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꿈이라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by 김민주

_

새벽 다섯시 쯤 되었을까, 잠든 지 2시간 여 만에 깨어났다. 컴컴한 가운데 허여멀건한 천장이 보였다. 안경을 쓴 채 잠들었는지 금방 천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마치 침대 위에 전시된 설치물처럼 옴짝달싹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무서웠다. 무서워서 울음이 날 것 같았다. 무서움과 울음이 무슨 상관이 있지? 맞아, 나는 지금 무섭지 않다. 슬프다. 울음은 그런 때 나는 것이니까. 그리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깨어난 상태 그대로 침대 표면에 몸을 철썩 붙여 누른다. 공중으로 떠올라 내 몸이 침대에 붙어 있는 모양을 상상해본다. 하얀 테이프를 들고 내 몸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따라 선을 이어 붙인다. 그렇게 하고나서야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깨어난 자리 그대로 몸을 꼬옥 눌러붙이고 줄줄 운다. 이쯤 하면 됐다, 싶을 즈음 엉엉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이불을 말아 껴안고 잔뜩 웅크렸다가, 몸을 굴린다. 몸안에서 무언가 찢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게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몸을 굴리면서 울다가 결국 엄마아, 하고 소리를 낸다. 엄마아, 그 단 한마디만 울음소리로 가진 동물처럼 반복해 불렀다. 그게 몇 번 되지 않아 곧 눈물이 그쳤다.


_

며칠만에 밖에 나왔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높다. 반대편에 앉은 친구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셔 자리를 안쪽으로 옮겼다. 나는 건너편 건물 옥상의 은색 난간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광경을 자꾸만 보고 있다. 실외기 몇개가 건물의 외벽을 타고 군데군데 파고든 모양을 본다. 난간에 앉았다 날아간 까치를 떠올린다. 저녁 메뉴는 무얼 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멀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조물 위에 앉은 까치가 몇 마리인지 세어본다. 세마린가, 네마린가. 까딱이는 까치의 꼬리를 본다. 키보드 위에서 손을 까딱여본다. 그러면서 지난 밤에 엄마가 나오는 꿈을 꾸어 나오기 전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단 얘기를 한다. 그리곤 멋쩍게 웃었다. 그후 한참동안 써놓았던 글을 이것저것 열어 읽어보다가, 새 파일을 만들었다. ’새벽 다섯시 쯤 되었을까’를 적는다. 계속 하늘을 본다. 유난히 파랗고 예쁘다. 이 광경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는 무슨 색 물감을 골라 칠할까 생각해본다. 세루리안 블루에 코발트 블루 살짝. 울트라마린을 섞을까 했지만, 살짝 탁해질 것 같아 관두기로 한다.


_

얇은 대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회초리 다발, 그 중에 하나를 내 눈앞에서 골라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의 종아리, 나의 팔뚝, 등,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매를 맞는다. 금새 얇은 것이 부러졌다. 조금 더 굵고 단단한 매를 집어든다. 펄쩍 펄쩍 뛰면서 도망을 가는 나를 따라오며 회초리를 휘두른다. 나는 어디든 맞으면서 달음박질을 친다. 매가 또 부러진다. 다른 것을 또 집어든다. 나는 도망을. 기다란 막대가 끝까지 나를 쫓아온다. 매를 맞은 데가 너무 따갑고 아팠다. 그래서 나는 도망을 치다 말고 날아오는 회초리를 덥썩 잡는다. 붙잡고 돌려 세워 등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손끝이 등살을 파고든다. 손끝과 손아귀에 힘을 준 채 팔꿈치를 땡겨 벌린다. 등을 막 찢으려고 할 때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였다. 글로 옮기자면 아아아악- 정도로 그치겠지만, 나는 그게 너무 끔찍해서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 몸을 붙이고 우는 동안, 귓속에서 엄마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무섭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끔찍할 뿐이었다.


_

오늘의 나는 아이보리색 코듀로이 팬츠에, 하얀색 반목티, 분홍색 체크무늬 남방 위에 포슬포슬한 양털 조끼를 입고, 오버핏의 검정색 코트를 입었다. 나올 때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춥다는 생각을 했다.


_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른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키가 크고 얇은 나뭇가지를 가진 나무가 설설 흔들리는 것을 물끄러미 본다. 저 나무 이름은 무얼까. 아는 나무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저게 미루나문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새집이 하나 얹혀 있다. 담배를 피고 오는 사이에 해가 조금 떨어졌다. 하늘은 아직 파란데, 들어오는 볕이 사라졌다.


_

잠에서 깨어나 나의 연인에게 한 통의 메세지를 남겼다. 외계어처럼 그려진 말은 악몽을 꿨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는 나와의 약속에 따라 10시에 전화를 하여 잠을 더 자라고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가 되어 나는 그에게 기분이 나아지고 있단 얘기를 한다. 그는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을 따라 보면서, 조금의 안심을 한다. 나는 오늘따라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글을 남긴다. 끔찍한 이야기에 끔찍한 마음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끔찍하지 않아진다. 하늘이 파랗고 높아서.


_

끔찍하지 않은 어떤 짧은 글.

매거진의 이전글오랜만에