 가진 암에 비해 완치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비교적 확실한 치료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HER2 수용체가 없는 유방암을 삼중 음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항호르몬 요법이나 HER2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기에 예후가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 반면 내 경우에는 암세포의 수용체가 호르몬과 결합해 성장하고 증식한다고 보기에 항호르몬 치료가 가능하다.

  나는 매일 타목시펜이라고 불리는 놀바덱스디정 20mg을 복용하고 석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복부에 졸라덱스라는 주사를 맞는다. 두 치료법 모두 내 몸에서 에스트로겐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월경이 멈췄고 한 달째부터 치료의 부작용이 시작되었다. 항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으로는 발열감, 홍조, 피로감, 우울, 신경과민, 피부 발진, 질 출혈, 백내장, 두통, 근육통, 골다공증, 탈모, 구토, 설사, 변비, 지방간, 간염, 혈관부종, 정맥혈전색전증, 자궁내막증 등이 있다. 특히 자궁내막암의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요하기도 한다.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이 치료법이 재발률을 낮추고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치료를 시작한 지 9개월째,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은 발열감과 그로 인한 불면과 피로감,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근육통과 관절통이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요법이기에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완경기 여성이 겪는 증상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여성은 45~55세 사이에 마지막 월경을 하게 되고 이를 전후로 3~5년 정도 완경기 증상을 겪는다. 기간도 증상도 개별적이기 때문에 더러 증상을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수개월 혹은 십 년 이상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잠을 잘 잤다고 느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수시로 몸이 더워졌다 추워졌다 하는 통에 잠옷을 벗었다가 입었다가 이불을 걷어냈다가 다시 끌어안았다가를 반복하느라 밤사이 몇 번이나 잠에서 깬다. 이렇게 오래 수면 부족을 겪는 건 처음이다. 잠을 못 잔다고 해서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롭거나 어딘가가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지만 도무지 괜찮다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하루하루 생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몇 달 전부터는 손가락 마디와 무릎에 전에 없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있다. 누운 채로 열 번쯤 주먹을 쥐었다 펴야만 그나마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어떤 날은 설거지하던 그릇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집으려다가 맥없이 놓치기도 한다. 팔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십 분씩 아령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을 하다 보면 문득 팔보다 손에 더 힘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딘가에 앉거나 일어설 때마다 무릎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아고고 하는 곡소리가 나온다. 무릎이 시큰거린다거나 욱신거린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나는 너무나 알게 되었다. 평소보다 오래 걸은 날은, 그래봤자 한 시간 내외일 뿐이어도 허벅지 앞쪽과 종아리 뒤쪽 근육이 심하게 조이고 등허리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뼈가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하릴없이 체감하는 중이다.

  체내에서 에스트로겐이 생성되지 않으면 새로운 뼈를 생성하는 세포보다 오래된 뼈를 제거하는 세포가 더 활발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내 몸에서 에스트로겐을 억제할수록 유방암의 전이와 재발률은 낮아지겠지만 골 소실로 인한 골다공증 발생 위험은 증가하고 있다. 내 병의 치료법은 노화를 가속화하고 노화의 촉진은 결국 이른 죽음이 아닌가 싶어 나는 자주 혼란스럽다. 나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오히려 더 안 좋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어제는 반년 만에 산부인과 진료가 있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지난번보다 자궁내막의 두께가 0.5mm 늘어났다. 의사 말에 따르면 다행히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병원에 간 김에 의사에게 요즘 느끼는 통증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의사는 내가 겪는 부작용들이 졸라덱스 주사로 인해 강제로 완경 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유방외과 담당의와 상의해 졸라덱스 처방을 중단하거나 정형외과 등에 협진을 요청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삼 분이 채 되지 않는 진료를 마치고 나와 유방외과에 진료 예약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다음 유방외과 진료는 내년 3월에 잡혀있기에 그사이 담당의를 만나기 위해서는 따로 예약을 잡아야 했다. 아마도 몇 주를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의사를 만난다고 해서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졸라덱스를 중단하고 체내의 에스트로겐 생성량을 다시 늘리면 암의 전이와 재발률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게다가 다시 월경을 한다고 해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완경기를 겪게 될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정형외과 치료를 받자니 결국 어떤 약물이나 주사제를 내 몸에 추가로 투여하게 될 텐데 그 약으로 인해 새로운 부작용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그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약을 먹고 다시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그렇게 계속해서 더 많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몸이 되는 건 아닐까. 나는 끝내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선택도 그리 좋은 결과를 보장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타목시펜을 매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챙겨 먹었던 영양제들을 하나씩 줄이고 있다. 각종 비타민과 마그네슘, 실리마린, 칼슘, 아연, 셀레늄, 유산균, 오메가 3, MSM, 테아닌….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수년간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알약들을 보면서 문득 내 몸에 너무 많은 가공 물질을 집어넣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 약들의 효능을 나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이 많은 영양제를 함께 복용해도 괜찮은 건지, 그동안 적절한 용량과 용법으로 취하고 있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새삼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건강을 위해서 해왔던 일들이 과연 정말로 내 몸에 도움이 되었을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소비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권했던 것들은 정말로 몸에 필요한 것들이었나.

  나는 앞으로도 별수 없이 의학 전문가들의 해석과 결정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할 테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요즘 그런 게 궁금하다. 내가 받는 치료가 과연 나를 덜 아프게 하고 있는지, 내 몸은 확실하게 나아지고 있는지, 나는 아프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지금 무언가를 얻고 있는지 혹은 더 잃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것들이.

  나는 더 알고 싶다. 지금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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