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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Dec 19. 2023

그 세상에는 내가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스마트폰을 손에 들거나 사용하는 빈도도 덩달아 늘어났다. 딱히 새로운 알림이 오거나 확인할 사항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수시로 폰의 액정을 터치하는 버릇이 생겼다. 더러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그를 핑계 삼기에 우리 집에는 시계가 어지간히 많다. 방마다 벽시계와 탁상시계가 몇 개씩 놓여있어 집안 어디서건 어렵지 않게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스크린 타임에서 최다 사용하는 앱을 확인하니 인스타그램과 데일리 노트, 카카오톡, 유튜브, 네이버 순이고 그 아래로 메모와 메일, 쿠팡과 당근이 보인다. 얼마 전에는 당근에 올려둔 컵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는지 보려고 앱을 열었다가 동네에 새로 올라온 중고 물품들을 살피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아름다운 빈티지 잔들과 접시들, 거의 새 상품에 가까운 예쁜 옷들을 구경하고 판매자의 매너 온도를 확인하고 그가 올려둔 다른 상품을 연이어 살피느라 순식간에 몇십 분이 지나갔다. 앱을 열기 전만 해도 나는 어떤 물건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누군가 올려둔 물건의 사진을 볼 때마다 왠지 이걸 사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같은 제품을 이 가격에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먼저 사버리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마저 들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에 하트를 눌러두고 가까스로 구매 욕구를 다스린 후에야 다시 판매자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컵의 가격을 조금 낮춰 게시물 끌어올리기를 하고 어쩐지 찜찜한 기분으로 앱을 닫았다.

  다른 앱을 사용할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저만치 흘러간 시간에 흠칫 놀랄 때가 잦다.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혹은 팔로우하는 계정들의 피드를 구경하기 위해 앱을 열면 예외 없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소식과 정보를 마주하게 된다. 그 사이사이에 낀 흥미로운 영상이나 광고들까지 훑다 보면 몇 시간은 우습게 흐른다. 선택적으로 전시된 누군가의 행복과 성과에 나도 모르게 내 처지를 빗대어 보다가 불현듯 조바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무언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딘가 가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뭔가를 더 이뤄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때로는 내 삶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다른 이들의 삶을 구경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아닌가 싶어 괜스레 초조해지기도 한다. 대단히 중요한 일과라도 되는 양 벌써 몇 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타인의 삶을 건너다보고 있다. 누군가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살피고 그의 일상과 여행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소비하는 것들을 눈으로 좇는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많은 것을 보았는데. 어떤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도 같은데. 방금 본 피드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그 사람이 뭐라고 썼는지. 방금 내 기분이 어땠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좀처럼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스마트폰 속 세상은 얼핏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그 세상에서 지워 버린다. 그 세상에는 내가 없다. 어떤 장막이 나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다. 내가 원한 적 없었던 것들을 갖고 싶게 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계획에 없었던 행동을 하게 한다. 꼼꼼히 살피고 신중하게 선택했다고 여겼던 소비조차 다시 따져보면 애초에 내가 원했던 바가 아닐 때가 많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마다 내가 이것을 이용하는 만큼 이 기기 혹은 그 너머의 누군가 또한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뜨악해지곤 한다. 그 세상에 시간을 내어주는 만큼 나는 어떤 감정과 생각을, 표정을 잃는다.


  얼마 전부터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려고 애쓰고 있다. 정말 애를 써야 할 만큼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하루하루 놀라는 중이다. 무엇보다 자다가 깨었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전에는 눈이 떠지면 거의 반사적으로 폰의 액정을 터치해 시각을 확인했다. 내가 몇 시간을 잤는지, 얼마 만에 발열감이 시작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새벽에 눈이 떠져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다가 열감이 느껴지면 이불을 걷어내고 잠옷 상의를 벗은 채로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 열이 식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다 보면 열이 식고 한기가 오기 전에 벗어둔 잠옷을 다시 걸쳐 입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려 덮는다. 그렇게 누워 다시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도 잠이 오지 않으면 정말이지 스마트폰을 보고 싶지만 꾹 참고 눈을 감은 채로 버틴다. 조금만 더 있어 보자. 조금만 더 참아보자 하면서.

  새벽에 깨어 스마트폰을 보지 않게 된 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생각이 그치고 잠에 들기도 한다. 새벽에 하는 생각은 좀처럼 완성된 문장의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쉼표나 마침표, 어떤 기호도 없이, 앞과 뒤가 매끄러운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생각 후에 다음 생각이 그저 이어진다. 문장보다는 어떤 장면에 가까운 형태로 내 의식의 흐름 사이에 있던 이미지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내가 보았거나 보고 싶거나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장면들이 엷은 안개처럼 머릿속을 휘돈다.

  돌아보면 이렇게 생각을 내버려 둔 적이 있었던가 싶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무언가를 읽거나 쓰면서, 보거나 먹으면서 생각을 한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일의 흐름에 따라 생각은 흘렀다 끊기고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밤에는 그저 가만히 누운 채로 오로지 생각의 회로만이 돌아간다. 내 머릿속을 한 바퀴 돌고 가는 상념들을 굳이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다 보면 기억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려 하다가 어느새 잠에 빠진다. 그 안전하고 고요한 밤의 시간에 찾아오는 무료함을 나는 조금 애정하게 되었다.

  여전히 어떤 밤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고 황량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애써보고 싶다. 네모난 기기 안에 펼쳐진 화려하고 다채로운 세계보다는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공허를 더 선명하게 감각하고 싶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시간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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